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나, 가족을 지켜주는 울타리

by 동동스


어린 시절, 엄마의 강요로 언니와 함께 교회에 다녔다. 일요일 아침마다 교회 가는 것은 귀찮은 의무였고, 예배 시간은 학교 수업시간보다 더 지루했다. 성경 말씀은 난해한 역사나 신화와 같은 이야기였고, 나를 예배 시간 내내 깊은 잠에 빠뜨렸다. 청소년기부터는 자연스럽게 종교와 멀어졌다. 내 삶은 세속의 시간표로 꽉 채워졌다.


“젊은 시절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전도서 12:1) — 어린 시절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신앙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초대였다. 20대 중반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며 깊은 우울감이 수년간 지속됐다. 엄마의 권유로 다시 교회에 가게 된 것은 지푸라기라도 잡아보고픈 절박함 때문이었다.


첫 찬양에 숨이 차오르는 뜨거운 눈물이 터졌다. 기쁨일까, 마음속 깊이 눌려 있던 서러움이 교회의 성스러운 분위기에 폭발한 것일까. 울부짖음과도 같은 눈물이 당황스러웠지만, 그 울음 이후 마음 한 구석이 가벼워졌다. 소진된 에너지를 충전하듯 다시 교회에 꾸준히 나가기 시작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시편 126:5). 내 눈물은 순간적 감동의 동요가 아니라, 회복의 시작이었다.


결혼 후에도 삶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것은 종교적 믿음이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주님께 맡기겠다는, 그분의 계획 안에 순종하겠다는 다짐이 나를 고난 속에서 버티게 했다. 고전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을 얻기 전까지 결코 평안을 찾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신앙은 나를 숨 쉬게 하는 안식처였고, 풍파에 맞서는 바람막이였다.


약 20개월간의 해외 생활을 끝내고 최근 귀국했다. 큰 아이가 국제학교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른 한국 중학교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등교를 거부한 채 며칠째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다.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답답했고 화가 났다. 원래 무거운 내 입이 철문처럼 더 굳게 닫혔다.


아이들이 자주 “엄마, 화났어?”라고 물었지만, 짧은 대답조차 버거웠다. 주님께 모든 걸 맡겼다면 이렇게 불안하고 우울하지 않았을 텐데,. 난 여전히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힘든 새 학교 적응기간도 무탈히 버텨내고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기대가 깨지자 한없이 부정의 감정에 매몰되어 버렸다.


“너희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는 그 단순하고 분명한 약속을 잊은 채, 내가 만든 기대와 불안에 갇혀 있었다.


오늘 두 아이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 목사님께서 지독하게 우울했던 — 욕으로 가득했고 삶마저 포기하고팠던 본인의 십 대 시절을 간증하셨다. 주님을 만나고 터널 끝 빛을 보게 되었다는 목사님의 말씀이 우리 가족에게 환한 빛이 되었다. 다시 일주일을 시작해야 하는 부담감에 얼굴이 어두운 큰 아이가, "엄마, 오늘은 용기가 생겼어. 내일 학교 가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했다. 아이를 믿지 못해 항상 잔소리와 눈물로 가정 내 어두운 구름을 만들었던 것이 미안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로마서 5:3-4)라고 말했다. 주님의 말씀과 아이의 말 한마디가 다시금 버텨보자는 인내를, 또 소망의 씨앗을 품게 해 주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한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 유한하지만 보이지 않는 힘은 우리를 보호하고 다시 일어서게 한다. 나와 나의 가족에게 종교는 바로 그 보이지 않는 힘이다. 꺾이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회복할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신앙은 단순히 교회에 가는 행위가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울타리이다.


나는 오늘도 그 울타리 안에서 다시 다짐한다. 흔들리고 불안하더라도, 주님의 계획 안에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내 아이와 나,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신앙 속에서 더 단단해질 것이라 믿는다. 고난을 통해 더 단단히 성장해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