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라는 이름의 담장

by 빈센조

대학에 다니며 내가 가장 크게 느끼는 바가 있다면 나이가 들수록 관계의 폭이 점점 좁아진다는 사실이다.

예전에는 그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마음을 내주었는데 이제는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이 아니면 마음을 쏟는 일이 쉽지 않다.

비슷하지 않으면 거리감이 생기고 조금만 달라도 마치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그 사람은 끝내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확신마저 따라온다.


이 감각은 오프라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온라인 역시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열린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보다 더 취향이 선명하게 반영되는 세계도 드물다.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선택해 팔로우하고 불편한 사람은 쉽게 차단한다.

그 결과 관계는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이미 익숙한 생각과 말들 속에서만 맴돌게 된다.


관계의 단절에서 그친다면 차라리 괜찮을지도 모른다.

더 두려운 것은 그 과정에서 서서히 굳어지는 편견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싫어하는 사람의 말에는 이유를 찾으며 반대한다.

이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어쩌면 분명하다.

그 틀을 깨는 순간 나의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기준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섞이기 위해 노력하며 산다.

사람을 만날 때면 판단을 서두르지 않으려 애쓴다.

익숙한 기준으로 상대를 재단하는 대신 잠시 멈춰 그 사람이 서 있는 자리를 바라보려 한다.

그것이 나와 얼마나 다른 세계인지 혹은 얼마나 닮아 있는지는 그다음의 문제다.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생각과 편견을 하나씩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요구한다.

오랫동안 믿어온 취향과 기준을 의심하는 일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날에는 그 담을 허무는 대신 더 높이 쌓고 싶어질 때도 있다.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는 것보다 차라리 이해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편이 훨씬 덜 아프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안다.

사람과 사람이 진짜로 만나는 순간은 서로의 세계가 완전히 같아질 때가 아니라,

다름을 견디며 그 앞에 잠시 머무를 때 찾아온다는 것을.

섞인다는 것은 나를 잃는 일이 아닌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모서리를 조심스레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굳어진 취향을 다시 불에 달구고 날이 무뎌진 태도를 천천히 벼른다.

완벽한 명검이 되기 위함이 아니라 적어도 누군가를 함부로 베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쉽게 선을 긋는 대신 한 발쯤은 경계 밖으로 내딛을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아마도 이 노력은 눈에 띄는 성과를 남기지 못할 것이다.

관계의 폭이 갑자기 넓어지지도 모든 사람을 이해하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느리고 조용한 연습들이 언젠가 누군가를 마주한 순간에

내 마음이 조금 더 넓게 열려 있을 수 있도록 나를 준비시키고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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