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들아, 어느새 우린 인생 졸업을 앞두고 있구나!
[구엄국민학교 21회 졸업] 6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김지호 선생님. 그리고 윗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영희, 고성익, 김상규, 강영필, 김천석, 나.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가 두 명이다. 두 동무 모두 동네에선 잘 사는 측이었다. 상규가 보내준 1965년 2월 19일 찍은, 이 졸업 기념사진 장소는 교무실 앞이다.
구엄국민학교 제21회 졸업생은 남녀 68명이었다. 제주도 북군 애월면의 구엄리, 중엄리, 신엄리, 용흥리, 수산리 아이들은 입학에서 졸업까지 내리 한 반이었다. 실습지에 뿌릴 똥거름을 푸다 똥통에 빠진 일과, 강냉이떡과 강냉이죽 배급식을 조금이라도 더 얻어먹으려 애쓰던 일이며 시골학교다운 별의별 추억이 다 있다. 나는 애월중학교를 마치고 성내 학교를 거쳐 섬을 떠나 서울로 옮긴 이후 이들과 도탑고 재미난 추억은 없다.
자랑이라면 자랑. 나는 이날 졸업생 대표로 고별사를 읊었고, 최고상인 교육감상과 벽돌보다 크고 무거운 국어사전을 부상으로 받았다. 사진 속에서 내 표정이 좋지 않은 이유가 있다. 이런 성적인 내가 제주 최고 명문 중학교인 제주 시내 오현중(五賢中)을 못 가고, 그때 소싯적 걸음으로 왕복 두 시간을 통학해야 하는 애월중(涯月中)을 가야 했기 때문이다. 사진 속 네 동무나 오현중을 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마음이 더 아프고 힘들었을 것이다. 짐작건대, 몇 년 후 아버지가 일본 밀항을 결심하신 이유의 반(半)은 그래서였다.
다시 가 본 구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