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톨트 브레히트

By Classic Literature

by 김양훈

Food first, then morality.

-Bertolt Brecht

Remembering Bertolt Brecht, poet, playwright and theatre director, on his 128th Birth Anniversary. Brecht’s plays have become passé now, because of his Marxist ideology. But his theatrical techniques had changed twentieth century theatre irreversibly. Peter Brooks, the legendary Director said: “Brecht is the key figure of our time, and all theatre work today at some point starts or returns to his statements and achievements”. He was a staunch anti-fascist and had to flee from Germany when the Nazis came to power. In his later life he wrote more poetry than plays and spent more time as a theatre Director.


위 글은 20세기 연극사의 거장이자 서사극의 창시자인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 2. 10-1956. 8.14)의 탄생 128주년을 기리는 헌사입니다.​

​[번역]

"먹고 사는 것이 먼저요, 도덕은 그다음이다(Erst kommt das Fressen, dann kommt die Moral)." > — 베르톨트 브레히트


​시인이자 극작가, 그리고 연극 연출가였던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탄생 128주년을 기립니다. 브레히트의 희곡들은 마르크스주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passé) 것이 되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의 연극 기법들은 20세기 연극을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켰습니다. 전설적인 연출가 피터 브룩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브레히트는 우리 시대의 핵심 인물이다. 오늘날 모든 연극 작업은 어느 시점에서인가 그의 발언과 업적에서 시작하거나 거기로 돌아간다." 그는 확고한 반파시스트였으며, 나치가 집권하자 독일을 떠나 망명해야 했습니다. 말년의 그는 희곡보다 시를 더 많이 썼으며, 연극 연출가로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배경 설명]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그의 시대

​1. "먹고 사는 것이 먼저, 도덕은 그다음"의 의미

​이 유명한 구절은 브레히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푼짜리 오페라(The Threepenny Opera)>에 나오는 노래 가사입니다.

​배경: 이 말은 굶주림과 빈곤에 허덕이는 하층민들에게 고결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기득권층의 위선을 비판합니다. 최소한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요구되는 도덕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역설하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2. 연극 기법의 혁명:
서사극(Epic Theatre)과 소외 효과

​글에서 언급된 "20세기 연극을 되돌릴 수 없게(irreversibly) 변화시킨 기법"은 주로 '소외 효과(Verfremdungseffekt, 가해 효과)'를 말합니다.

​전통 연극: 관객이 극에 몰입하여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게 만듭니다(카타르시스).

​브레히트 연극: 관객이 극에 너무 몰입하지 않도록 방해합니다. 갑자기 조명을 밝게 켜거나, 배우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노래를 부르며 장면을 끊습니다.

​목적: 관객이 비판적인 시각으로 무대 위의 사회적 문제를 바라보고, 연극이 끝난 뒤 현실 세계를 변화시키도록 자극하기 위함입니다.

​3. 반파시즘과 망명 생활

​독일 출신인 브레히트는 히틀러와 나치즘에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1933년 나치가 제국 의회 의사당 방화 사건을 빌미로 공산주의자와 지식인들을 탄압하기 시작하자, 그는 다음 날 바로 독일을 탈출했습니다. 이후 스칸디나비아와 미국을 거치며 고단한 망명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는데, 이 시기에 <담담한 용기(Mother Courage and Her Children)>, <갈릴레이의 생애> 등 인류사에 남을 걸작들을 집필했습니다.

​4. 피터 브룩의 평가

​글에 인용된 피터 브룩(Peter Brook)은 현대 연극의 가장 위대한 연출가 중 한 명입니다. 그가 브레히트를 "우리 시대의 핵심 인물"이라 칭한 이유는, 현대 연극이 '무대라는 환상'을 깨고 '사회적 실재'를 다루게 된 계기가 전적으로 브레히트의 이론과 실천 덕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생각]

​브레히트의 이데올로기는 세월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지만, "예술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망치여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되새겨 보아야 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는 1928년 베를린에서 초연된 이후 현대 연극의 지형을 바꾼 기념비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영국의 존 게이가 쓴 <거지 오페라>를 브레히트가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으로,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퇴폐적이면서도 매혹적인 음악이 결합된 '음악극'입니다.
​1. 줄거리: 도둑과 거지, 그리고 부패한 공권력

​무대는 런던의 뒷골목입니다. 주인공 맥히스(별명 '칼잡이 맥')는 매력적이지만 잔인한 강도단의 두목입니다.

◇​비밀 결혼식: 맥히스는 구걸 사업을 독점하며 거대한 부를 쌓은 '거지들의 왕' 제러마이어 피첨의 딸 폴리와 몰래 결혼합니다.

​피첨의 분노: 딸을 빼앗긴 피첨은 맥히스를 파멸시키려 합니다. 그는 경찰국장 브라운을 압박합니다. 브라운은 사실 맥히스의 오랜 친구이자 뇌물을 받는 공생 관계였지만, 피첨이 '거지들을 동원해 대관식을 엉망으로 만들겠다'고 협박하자 결국 맥히스를 체포합니다.

​배신과 체포: 맥히스는 창녀 제니의 배신으로 체포되었다가 탈출하고, 다시 체포되어 교수형 직전에 이릅니다.

​황당한 결말(데우스 엑스 마키나): 사형 집행 직전, 난데없이 여왕의 전령이 말을 타고 나타나 맥히스를 사면할 뿐만 아니라 그에게 귀족 작위와 연금까지 하사합니다. 이 의도적으로 작위적인 해피엔딩을 통해 브레히트는 관객들에게 현실의 부조리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2. 작품이 갖는 의미와 혁신성

​① "은행을 터는 것이 은행을 세우는 것에 비하면 무슨 죄가 되겠는가?"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입니다. 브레히트는 맥히스라는 범죄자를 통해 부르주아 사회의 위선을 폭로합니다.

​소수의 강도질보다 합법적으로 대중을 갈취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은행)이 더 큰 범죄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주인공 맥히스는 악당이지만, 그를 잡으려는 피첨(거지 사업가)이나 공권력(경찰국장) 역시 추악한 기득권일 뿐입니다. 즉, '범죄자와 자본가는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보여줍니다.

​② 서사극(Epic Theatre)의 완성

​브레히트는 관객이 극에 몰입해 감동받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대신 관객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소외 효과(V-Effekt): 극 중간에 갑자기 조명이 바뀌고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며 관객을 '깨웁니다'. "이건 연극일 뿐이야, 정신 차리고 저 상황의 모순을 봐!"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서푼짜리 가치: 제목부터가 '단돈 서푼이면 볼 수 있는 싸구려 공연'이라는 뜻입니다. 고결한 오페라의 형식을 빌려와 저질스러운 뒷골목 이야기를 담음으로써, 기존 상류층 예술의 권위를 조롱했습니다.

​③ 현대적 음악의 결합

​쿠르트 바일이 작곡한 '모리타트(칼잡이 맥의 노래)'는 오늘날 재즈 표준곡(Mack the Knife)으로 불릴 만큼 유명합니다. 감미로운 멜로디와 달리 가사는 맥히스의 살인 행각을 묘사하는데, 이러한 '음악과 내용의 불일치' 또한 관객을 낯설게 하여 비판적 사고를 유도하는 장치였습니다.

​3. 요약 및 시사점

​<서푼짜리 오페라>는 "도덕은 배부른 자들의 사치"라는 점을 꼬집습니다. 굶주린 이들에게 도덕을 강요하는 사회의 위선을 비판하며, 법과 정의가 어떻게 기득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지 보여줍니다.

​"사형수 맥히스에게 귀족 작위를 내리는 여왕의 전령처럼, 오늘날 사법부의 판결이 기득권의 죄를 사하고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서푼짜리 연극'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가" - 헛생각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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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의 명언들
“예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사회를 빚어내는 망치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예술과 행동을 연결지었다. 그는 예술이 현실을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이 말은 연극을 사회 변화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던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영웅을 필요로 하는 나라는 불행한 나라다.”

브레히트는 영웅주의를 고통과 연결 짓습니다. 그는 위기에 처한 사회는 영웅에 의존하지만, 정의로운 세상은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 인용구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대신 개개인의 구원자를 미화하는 발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세상이 지금과 같다고 해서 영원히 그대로일 수는 없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현실과 변화를 연결하며, 어려운 시기에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이 명언은 변화가 언제나 가능하다는 희망을 줍니다.

“굶주린 자여, 책을 집어 들어라.

그것은 무기다.” 브레히트는 지식과 힘을 연결지었다. 그는 독서와 학습이 사람들이 불의에 맞서 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 인용구는 교육을 자유를 위한 도구로 여기도록 사람들을 고무한다.

“싸우는 자는 질 수도 있다. 싸우지 않는 자는 이미 진 것이다.”

브레히트는 투쟁을 가능성과 연결 짓습니다. 그는 실패의 위험이 있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명언은 억압에 맞서 용기를 내고 행동에 나서도록 격려합니다.

“은행을 터는 것과 은행을 설립하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범죄와 권력을 연결 짓습니다. 그는 권력 있는 기관이 개인 범죄자보다 더 부패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 인용구는 사회가 누구를 “선”하고 누구를 “악”하다고 여기는지에 대한 관념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

카를 마르크스의 영향 :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카를 마르크스의 저작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브레히트의 희곡에는 계급 투쟁과 사회 불평등이라는 주제가 자주 등장하며, 이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반영한다.

쿠르트 바일과의 협업 :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작곡가 쿠르트 바일과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연극과 정치적 논평을 결합한 브레히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푼짜리 오페라"를 창작했습니다.

베를린에서의 시간 : 브레히트는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문화적, 정치적 중심지였던 베를린 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 도시의 활기 넘치는 예술계는 극작가이자 연출가로서 브레히트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미국 망명 생활 : 제2차 세계 대전 중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그는 로스앤젤레스에 거주하며 계속해서 글을 썼고, 토마스 만, 아르놀드 쇤베르크와 같은 다른 망명 작가들과 교류했습니다.

에르빈 피스카토르와의 관계 :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베를린 정치극의 선구자인 에르빈 피스카토르 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와 협업하기도 했습니다 . 피스카토르의 서사극 기법과 사상은 브레히트 자신의 연극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장 폴 사르트르에 미친 영향 : 브레히트의 연극과 정치에 대한 사상은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극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 사르트르는 브레히트가 사회 변화를 위한 도구로서 연극을 활용한 방식에 감탄했고, 그의 기법 중 일부를 자신의 희곡에 차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