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Samuel Beckett was not a man of excess. He distrusted language, distrusted meaning, and distrusted the urge to explain too much. And yet, through the careful dismantling of language, he gave the 20th century some of its most enduring and unsettling works. Few writers have managed to say so much by saying so little.
Born on April 13, 1906, in Foxrock, a quiet suburb of Dublin, Ireland, Beckett came into a Protestant Anglo-Irish family. His father, William Beckett, was a quantity surveyor, and his mother, May, a strong-minded nurse. From childhood, Beckett was introspective. He spent long hours walking through the countryside alone. Though shy, he was sharp and observant—traits that would later shape the sparse interiority of his characters.
He studied modern languages—French and Italian—at Trinity College, Dublin, graduating in 1927. That same year, he went to Paris, where a chance encounter would shape the rest of his life. He met James Joyce, who was already deep into his work on Finnegans Wake. Beckett was drawn into Joyce’s circle and even helped with some of his linguistic experiments. But Beckett soon realized that Joyce’s expansive, encyclopedic style was not his own. Where Joyce layered meanings, Beckett began stripping them away. Where Joyce built monuments, Beckett started digging into silence.
Beckett returned to Ireland briefly but found little peace there. He struggled with depression. He wandered through Europe. He wrote, mostly without recognition. His early novels, like Murphy (1938), showed flashes of brilliance but failed to find an audience. Then came the war.
In World War II, Beckett made a choice that defined his moral character. He returned to France and joined the French Resistance, risking his life to pass intelligence and avoid detection. When his network was betrayed, he fled south to Roussillon, where he hid for two years, working as a laborer and continuing to write.
After the war, something shifted in Beckett. Perhaps it was the silence he had witnessed. Perhaps it was the absurdity of Europe in ruins. He began writing exclusively in French, a language he said forced him to write “without style.” It was in French that he wrote his masterpiece, Waiting for Godot (En attendant Godot), completed in 1949.
When it was first staged in 1953, Godot confused audiences. Two men, Vladimir and Estragon, wait under a barren tree. They talk. They fight. They repeat themselves. They consider suicide. But nothing happens, and Godot never comes. The play violated every rule of traditional drama. And yet, it resonated. Audiences in post-war Europe saw in that waiting the truth of the human condition—restless, uncertain, caught between hope and despair.
Beckett had no interest in fame. He often refused interviews and avoided public appearances. He believed in the work, not the personality behind it. Yet his writing continued to draw attention. Plays like Endgame and Krapp’s Last Tape pushed further into minimalism. Novels like Molloy, Malone Dies, and The Unnamable dissolved narrative entirely, reducing the voice to a stream of thought, often circular, often agonizing.
At the heart of Beckett’s work is a deep concern with time, memory, and identity. His characters are often suspended in uncertainty, unable to act, yet unable to stop thinking. They cannot escape their own thoughts, but those thoughts bring no clarity. This is not nihilism for its own sake. Beckett was not simply saying that life is meaningless. Rather, he was asking how we go on living even when meaning slips away.
In 1969, Beckett received the Nobel Prize in Literature. He did not attend the ceremony. Instead, he remained in Paris, where he had lived for decades, mostly quietly, often walking the same routes, observing people, listening to silence. He continued to write late into his life. His final works, such as Worstward Ho, reduced language to its barest essence: “Ever tried. Ever failed. No matter.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
Beckett died on December 22, 1989, in a nursing home in Paris. He was buried in Montparnasse Cemetery, next to his wife Suzanne, who had passed away just a few months earlier. There is no grand monument at his grave. Just a simple stone, quiet and unassuming, much like the man himself.
And yet, his voice lives on.
Samuel Beckett was a writer who stared directly into the void, but he did not flinch. He offered no easy hope, no promises of resolution. What he offered instead was honesty. He taught us that even in silence, something speaks. That even in waiting, there is life. That even in failure, we continue.
- English Literature Society
[본문 번역]
침묵의 작가, 사뮈엘 베케트
사뮈엘 베케트는 과잉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언어를 불신했고, 의미를 불신했으며, 지나치게 설명하려는 욕구를 자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어를 세심하게 해체함으로써 20세기에 가장 오래 지속되고 강렬한 울림을 주는 문학 작품들을 남겼습니다. 아주 적게 말을 함에도 이토록 많은 것을 토해낸 작가는 거의 없습니다.
1906년 4월 13일, 아일랜드 더블린의 조용한 외곽 지역인 폭스로크에서 태어난 베케트는 개신교계 영미계 아일랜드인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아버지는 적산사였고, 어머니는 강인한 성격의 간호사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베케트는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는 홀로 시골길을 걸으며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줍음이 많았지만 예리하고 관찰력이 뛰어났는데, 이러한 특성은 훗날 그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절제된 내면세계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註]Quantity Surveyor(QS): 이른바 적산사(積算士)는 건설 프로젝트의 사업비 계획, 예산 관리, 원가 분석, 계약 관리 등 재정적 측면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건설 원가 관리 전문가'다. 한편, QS는 한국의 '적산사'와 유사하지만,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서는 건설 전반의 재무 및 계약 관리를 아우르는 훨씬 광범위한 역할을 수행하며 전문 자격(MRICS 등)으로 인정받는 직업이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다음과 같다;
□ 원가 관리: 프로젝트 초기 예산 수립부터 설계 단계 원가 조언, 계약 전후의 비용 분석 및 통제.
□ 사업비 계획 및 관리: 현금 흐름 관리, 사업비 극대화 전략 수립.
□ 계약 관리 및 조달: 입찰, 계약 문서 작성 및 관리.
□ 클레임(Claim) 관리: 건설 분쟁 시 비용 관련 문제 해결.
※ 한국과의 차이점: 한국에서는 주로 '적산' 업무로 한정되지만,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서는 건설 사업의 재무 전반을 다루는 전문 분야로, 한국에는 없는 개념에 가깝다.
영국 왕립 감정평가사협회(RICS)에 의해 검증 및 관리되는 공인된 전문 자격이며, 영연방 국가에서 이민 및 취업에 유리한 직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더블린 트리니티 대학에서 현대 언어(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1927년에 졸업했습니다. 같은 해 파리로 떠난 그는 그곳에서 인생을 바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바로 소설 『피네간의 경야』 에 몰두하고 있던 제임스 조이스를 만난 것입니다. 베케트는 조이스의 서클에 합류하여 그의 언어적 실험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베케트는 곧 조이스의 확장적이고 백과사전적인 스타일이 자신과는 맞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조이스가 의미를 층층이 쌓아 올린 곳에서, 베케트는 의미를 깎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조이스가 기념비를 세운 곳에서, 베케트는 침묵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베케트는 잠시 아일랜드로 돌아왔으나 그곳에서 평온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우울증과 사투를 벌이며 유럽 전역을 방랑했습니다. 글을 썼지만 거의 모두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머피』(1938) 같은 초기 소설들은 번뜩이는 재기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전쟁이 터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베케트는 그의 도덕적 품성을 보여주는 중대한 선택을 합니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프랑스 저항군(레지스탕스)에 합류하여 정보 전달 업무를 맡으며 목숨을 걸었습니다. 조직이 배신당하자 그는 남쪽의 루시용으로 도망쳐 2년 동안 노동자로 일하며 숨어 지냈고, 그 와중에도 집필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베케트에게는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어쩌면 그가 목격한 침묵 때문이었을지도, 혹은 폐허가 된 유럽의 부조리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오직 프랑스어로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모국어가 아닌 프랑스어가 자신으로 하여금 작품을 "기교 없이" 쓰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1949년에 완성된 그의 걸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바로 이 프랑스어로 쓰였습니다.
1953년 처음 무대에 올랐을 때, 『고도』는 관객들을 당혹게 했습니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라는 두 남자가 앙상한 나무 아래서 기다립니다. 그들은 대화하고, 싸우고, 말을 반복합니다. 자살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고도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이 연극은 전통적인 드라마의 모든 규칙을 깨부수었습니다. 하지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전후 유럽의 관객들은 그 기다림 속에서 인간 존재의 진실—불안하고, 불확실하며, 희망과 절망 사이에 갇힌 모습—을 보았습니다.
베케트는 명성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인터뷰를 거절하기 일쑤였고 공석에 나타나는 것도 피했습니다. 그는 작가의 개성이 아닌 작품 그 자체를 믿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계속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엔드게임(승부의 끝)』이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같은 연극들은 미니멀리즘을 더욱 밀어붙였습니다. 『몰로이』, 『말론 죽다』,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와 같은 소설들은 서사 구조를 완전히 해체하고, 목소리를 순환적이고 고통스러운 의식의 흐름으로 환원시켰습니다.
베케트 작품의 핵심에는 시간, 기억,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의 인물들은 대개 불확실성 속에 매달려 행동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생각을 멈추지도 못합니다.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지만, 그 생각들은 어떤 명료함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허무주의를 위한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베케트는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사라져 버린 세상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삶을 지속해 나가는가를 묻고 있었습니다.
1969년, 베케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는 시상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수십 년간 거주해 온 파리에 머물며 조용히 같은 길을 산책하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침묵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는 노년까지 집필을 이어갔습니다. 『워스트워드 호(Worstward Ho)』 같은 그의 후기작들은 언어를 그 가장 순수한 정수만 남을 때까지 깎아냈습니다.
"늘 시도했다. 늘 실패했다. 상관없다.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베케트는 1989년 12월 22일 파리의 한 요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몇 달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쉬잔 곁, 몽파르나스 묘지에 묻혔습니다. 그의 묘비에는 화려한 장식이 없습니다. 오직 작가 자신을 닮은, 조용하고 겸손한 단순한 돌 하나가 놓여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사뮈엘 베케트는 허무의 심연을 직시하면서도 움츠러들지 않은 작가였습니다. 그는 쉽게 이룰 것 같은 희망이나 해결책을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정직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침묵 속에서도 무언가는 말을 한다는 것을, 기다림 속에도 삶은 흐른다는 것을, 그리고 실패 속에서도 우리는 계속 나아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더 나은 실패를 하라
배경 설명 및 감상 가이드
① 제임스 조이스와의 대비 (덧셈 vs 뺄셈)
본문에서 언급된 제임스 조이스는 현대 문학의 거장으로, 언어를 무한히 확장하고 모든 신화와 지식을 쏟아붓는 '맥시멀리즘'의 정점에 있었습니다. 베케트는 그의 조수 역할을 하며 큰 영향을 받았지만, 결국 정반대의 길을 택했습니다. 조이스가 "모든 것을 말함으로써" 인간을 표현하려 했다면, 베케트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깎아냄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찾으려 했습니다.
② 왜 프랑스어인가?
아일랜드인인 그가 모국어인 영어 대신 프랑스어로 집필한 이유는 매우 독특합니다. 영어를 쓰면 자꾸 화려한 수식이나 문학적인 기교를 부리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외국어(프랑스어)를 사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문체를 서툴고 단순하게 유지하고, 언어가 가진 가식을 제거하려 한 것입니다.
③ 부조리극 (Theater of the Absurd)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극'의 대명사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참혹한 살상을 겪은 인류는 "신은 어디 있는가?",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부딪혔습니다. 베케트는 논리적인 설명 대신, 끝없이 기다려도 오지 않는 '고도'를 통해 현대인의 실존적 고독과 허무를 무대 위에 그대로 올려놓았습니다.
④ "더 나은 실패를 하라" (Fail Better)
본문에 나온 "Try again. Fail again. Fail better."는 오늘날 자기계발서나 스타트업의 격언처럼 쓰이기도 하지만, 원래 의미는 훨씬 더 처절하고 실존적입니다. 완벽한 성공이나 의미를 찾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 실패의 과정을 겪어내는 것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