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진 화면 앞에서

by 빈센조

패드에 물을 쏟았다.

화면이 천둥처럼 한 번 번쩍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고요해졌다.

그 이후로는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고는 늘 그렇게 일어난다.

벌어지고 난 뒤에야 생각할 틈이 생긴다.


이게 벌써 두 번째다.

한 번 겪어봤기에 알고 있었다.

물이 가까이 오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조금만 더 조심하면 피할 수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도 같은 실수가 반복된다.

마치 기억은 남아 있지만 경계심은 늘 먼저 닳아버리는 것처럼.


수리비가 먼저 떠오른다.

아직 정확한 금액도 모르면서 이미 마음은 지불할 준비를 하고 있다.

현실은 늘 그렇다.

실수의 원인을 묻기 전에 대가부터 청구한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 장면이 너무 익숙하다는 것을.

패드가 아니라 삶에서도 늘 비슷한 순간을 마주해왔다는 것을.

알고도 반복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되돌아가고,

그리고 늘 같은 자리에서 멈춰 서는 일.


인생은 생각보다 관대하지 않다.

“이번엔 실수였잖아”라는 말은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사소한 방심에도 정확히 반응하고 작은 부주의에도 어김없이 결과를 돌려준다.

마치 고장 난 화면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꺼져버린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다음에는 다르겠다고 생각한다.

이번만 넘기면 괜찮을 거라고 다음 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다짐은 쉽게 증발하고 상황은 또다시 반복된다.

삶은 기억보다 빠르고 실수는 생각보다 끈질기다.


꺼진 화면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한 번 배운다.

인생에는 자동 복구 버튼이 없다는 것을.

시간을 되돌리는 단축키도

“다시 시도”라는 안내문도 없다는 것을


다만 남는 건

고장 난 자리 앞에서 스스로를 마주하는 일뿐이다.

왜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무엇을 고치지 않은 채 여기까지 왔는지.


패드는 다시 켜질 수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멈출 수도 있다.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장면이 나에게 남긴 감각은 단순한 물기보다 훨씬 오래 남을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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