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은세기 시문학과의 비교
전라도 가시내
이용악
알룩 조개에 입 맞추며 자랐나
눈이 바다처럼 푸를뿐더러 까무스레한 네 얼골
가시내야
나는 발을 얼구며¹
무쇠 다리를 건너온 함경도 사내
바람 소리도 호개²도 인전 무섭지 않다만
어두운 등불 밑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달게 마시련다만
어디서 흉참한 기별이 뛰어들 것만 같애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
온갖 방자의 말을 품고 왔다
눈포래를 뚫고 왔다
가시내야
너의 가슴 그늘진 숲속을 기어간 오솔길을
-나는 헤매이자
술을 부어 남실남실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거 다오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면
단풍이 물들어 천 리 천 리 또 천 리
-산마다 불탔을 겐데
그래두 외로워서 슬퍼서
-초마폭으로 얼굴을 가렸더냐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불술기³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
차알삭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취한 듯
때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
가시내야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전라도 가시내야
두어 마디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게
손때 수집은 분홍 댕기 휘휘 날리며
잠깐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이윽고 얼음길이 밝으면
나는 눈포래 휘감아 치는 벌판에
-우줄우줄⁴ 나설 게다
노래도 없이 사라질 게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尹永川 編 『李庸岳詩全集』(창비1988) 中.
[註]
1) 얼구며: ‘얼리며’의 방언.
2) 호개: 호가(胡歌). 북방 오랑캐의 노래.
3) 불술기: ‘불수레’, 즉 태양. 혹은 ‘기차’의 함경도 사투리.
4) 우줄우줄: 몸이 큰 사람이나 짐승이 가볍게 율동적으로 자꾸 움직이는 모양.
절라도 가시내는 누구인가?
시 속의 '전라도 가시내'는 일제강점기 북간도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생존을 위해 '술막'에서 일하게 된 비극적인 유랑민 여성인 '작부(酌婦)'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단순히 현대적인 의미의 '유흥업소 접대부'라기보다는, 나라 잃은 민족이 타향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밑바닥의 노동자이자 희생자로 이해해야 이 시의 비극성이 온전히 살아납니다.
1. 공간적 배경: '북간도 술막'의 의미
시(詩) 속에서는 이곳을 "두터운 벽도 이웃도 못 미더운 북간도 술막"이라고 표현합니다.
술막: 오늘날의 화려한 술집이 아니라, 국경 지대 나루터나 길목에 있는 허름한 주막입니다.
고립감: 사방에서 "흉참한 기별"이 들려오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이곳에서, 가시내는 낯선 사내들에게 술을 따르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녀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직업이 아니라, "기구한 운명"에 의해 떠밀려온 삶의 막다른 골목임을 시사합니다.
2. 가시내의 처지와 슬픔: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시 구절을 통해 그녀의 구체적인 상황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강제된 이동: 그녀는 "두만강을 건너온 지 석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전라도라는 따뜻한 남쪽 끝에서 북만주까지 온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수난입니다.
정서적 외상: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 울어" 기차를 타고 왔다는 대목은, 그녀가 이주 과정에서 겪었을 상실감과 공포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줍니다.
보조개에 새겨진 웃음: 사내는 그녀의 얼굴에서 "싸늘한 웃음이 소리 없이 새기는 보조개"를 발견합니다. 이는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짓는 기계적인 웃음이거나, 삶의 허무를 깨달은 자의 자조적인 미소에 가깝습니다.
3. 사내와 가시내의 관계:
'성적 대상'이 아닌 '동지적 연민'
이 시가 우리 가슴을 울리는 까닭은 화자인 함경도 사내가 그녀를 술집 작부가 아닌 '고향을 잃은 누이'이자 '고통의 동반자'로 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로의 방식: 사내는 그녀에게 "술을 따르어 가난한 이야기에 고히 잠겨 다오"라고 말합니다. 이는 유흥을 즐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가난하고 비참한 인생사를 공유하며 위로받고 싶다는 간절한 요청입니다.
댕기와 사투리: 사내는 그녀에게 "분홍 댕기"를 떠올리게 하고 "사투리"를 권합니다. 그녀가 술집 가시내로 전락하기 전, 전라도의 평범하고 순수했던 처녀 시절의 정체성을 잠시나마 회복시켜 주려는 따뜻한 배려입니다.
4. 러시아 문학과의 비교:
'소냐'와 '전라도 가시내'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등장하는 소냐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소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거리의 여자가 되었지만, 영혼만은 누구보다 순결했던 인물입니다.
전라도 가시내: 일제의 수탈로 인해 가족과 고향을 잃고 북간도 술막까지 흘러들어왔지만, 함경도 사내의 눈에는 그저 "알룩 조개에 입 맞추며 자란" 순수한 영혼이자 보듬어줘야 할 민족의 아픔 그 자체였습니다.
▮ 요약하자면
그녀는 술막 작부이지만, 시인은 그녀를 통해 나라를 잃고 유랑하는 한민족 전체의 비극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내는 그녀를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우리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자"는 태도로 대하는 것입니다.
러시아 은세기 시문학과의 비교
[시평]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는 일제강점기 유랑민의 비극을 다룬 한국 근대시의 걸작입니다. 이 작품을 러시아 은세기(Silver Age) 시문학과 비교하여 분석하면, 시인이 처했던 시대적 절망과 그 속에서 피어난 서정성이 얼마나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고 있는지 명확히 드러납니다.
1. 러시아 은세기 시문학과의 비교 분석
러시아 은세기(1890년대~1920년대 초)는 제정 러시아의 몰락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상징주의, 아크메이즘, 미래주의가 꽃핀 시기입니다. 이용악의 시 세계는 특히 블로크(Aleksandr Blok)나 예세닌(Sergei Yesenin)의 문학과 닿아 있습니다.
① 알렉산드르 블로크의 '숙명적 비애'와 고립
블로크는 몰락해 가는 러시아를 배경으로 절망적인 예감과 어두운 등불, 안개 자욱한 술집을 배경으로 한 시들을 썼습니다.
◇비교: <전라도 가시내>의 "북간도 술막"과 블로크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낯선 술집'은 동일한 상징적 공간입니다. 외부의 "흉참한 기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두터운 벽’ 속에서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을 마시는 함경도 사내의 모습은, 혁명 전야의 불안을 노래한 블로크의 '낯선 여인' 속 화자와 닮아 있습니다.
② 세르게이 예세닌의 '향토적 애수'와 상실
농민 시인 예세닌은 급변하는 근대화 속에서 잃어버린 고향과 자연을 노래했습니다.
◇비교: "전라도 사투리"와 "분홍 댕기"를 통해 고향(너의 나라)으로 잠시 돌아가라는 위로는 예세닌이 보여준 고향에 대한 지독한 향수와 연결됩니다. 함경도 사내와 전라도 가시내가 만주 벌판에서 나누는 교감은, 제국주의라는 거대 서사에 짓밟힌 '향토적 영혼들의 연대'라는 점에서 예세닌의 서정성과 궤를 같이합니다.
③ '아크메이즘(Acmeism)'적 구체성
러시아 아크메이스트(만델슈탐, 아흐마토바 등)들은 모호한 상징 대신 사물의 구체적인 숨결을 중시했습니다.
◇비교: 이용악은 "무쇠 다리", "불술기(기차)", "석 달 전 단풍" 등 매우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시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막연한 슬픔이 아니라 '신체적 고통(얼구며)'과 '물리적 거리(천 리 천 리)'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러시아 아크메이즘이 추구한 사물의 실체적 본질에 접근하는 태도와 유사합니다.
2. [시평]
차가운 벌판 위에서 나눈 '언어의 온기'
▮'북방'이라는 실존적 극한 공간
이 시의 배경인 '북간도'는 단지 지리적 장소가 아닙니다. "얼음길", "눈포래", "무쇠 다리"로 대변되는 차갑고 단단한 세계입니다. 화자인 함경도 사내는 이 가혹한 세계를 뚫고 온 생존자이며, 그가 만난 전라도 가시내는 그 추위 속에서도 "울 듯 울 듯 울지 않는" 강인한 민초의 표상입니다.
▮사투리로 복원하는 '상실된 조국'
화자는 가시내에게 "너의 사투리로 때아닌 봄을 불러 줄게"라고 말합니다. 일제에 의해 언어와 영토를 빼앗긴 상황에서, 방언(사투리)은 가장 사적인 고향이자 마지막 남은 조국입니다. 사내가 가시내에게 사투리를 권하는 것은 잠시나마 "너의 나라(전라도/조국)"로 돌아가 휴식하라는 눈물겨운 배려입니다.
▮비장미 넘치는 허무의 미학
마지막 연에서 사내는 다시 "눈포래 휘감아 치는 벌판"으로 나설 것을 예고합니다.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
이 구절은 파스테르나크가 <노벨상>에서 노래한 '덫에 갇힌 짐승'의 절망보다 더 처절합니다. 파스테르나크가 '선한 정신의 승리'라는 희망을 보았다면, 이용악의 사내는 어떠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운명을 예감하면서도 우줄우줄 걸어 나갑니다. 이는 비극적 운명을 수용하면서도 굴복하지 않는 비장미(Sublime)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3. 종합 의견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는 러시아 문학의 거장들이 보여준 역사적 비극과 개인적 서정의 결합을 한국적 맥락에서 완성한 시입니다. 춥고 거친 만주 벌판(러시아의 시베리아와 유사한 공간적 정서)을 배경으로, 가장 먼 곳에서 온 두 남녀가 '사투리'라는 가느다란 끈으로 연결되는 모습은 억압받는 모든 민족의 보편적 슬픔을 울립니다.
두만강과 불술기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에서 '두만강'과 '불술기'는 단순한 지리적 배경이나 교통수단을 넘어, 당시 유민들이 처했던 '생존의 임계점'과 '강제된 근대성'을 상징하는 핵심 장치입니다. 이를 러시아 문학적 감성과 연결하여 분석해 보겠습니다.
1. 두만강(豆滿江): 단절과 생존의 '루비콘강’
러시아 문학에서 볼가강이 민족의 젖줄이자 고난의 역사적 흐름을 상징한다면, 이용악에게 두만강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실존적 경계'입니다.
◇비극적 단절: "네 두만강을 건너왔다는 석 달 전"이라는 표현에서 두만강은 돌아갈 수 없는 강입니다. 이는 러시아 은세기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가 <레퀴엠>에서 묘사한 '차가운 강물'의 이미지와 닿아 있습니다. 강을 건너는 순간 고향(전라도)과의 물리적, 정서적 연결은 끊어지며, 남는 것은 "두 낮 두 밤을 두루미처럼 울어야 하는" 슬픔뿐입니다.
◇공포의 공간: 당시 유민들에게 두만강은 국경 수비대의 감시와 혹독한 추위가 도사리는 공포의 공간이었습니다. 사내가 "발을 얼구며" 건너온 그 무서운 경험은, 가시내가 석 달 전 겪었을 고통과 공명하며 두 비극적 영혼을 하나로 묶어주는 공동의 상처가 됩니다.
2. 불술기(기차): 거부할 수 없는 '비정한 근대’
'불술기'는 불수레, 즉 기차를 의미하는 방언입니다. 이는 러시아 은세기 문학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철도'의 모티프와 긴밀히 연결됩니다.
◇강제된 이주: 기차는 유민들을 북간도로 실어 나르는 거대한 기계 장치입니다. 알렉산드르 블로크나 파스테르나크의 작품에서 기차가 종종 '운명의 수레바퀴'나 '파괴적인 힘'으로 묘사되듯, 이용악에게 기차는 가시내를 고향에서 떼어내 눈보라 치는 북방으로 던져버린 비정한 존재입니다.
◇유리창의 흐림: "불술기 구름 속을 달리는 양 유리창이 흐리더냐"라는 대목은 압권입니다. 기차의 매연(구름)과 가시내의 눈물로 인해 흐려진 유리창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디론가 끌려가는 민초들의 불투명한 미래를 시각화합니다. 밖은 단풍이 불타는 절경일지라도, 차창 안의 가시내에게는 오직 슬픔의 장막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3. 종합 시평:
"노래도 없이 사라지는" 자의 실존적 위엄
이 시의 결말은 이용악 문학의 정수입니다. 사내는 가시내에게 잠시 '분홍 댕기' 날리던 시절로 돌아가라고 위로하지만, 자신은 다시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것"을 선언합니다.
이는 러시아의 오시프 만델슈탐이 스탈린 체제 하에서 자신의 소멸을 예감하면서도 시를 썼던 '비극적 결기'와 유사합니다. 이용악은 일제강점기라는 거대한 '눈포래' 속에서 한 개인의 자욱(흔적)은 쉽게 지워질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사라짐'을 노래함으로써, 역사는 기록하지 않았던 전라도 가시내와 함경도 사내의 만남을 영원한 문학적 실체로 부활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가장 낮은 곳에서 만난 두 언어(전라도와 함경도 사투리)가 어떻게 서로의 시린 발을 데워주는가를 보여주는 휴머니즘의 풍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용악의 월북과 북방서정
이용악 시인의 월북 경위와 그가 남긴 '북방 서정'의 문학사적 의미는 한국 현대 문학사에서 아프고도 강렬한 대목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 문학이 시베리아라는 광활한 유배지와 벌판을 통해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했듯, 이용악은 '북방'을 우리 민족의 비극적 생존 공간으로 승화시켰습니다.
1. 이용악의 월북과 비극적 종말
이용악은 해방 공간에서 '남로당' 계열의 문화 단체에서 활동하다가 6.25 전쟁 발발 전후인 1950년경 월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월북의 배경: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철저한 현실 인식과 계급적 토대에 근거한 시를 써왔습니다. 해방 후 혼란스러운 남한의 정치 상황 속에서 자신이 꿈꾸던 '노동자와 민중이 주인 되는 세상'을 찾아 북으로 향한 실천적 선택이었습니다.
◇북한에서의 삶과 숙청: 북한으로 간 이용악은 초기에는 종군작가로 활동하며 대우를 받았으나, 1950년대 후반 북한 정권의 정치적 숙청(남로당계 숙청) 과정에서 변방으로 밀려났습니다. 그는 결국 1971년경 협동농장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학적 거세: 안타깝게도 월북 이후 그의 시는 체제 선전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과거의 번뜩이던 리얼리즘적 서정성을 잃어버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는 파스테르나크가 소련 체제 내에서 겪었던 '영혼의 고립'과도 닮아 있습니다.
2. '북방 서정'의 계보:
한국 문학의 지평을 넓히다
이용악은 한국 시사(詩史)에서 '북방 서정'이라는 독보적인 영역을 개척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북쪽 지방을 배경으로 하는 것을 넘어선 철학적 개념입니다.
① 유이민(流移民)의 서사시
이용악 이전의 전원시들이 고향의 평화로움을 노래했다면, 그는 '파괴된 고향'과 '유랑하는 민초'를 시의 중심에 세웠습니다. <전라도 가시내>, <오랑캐꽃>, <낡은 집> 등은 우리 민족이 왜 정든 땅을 떠나 추운 만주 벌판으로 가야만 했는지를 증언하는 역사적 기록물입니다.
② 리얼리즘과 서정의 결합
그의 시는 차갑고 딱딱한 현실(무쇠 다리, 눈포래)을 다루면서도, 그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적 연민(사투리, 분홍 댕기)을 놓치지 않습니다. 이러한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심장'의 결합은 훗날 1970~80년대 한국 리얼리즘 문학(신경림, 백기완 등)에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3. 한국의 '이용악'과 러시아의 '네크라소프'
이용악의 시 세계는 러시아의 니콜라이 네크라소프(Nikolay Nekrasov)와 비교하면 더욱 명확해집니다. 네크라소프는 "시인이 되기 전에 시민이 되어라"라고 주장하며 러시아 민중의 고통을 노래했던 시인입니다.
◇민중의 고통에 대한 공감: 네크라소프가 러시아 농노들의 비참한 삶을 '복수와 슬픔의 뮤즈'로 노래했듯, 이용악은 만주와 간도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죽어가는 동포들의 삶을 '얼어붙은 언어'로 기록했습니다.
◇경계인으로서의 시각: 두 사람 모두 중심부(서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화려함보다는 변방(북간도, 시베리아)의 거친 숨결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세계 문학사적 보편성을 공유합니다.
4. 요약: 지워지지 않은 '자욱'
이용악은 <전라도 가시내>에서 자신은 "자욱도 없이 사라질 게다"라고 했지만, 그의 시는 한국 문학사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분단이라는 비극으로 인해 오랫동안 '금기된 시인'이었으나, 1988년 해금 이후 그는 우리 문학이 잃어버렸던 '북쪽의 영혼'을 되찾아준 인물로 재평가받고 있습니다.
함경도 사내의 투박한 진심과 전라도 가시내의 애음(哀音)이 만난 그 '북간도 술막'은, 오늘날 우리에게 이념보다 소중한 것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인간의 사투리'임을 묵직하게 일깨워줍니다.
이용악과 백석의 다른 시선
한국 현대 시사에서 백석과 이용악은 1930년대 '북방'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면서도, 그 공간을 채색하는 방식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 평행선과 같습니다. 백석이 북방의 '풍속과 맛'을 통해 민족의 원형을 복원하려 했다면, 이용악은 북방의 '추위와 굶주림'을 통해 민중의 비극적 리얼리티를 고발했습니다. 두 거장의 차이점을 네 가지 핵심 포인트로 비교해 봅니다.
1. 북방을 바라보는 시선:
'Ethnology(민속학)' vs '리얼리즘(현실주의)’
◇백석(기억의 북방): 백석에게 북방(평안도)은 잃어버린 공동체의 따스함이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그는 명절 음식, 일가친척들의 북적임, 여우 난 골족의 설화 등을 나열하며 민족의 고유한 삶의 양식을 보존하려 했습니다.
◇이용악(현적<玄寂>의 북방): 이용악에게 북방(함경도·만주)은 생존의 한계치가 시험받는 공간입니다. 그곳은 풍요로운 음식이 아니라 "안개처럼 자욱한 시름"과 "발을 얼구는" 추위만이 가득한 유랑민의 사지(死地)였습니다.
2. 시적 소재:
'음식과 풍속' vs '노동과 유랑‘
◇백석: 국수, 흰 바람벽, 여우, 자작나무 등 감각적이고 서구적 세련미가 가미된 소재를 즐겨 썼습니다. 모던한 감각으로 토속적 소재를 다루는 '모더니스트의 향수'가 짙습니다.
◇이용악: 무쇠 다리, 굴뚝, 검은 연기, 낡은 집, 국경 등 거칠고 물리적인 고통이 느껴지는 소재를 택했습니다. 일제의 수탈로 인해 무너진 하층민의 삶을 증언하는 '리얼리스트의 고발'이 주를 이룹니다.
3. 언어의 질감:
'맛깔나는 평안도 방언' vs '억센 함경도 방언’
◇백석: 백석의 시어는 매끄럽고 음악적입니다. 평안도 사투리를 사용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잃지 않아, 독자로 하여금 고향의 정감을 느끼게 하는 '미학적 방언'입니다.
◇이용악: 이용악의 언어는 투박하고 단단합니다. 함경도 방언을 통해 유민들의 거친 삶을 날것 그대로 전달하며, 독자에게 정서적 안락함보다는 '실존적 충격'을 주는 '생존적 방언'입니다.
4. 러시아 문학과의 비교 관점
◇백석 ↔ 예세닌(Sergei Yesenin): 사라져 가는 농촌의 풍경을 애달프게 노래하고, 도시 지식인으로서 시골의 순수함을 동경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아 있습니다.
◇이용악 ↔ 네크라소프(Nikolay Nekrasov): 민중의 신음소리를 시의 리듬으로 삼고, 시인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용악은 네크라소프적 전통에 더 가깝습니다.
▮백석 vs 이용악 비교
(백석-이용악 )
◇핵심 정서: 그리움, 고독, 공동체의 정감-슬픔, 분노, 유랑의 비애
◇대표작: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여우난골족-전라도 가시내, 오랑캐꽃, 낡은 집
◇북방의 의미: 돌아가고 싶은 정신적 고향-탈출하고 싶은 가혹한 현실
◇화자의 위치: 관찰하고 추억하는 지식인-고통을 함께 겪는 유랑자
▮ 소결: 두 갈래의 북방
백석의 시가 "우리 민족은 이렇게 아름답게 살았다"라고 말한다면, 이용악의 시는 "우리 민족은 이렇게 비참하게 견뎌냈다"고 외칩니다. 백석이 민족의 '뿌리'를 지켰다면, 이용악은 민족의 '상처'를 기록한 셈입니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과
전라도 가시내의 비교
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은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와 함께 한국 문학사에서 ‘북방’을 배경으로 한 걸작으로 꼽히지만, 그 끝에 도달하는 철학적 결론은 사뭇 다릅니다. 이용악이 눈보라 속으로 ‘사라짐’으로써 비극을 정면으로 돌파했다면, 백석은 고독의 끝에서 ‘갈매나무’를 바라보며 내면의 단단함을 회복합니다.
1.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에 담긴 저항의 방식
이 시는 백석이 가족과 떨어져 타향(남신의주)의 박시봉이라는 사람의 집(방)에 얹혀살며 쓴 편지 형식의 시입니다.
▮고통을 응시하는 법: '운명론적 수용'이용악의 화자가 "흉참한 기별"을 두려워하며 외부 세계의 폭력성에 긴장했다면, 백석의 화자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합니다.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그는 자신의 삶이 어떤 거대한 '운명'에 의해 굴러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는 절망이 아니라, 고통을 객관화하여 바라보는 지적인 태도입니다.
▮'갈매나무'의 상징: 굳고 정한 저항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화자는 눈을 맞으며 서 있는 '갈매나무'를 떠올립니다.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용악의 자욱(흔적): 눈보라에 휘감겨 흔적도 없이 사라짐 (소멸을 통한 비장미)
◇백석의 갈매나무: 눈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서 있음 (존재를 지켜내는 내면적 고결함)
백석은 폭풍 같은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도 '나'라는 인간의 고결함(정결함)은 더럽혀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갈매나무에 투사합니다.
2. 이용악의 '사라짐' vs 백석의 '버티기’
두 시인의 북방 서정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은 실존적 차이가 드러납니다.
◇비교 항목: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백석의 ‘남신의주 유동...’
▮재난의 성격: 외부적 폭력(일제, 가난, 유랑)-내면적 고독(상실, 외로움, 무력감)
▮대응 방식: 우줄우줄 나섬(행동과 소멸)-곰곰이 생각함 (성찰과 인내)
▮결말의 이미지: 노래도 자욱도 없는 허무-굳고 정한 갈매나무
▮러시아적 비유: 혁명가적 열정(네크라소프)-수도승적 정적(톨스토이적 성찰)
3. 한국 문학사에 남긴 거대한 자욱
두 시인은 해방 이후 각기 다른 이유로 우리 곁에서 잠시 사라졌었습니다. 이용악은 월북으로, 백석은 북한 체제 내에서의 침묵으로 잊혔으나, 1988년 해금 이후 두 줄기의 '북방'이 다시 합쳐지며 한국 문학은 비로소 온전해졌습니다.
이용악은 우리에게 "민족이 겪은 살 떨리는 추위"를 잊지 않게 해 주었고, 백석은 우리에게 "그 추위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품격"이 무엇인지 알려주었습니다.
4. 종합평: 북방에서 온 두 통의 편지
이용악의 <전라도 가시내>가 만주 벌판의 선술집에서 나누는 '뜨거운 소주 한 잔' 같다면, 백석의 시는 추운 겨울밤 홀로 창밖을 내다보며 쓰는 '정한(淨閑)한 편지' 같습니다. 파스테르나크의 시 <노벨상>의 구절처럼, 이들은 모두 "사악한 세력이 물리쳐질 그날"을 기다리며, 각자의 방식(소멸 혹은 인내)으로 내 땅의 아름다움을 써 내려갔던 시대의 인질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