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구엄리 옛이야기-9화
민란
어젯밤 석례를 방으로 들여보낸 뒤에도 석철은 한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를 품었던 설렘과 흥분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마 전 성내에서 나라가 망해간다는 소문을 들은 뒤부터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돌덩이가 얹힌 듯 답답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나라를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석철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던 재작년, 광무 5년(1901년) 신축년 오월을 떠올렸다. 해묵은 세금의 폐단과 외래 종교의 횡포에 참다못한 섬사람들의 민심은 끝내 폭발하고 말았다. 들불처럼 번져나간 민란은 섬 전체를 피비린내로 물들였으니, 그것이 바로 신축민란이었다.
대정골을 출발한 창의군(倡義軍)이 엄쟁이 마을 비석거리를 지날 무렵, 그 또한 죽창을 움켜쥐고 행렬에 끼어들었다. 서진(西鎭)의 장두 이재수가 이끄는 민군(民軍)은 총칼과 죽창으로 무장한 채, 식량 전대를 허리에 질러 매고 기세를 올렸다. 대열의 선두에는 ‘척사(斥邪)’라 적힌 깃발을 든 장정 둘이 당당히 앞장섰다. 프랑스 신부와 교도들을 몰아내고, 악랄한 봉세관의 수탈을 끝내겠다는 서슬 퍼런 결의가 그들 사이에 들끓었다. 한편, 강우백 대장이 이끄는 동진(東鎭)은 서귀포를 돌아 동쪽 길을 택해 제주성으로 향했다. 민군은 진군 도중 천주교도들의 은신처를 색출해 신도들을 밧줄로 묶고 대열 앞자리에 세우고 진격했다. 마치 전쟁 포로를 앞세운 개선 행렬 같았다.
서진과 동진이 마침내 제주성을 포위했다. 성안의 보급로가 끊기며 주민들은 식량과 땔감 부족으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공방전이 치열해질수록 민가까지 날아드는 총탄에 주민들은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다. 한편, 황사평과 오라리에 집결한 창의군은 전열을 가다듬고 새로운 계책을 세웠다. 이들은 성문 앞까지 압박해 들어가 금방이라도 함락시킬 듯 기세를 올리는 동시에, 성안으로 통문을 보내고 주민들의 궐기를 촉구했다. 거센 압박과 회유 속에 제주성 안의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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