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 사랑과 기억

by 김양훈

2026년 2월 20일 0시 55분 장모님 소천

그 모진 세월 다 이겨내신 장모님이 오늘 새벽 훌훌 그곳으로 떠나가셨다. 나를 알아나 볼까, 하시던 장인어른 만나셔서 못다 이룬 정 그곳에서 마저 나누시길 비옵니다. 오십사 년 세월, 못난 저에게 나누어주신 고운 정 미운 정 잘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2월 21일 [입관]

아침 일찍 [입관식]을 마쳤다. 장인어른 만나러 길을 떠나시는 장모님은 곱게 얼굴 화장도 하셨다. 북받치는 울음에도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는 겨우 마칠 수 있었다. '미여지뱅듸' 끝에서는 경주출신 장인어른, 대한민국 육군대위께서 날선 제복을 갖춰 입으시고 당신을 맞으시리라. 통한의 사별 72년!

제주 무속 신앙에서 [미여지뱅듸]는 지리적인 장소의 의미를 넘어, 이승의 삶을 마친 망자가 저승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영적인 전이(轉移) 공간'이자 '시련의 광야'를 뜻한다. 아래는 제주의 서사무가(敍事巫歌)인 본풀이에 등장하는 미여지뱅듸의 종교적 의미를 풀어 본 것이다.

1. 이승과 저승의 완충 지대

제주 신화에서 저승은 대문을 열면 바로 나타나는 곳이 아니다. 망자는 이승의 집을 떠나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 길목에 놓인 공간이 '미여지뱅듸'다.

◇경계성: 이곳은 이승도 저승도 아닌 '사이 공간'이다. 망자는 이곳을 지나며 비로소 이승의 미련을 떼어내고 저승의 질서로 편입되기 시작한다.

◇ 아득한 거리감: 무가에서는 이곳을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넓은 벌판"으로 묘사한다. 이는 죽음이 가져오는 영원한 단절과 고립감을 시각화한 것이다.

2. 망자가 겪는 시련: '가시 지옥'과 '자갈길'

무속 의례인 저승 가는 길을 닦는 굿인 '시왕맞이' 에서 그려지는 미여지뱅듸는 매우 고통스러운 곳이다.

◇ 신체적 고통: 이곳은 날카로운 가시덤불이 우거진 '가시 문'이나 발바닥을 찌르는 날카로운 자갈밭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 정화의 과정: 망자가 이 험난한 벌판을 헤매며 고통을 겪는 것은, 이승에서 지은 죄를 씻어내거나 삶에 대한 집착을 강제로 내려놓게 만드는 일종의 정화인 카타르시스(Catharsis) 과정이다.

3. '질침' 의례와의 연관성

제주의 큰굿 중에는 '질침(길침)'이라는 순서가 있습니다. 이는 망자가 저승으로 편안히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주는 의식이다.

무속인은 미여지뱅듸의 험한 길을 상징하는 무구(巫具)인 쌀이나 천을 놓고, 신칼로 가시덤불을 치우는 시늉을 하며 망자의 앞길을 틔워준다.

이때 "미여지뱅듸 험한 길을 무사히 지나 시왕 맞이하러 가옵소서"라는 축원을 올리는데, 이는 산 자가 죽은 자에게 베푸는 마지막 자비이자 배려다.

4. 신화적 존재와의 만남

미여지뱅듸는 저승사자인 '차사'인 강림도령이 망자를 인계하여 끌고 가는 주된 배경이 된다. 망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생전 기록을 확인받거나, 저승으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이승의 가족들을 향해 눈물짓는 장소로 그려진다.

요약하자면

제주 무속 신앙 속 미여지뱅듸는 "망자의 영혼이 본격적인 저승의 심판대에 서기 전, 이승의 때를 벗고 고독하게 가로질러야 하는 광대한 무(無)의 공간"이다.

※ '미여지 뱅듸'는 두 단어가 결합한 형태다.
◇ 미여지: '미어지다' 혹은 '터지다'라는 뜻의 제주어 형용사다. 보통 "가슴이 미어지다"라고 할 때처럼, 무언가 꽉 차서 터져 나갈 것 같은 상태를 의미한다.
◇ 뱅듸: '뱅디'라고도 하며, '넓고 평평한 들판' 혹은 '황무지'를 뜻하는 제주사투리다. 보통 농사를 짓기 어려운 돌밭이나 거친 들판을 일컫는다.
따라서 직역하면 "미어질 듯이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 된다.

기억(I)

[미사리 송창식 라이브까페 '쏭아']
2014년 2월 14일, 창식이 형아 팬 장모님

달 있는 제사

이용악


달빛 밟고 머나먼 길 오시리

두 손 합쳐 세 번 절하면 돌아오시리

어머닌 우시어

밤내 우시어

하아얀 박꽃 속에 이슬이 두어 방울


이용악의 제3시집인『오랑캐꽃』(1947) 수록


2월 21일 [일포]

[제주]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발인 전날 일포(日哺)에는 큰딸이 제사와 상객(喪客)을 위한 제물을 마련했다. 제주섬의 일포제(日哺祭)는 출상 전날 밤 고인과의 마지막 이별을 고(告)하는 제사다. 육지와는 달리 딸들도 제사에 참여하여 곡(哭)을 한다. 이날은 조문객들이 하루 종일 붐빈다. 조문객들은 만장(輓章)이나 향촉을 가지고 왔다. 이 날 밤 친족이나 상주의 벗들이 밤샘을 하며 상가를 지켰다. 상가에서는 밤샘 상객들을 위해 밤참을 내어 놓았다. 여긴 서울이고 고향 제주에서도 이러한 번잡한 장례 퐁속은 거의 사라졌다.


2월 22일 [발인과 화장]

서울추모공원


2월 23일 오전 [국립제주호국원 합장식]

국립제주호국원 장모님과 장인어른 합장식

별과 별들 사이를

해와 달 사이 찬란한 허공을 오래도록 헤매다가

끝끝내

한 번은 만나야 할 황홀한 꿈이 아니겠습니까


가장 높은 덕이요 똑바른 사랑이요

오히려 당신은 영원한 생명


나라에 큰 난이 있어 사나히들은 당신을 향할지라도

두려울 법 없고

충성한 백성만을 위하야 당신은

항상 새누리를 꾸미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이르지 못한 바닷가 같은 데서

아무도 살지 않은 풀 우거진 벌판 같은 데서

말하자면

헤아릴 수 없는 옛적 같은 데서

빛을 거느린 당신


이용악의 제3시집 『오랑캐꽃』中 <죽음>


[제주 태고종 화엄사]

요사채 앞마당에 꽃이 활짝 핀 매화나무가 우릴 반겼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1980년대초 사월초파일이었다. 장모님 모시고 이 절에 온 기억이 났다. 절 옆을 흐르는 화북천 냇가에 아카시꽃이 흐드러진 날이었다. 이 절에서 장모님의 사십구재를 지내기로 하고 신주를 모셨다. 1970년 창건 때부터 장모님이 속세의 시름을 의탁하시던 절이다. 아담한 이 절에는 일주문 대신 화북천 깊은 계곡을 건너는 다리 광서교가 놓여 있다. 삼도천이 생각나는 광서교를 건너오니 금새 소란한 속세였다.

제주 태고종 화엄사



기억[II]

2011년 5월 7일 어버이날 모임

기억[III]

2012년 5월 6일 어버이날 모임

기억[IV]

2012년 5월 26일 둔촏동천문허브공원

기억[V]

2012년 현충일

기억[VI]


2012년 7월 7일 두물머리

기억[VII]

2012년 7월 7일 월츠앤닥터만

기억[VIII]

2013년 5월 5일 둔촌동 허브천문공원

기억[IX]

2013년 6월 29일 둔촌동허브천문공원

기억[X]

2015년 2월 14일 송창식 라이브카페 <쏭아>

기억[XI]

2015년 7월 19일 둔촌동 허브천문공원

기억[XII]

2018년 12월 23일 메리 크리스마스

기억[XIII]

2010년 생신 축하
2011년 생신 축하
2012년 생신 축하-카페 <초대>
2013년 생신 축하
2018년 생신 축하
결혼식 사진-1950년 탐라호텔
1987년 AID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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