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패드가 고장 나 수리를 맡기고 시간을 보내기 위해 번화가의 대형 서점에 들어왔다.
수리는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고 했다.
어쩌면 오늘 하루는 이렇게 기다림으로 채워질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대형 서점에 오면 늘 같은 곳으로 향한다.
가장 먼저 베스트셀러 코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자리에 놓여 있고 그곳을 한 바퀴 도는 것만으로도 요즘 사람들이 무엇에 마음을 두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칸은 작은 경기장 같다.
각 출판사들은 더 많은 시선을 끌기 위해 책의 표지를 앞세우고 문장을 잘라 문구로 만들고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외친다.
조용해야 할 공간인데도 이곳만큼은 늘 소란스럽다.
그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회의감이 밀려온다.
책이 이야기의 깊이보다 얼마나 잘 팔릴 수 있는지로 먼저 평가받는 것 같아서다.
사유는 경쟁하고, 문장은 순위를 매기며 생각은 숫자로 환산된다.
그 과정이 너무 노골적이라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마음이 조금 헐거워진다.
그렇다고 해서
책의 가치를 부정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나는 아직 나이가 많지 않지만 책이 한 사람의 사고를 얼마나 깊게 만들 수 있는지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얼마나 조용히 바꿔놓는지 알고 있다.
그래서 더 아이러니하다.
이토록 중요한 것이 이토록 쉽게 소비되는 장면을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베스트셀러 코너를 서성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본다.
대부분은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
책장을 몇 장 넘기기보다 표지와 띠지, 추천 문구를 먼저 확인한다.
읽는 책이라기보다 고르는 책에 가까워 보인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많이 팔린 책은 이유가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이 정도는 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준에 기대어 책을 집어 든 적이 많다.
그러다 끝까지 읽지 못한 책들이 방 한구석에 조용히 쌓여 있다.
베스트셀러는 내 삶에 들어오기보다 통과해 간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 공간에서 나는 자주 멈춘다.
지금 내가 고르려는 책이 정말 나를 필요로 해서인지
아니면 그저
‘선택받았다는 흔적’이 필요해서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책을 고르는 일이 내 생각을 선택하는 일과 얼마나 닮아 있는지도 함께 떠올리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책 한 권을 집어 든다.
순위표를 벗어난 자리에서 조금 덜 눈에 띄는 책장 앞에서.
조용히 몇 문장을 읽어 내려간다.
아직은 믿고 싶기 때문이다.
이 소란스러운 경기장 한가운데에서도 누군가의 시간을 오래 붙잡을 문장은
분명 존재할 거라고.
아이패드는 여전히 수리 중이고
나는 아직 서점 안에 있다.
어쩌면 오늘 이 기다림은 고장 난 기계를 고치는 시간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생각을 소비하고 어떤 문장을 곁에 두고 살아가고 싶은지 다시 묻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