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할때

by 빈센조

누구나 한 번쯤은 ‘첫눈에 반한다’는 감정을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의 감각은 유난히 선명하다. 마치 세상에 둘만 남은 듯 주변의 모든 소리가 잦아들고 공기마저 결을 바꾸며 흐르는 듯한 이상한 고요가 찾아온다.

눈앞의 시간이 무언가에 걸려 잠시 느려지는 것 같은 평소의 일상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비현실적인 순간 말이다.


최근 심리학 전공 수업에서 나는 이 익숙하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줄 흥미로운 사실을 접했다.

감정의 불씨를 켜고 끄는 역할을 하는 변연계는 뇌의 깊고 낮은 곳에 자리하며,반면 이성적 판단과 시간 감각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뇌의 가장 앞쪽에서 우리를 ‘현실’에 붙잡아 두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급작스러운 감정의 파도가 몰려오면 우리의 혈류는 본능의 중심인 변연계로 한꺼번에 몰려들고 전두엽까지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결국 전두엽의 시간이 흐트러지며 우리는 아주 짧은 찰나 동안 ‘시간이 느려진다’는 체험을 하게 된다.

놀라운 것은 이 현상이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실제 뇌과학적 변화에서 비롯된 감각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설명을 들으면서도 묘하게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과학이 짚어주는 원리가 정확하고 타당함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을 완전히 분석해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첫눈에 반하는 감정에는 신경의 반응만으로 다 말할 수 없는 어떤 삶의 숨결 같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의 대부분을 익숙한 속도로 살아간다.

정해진 길을 따라 걷고 같은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며 예상 가능한 감정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러다 어떤 날 예상하지 못한 얼굴 한 사람이 우리 시야에 들어온다.

아무런 준비 없이 아무런 설명 없이.

그 순간만큼은 우리가 매일같이 의지하던 이성의 흐름이 잠시 방향을 잃는다.

심장이 조금 더 크게 뛰고 마음이 불쑥 앞으로 나아가며 몸은 이유를 모른 채 그 움직임을 따라간다.


과학은 이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왜 그 사람이었는지,왜 그 순간이었는지

그리고 그 짧은 떨림이 우리 기억 속에서 오래도록 남는 이유가 무엇인지이다.


첫눈에 반한다는 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내면에 켜켜이 쌓여 있던 기억, 상처, 기대, 소망, 억눌린 감정들이

어느 순간 어떤 얼굴 하나를 통해 일시에 흔들리는 일이다.

뇌에서 일어난 몇 초의 반응이 마음의 깊이를 뒤흔들고

그 마음의 떨림이 다시 뇌의 구조를 바꾸어 우리 안에 새로운 서사를 만든다.


그래서 나는 첫눈에 반하는 순간을 이렇게 정의하고 싶다.

이성과 본능이 잠시 엇갈리며 생겨나는 삶이 우리에게 허락하는 가장 짧고도 아름다운 일탈이라고.

시간은 느려지지만 마음은 빨라지고 과학은 설명하지만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 미묘한 틈.

우리는 바로 그 틈에서 사랑을 시작하고 그 틈을 기억하며 오래 살아간다


이런 순간순간이 모여서 삶을 살아갈 원동력이 되어주는것같다.

이런 순간을 오랜만에 떠올리고 추억해보면 혹시나 이런순간이 또 찾아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삶을 살아갈 힘조차 얻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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