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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고성아구찜

아귀찜집 딸로 산다는 건



“고성아구찜입니다. 00 아파트 102동 505호, 아귀찜 대짜. 2만 오천 원입니다. 빨리 배달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두 귀를 쫑긋 세워 전화받습니다. 아이가 받는다고 어른을 찾는 손님도 계셨지만 엄마가 지금 바쁘다는 양해 말씀을 올리면 나를 믿고 주문을 해주십니다. 띠리링 전화 소리는 두근두근 신이 났어요.



두터운 손에 매끈한 콩나물 두세 줌이 잡혀갑니다. 검은 젤리 같은 아귀와 우둘투둘 빵빵한 미더덕은 냉장고에서 끌려 나와 물에 씻깁니다.


붉은 앞치마를 두른 여전사가 용감하게 가스 점화기를 딸깍 누릅니다. 퍽하고 붙은 불은 활활 타오릅니다. 물이 담겨 한 손으로 들기 힘든 웍을 불 위에 올리고 그 속으로 아귀가 몸을 담그면 청주와 소금도 풀어져 푸욱 삶깁니다. 집게의 도움으로 궁중 팬에서 탈출한 아귀수육은 모락모락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하얀 속살에 검정 가죽을 걸친 자태를 뽐냅니다. 팔팔 끓던 그 육수에 콩나물과 미더덕이 투입되고 잠시 뒤 아귀 옆으로 탈출합니다.


웍은 왼손에 단단히 잡히고 숟가락도 오른손에 쥐어져 고춧가루, 후추, 다진 마늘, 생강 그리고 들깻가루 앞으로 돌격합니다. 나란히 선 양념들을 들락거리며 탁탁 몇 숟가락씩 양념을 퍼 넣습니다.


 감자전분과 찹쌀가루 푼 물이 다시 불 위에 올라간 웍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 섞입니다. 걸쭉한 양념이 되면 아귀, 콩나물, 미더덕 그리고 미나리를 넣어 덖습니다.


접시에 아귀찜을 담고 방아잎으로 색을 더하고 빨간 실고추를 수놓으며 깨까지 솔솔 뿌려 장식한 뒤 접시 가를 쓰윽 닦으면 고성아구찜, 완성입니다.



나는 가족과 떨어져 할머니 손에서 자랐어요. 7살에 그리던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형제들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으로 바빴습니다. 어머니는 남의 가게를 그만두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상가를 얻어 ‘고성아구찜’을 개업하셨어요.


“가게 스티커 좀 돌려주라.”

홍보를 위해 우리 형제들은 아파트 계단을 돌며 대문의 우유 구멍으로 가게 스티커를 넣어요. 개가 짖거나 경비실 아저씨께 혼나서 손등으로 눈물을 훔친 적도 많답니다. 언니, 오빠들은 대신 스티커를 돌려주기도 했지요.


"와서 콩나물 좀 따라."

터덜터덜 엄마의 가게로 들어갑니다. '콩나물 따기 대회가 있었으면, 난 1등인데.'라며 허리 높이의 고무대야 한 통에 참을성을 힘껏 발휘합니다. 비누로 박박 문질러도 가시지 않고 속을 썩이는 비릿한 콩나물 냄새는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을 휘저었습니다.

“배달 하나만 해줄래.”

비닐봉지에 아귀찜을 담고 조심조심 손님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리니 문이 딸깍 열렸어요. 그런데 글쎄, 짝사랑하던 남자 친구가 서 있지 뭐예요. 나는 아귀찜만 전하고 돈도 받지 않은 채 계단으로 도망쳤습니다. 쪼글쪼글한 손과 빨개지는 볼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음식, 첫 연애사업을 방해한 음식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을 까요? 음식 장사를 택한 엄마를 또 원망했습니다.


“엄마랑 시장에 같이 갈래?”

어머니는 우리들 끼니에다 가게에 쓸 재료를 구입하시느라 항상 힘겹게 버스를 타셨지요. 어느 날은 무, 감자, 당근이 버스 안을 데굴데굴 구르고 아귀, 미더덕 물이 새어 나와 버스기사의 핀잔을 듣기도 하였답니다. 또 어느 날은 시장 안 아귀 파는 아주머니께서 따라온 제가 심심해 보였는지 웃으며 말씀하셨어요.


“아귀 이놈이 출세한 놈이야. 옛날에는 잡히면 못생겼다고 도로 바다에 던져 버려진 물고기 아니가, 먹으면 닮는다고. 그런데 그런 놈이 내 밥줄이다 아이가. 겉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라. 작고 못생겼더라도 다 쓸모가 있고 예쁜 구석이 있는 기라.”

아주머니 이야기가 끝나자, 한 아귀 입에서 침과 함께 조기를 토해내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모습이 마치 고맙다고 인사하는 것 같았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시구가 떠오릅니다.


“선생님, 아귀찜 좋아하세요? 감사해서 아귀찜을 해드리고 싶은데.”

그날 점심시간, 같은 상가에 계시는 돈가스아저씨, 쌀집아저씨, 통닭집 아저씨까지 엄마를 도와 학교에 아귀찜 배달을 오셨습니다. 학교 6학년 교실마다 아귀찜 파티가 열렸습니다. 온 복도에 아귀찜 냄새가 진동을 하니 꼭 ‘은영이는 아귀찜 집 딸’이라고 교내방송 중인 것 같습니다. 아귀찜은 작은 두 손에 얼굴을 파묻게 하는 음식이었습니다.


‘나는 우아하게 꽃집 며느리가 될 거야.’


이 철없던 소녀는 훗날, 소원을 이룹니다. 아귀찜 지옥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도 저에게서 성큼 멀어지셨습니다. 첫째를 임신하고 제일 생각나던 음식은 시나브로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이 되었답니다. 남편은 자신이 아귀찜을 싫어하고 비싸다며 사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부모가 된 이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먹을 수 없다는 이유로 사주지 않았습니다.


참다못한 막내딸의 하소연에 엄마가 휴무 날 찾아오셨습니다. 74세 어머니가 해주신 아귀찜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이 모락모락 피어납니다. 아삭한 콩나물과 아귀의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 그리고 인중에 땀을 차오르게 하는 매콤한 양념.


30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으시는 엄마의 아귀찜과는 달리 칼칼한 여전사 같았던 엄마의 머리에 흰 구름이 내려앉아있네요. 손은 더 거칠어지셨네요. 한평생 바쁘기만 해서 야속했던 그녀와 마주 앉아 찬찬히 음식을 나누니 그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이셨습니다.


돈에 묶인 현실에 떠밀려 눈이 손님 음식에 가 있고 손도 설거지 구정물에 담겨 있지만, 어머니는 따듯한 아랫목에 마주 앉아 새끼를 바라보고 어루만져 주고 싶었을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사랑받지 못했다는 서러움을 40년간 품고 살아온 제가 뜨거워집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고 오롯이 그녀만 생각하고 그녀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니 엄마가 이해되었습니다. 긍정의 마음으로 관찰하면 그동안 보지 못했던 이면이 드러납니다. 나는 매콤한 찜에 빠진 흑백의 ‘아귀’에게서 용기를 얻어 사람과 세상의 전체를 살뜰히 보려는 노력을 합니다. 오늘은 고성 아구찜에 전화 한 통 걸어봐야겠어요.


 ‘누군가의 밥을 정성스레 짓는 것은 자신의 복을 짓는 것과 같다.’


라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면서요.


https://blog.naver.com/key1116/22230755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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