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강독 노트 prototype, 신데렐라와 콩쥐팥쥐

사람 생각이 거기서 거기인 이유: 모티프에 대하여

by 사유하는 인문학도
앤 앤더슨의 신데렐라 삽화

우리는 이미 신데렐라 이야기를 알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언니들의 구박 속에서 자라며, 부엌일을 도맡아 하다 재투성이 얼굴이 되고, 무도회에 가지 못하게 방해받다가 겨우겨우 간 무도회에서 결국 유리구두를 남긴 채 도망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떠올리다 보면 묘한 기시감이 든다.


콩쥐 역시 어머니를 잃고 계모와 팥쥐에게 구박받는다.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살아가고, 잔치에 가지 못하도록 방해받다가, 겨우겨우 간 잔치에서 결국 꽃신을 잃어버린다.


신데렐라와 콩쥐팥쥐, 너무 닮아 있지 않은가.


그 이유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자.


우선 우리가 아는 신데렐라의 원형인 그림 형제의 신데렐라를 살펴보도록 하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는 새장가를 들지만, 계모와 두 언니는 신데렐라를 구박하며 잿더미 속에서 온갖 집안일을 시킨다.


신데렐라는 아버지가 가져다준 개암나무 가지를 어머니 무덤가에 심어 정성껏 키운다. 나무에 찾아오는 하얀 새는 신데렐라의 소원을 들어주는 조력자가 된다.


왕자의 무도회가 열리자 계모는 콩 고르기 숙제를 내며 방해하지만, 신데렐라는 새들의 도움으로 일을 마치고 하얀 새가 준 금빛 드레스와 신발로 무도회에 참석한다.


사흘간 무도회에서 왕자와 춤을 춘 신데렐라는 매번 정체를 숨기고 도망친다. 마지막 날 왕자가 계단에 바른 송진 때문에 신데렐라의 신발 한쪽이 남겨진다.


두 언니는 신발에 발을 맞추려 엄지발가락과 뒤꿈치를 자르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무덤가 비둘기들의 노래로 거짓이 들통난다. 결국 발이 꼭 맞은 신데렐라가 왕자와 결혼하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사실 따지고 싶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1. 왕자는 안면인식을 못하는가?

2. 신데렐라는 자기 신발이라고 말을 못 하는가?

3. 발을 자르고 신으면 눈치를 못 챌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지만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끝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동화는 동화의 영역 안에 남겨두도록 하자.


여기서 짚어볼 것은 모티프다. 모티프란 신화나 민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야기 요소를 의미한다.

신데렐라에서는 다양한 신발 분실, 자연물의 도움, 계모의 괴롭힘과 부엌데기 모티프가 발견되는데, 이러한 모티프는 신데렐라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의 민담에서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콩쥐팥쥐전 원문

우리나라의 콩쥐팥쥐만 해도 비슷한 스토리를 확인할 수 있다. 착한 콩쥐는 계모와 의붓동생 팥쥐에게 구박을 받고 살다가 원님의 잔치에 가지 못하고 일만 하게 된다.


이러한 것을 딱하게 본 선녀의 도움으로 옷과 신발을 얻게 된 콩쥐는 원님의 잔치에 갈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콩쥐는 잔치에 가다가 꽃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를 원님이 찾아주게 되면서 콩쥐와 맺어지게 된다.


계모와 의붓형제의 괴롭힘, 신발 분실 모티프, 유력자와의 혼인.

이야기 구조가 너무나도 유사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다른 여러 나라의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문화권의 민담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유사할 수 있는가?


하나의 가설, 특정 지역의 이야기가 전파되고 확장되었을 것이다.

세계지도를 한번 보자. 독일과 한국의 거리는 상당하다. 유리구두를 신고 걸어온다면 이미 구두는 깨지고도 남을 것이다.


이러한 지리적 요건상 독일과 우리가 문화적 교류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도 독일은 고종 재위 시절 처음으로 수교 문제를 논의하는 내용으로 언급된 바, 그전까지는 일절 교류가 없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두 이야기가 이렇게 유사할 수 있는가?

또 다른 설은 인간은 결국 사는 대로 생각하는 존재라서 생활양식이 비슷한 인류의 특성상 어느 정도는 보편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류의 보편적 사고를 기반으로 독립적으로 발생해서 구전된 이야기가 유사성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하기에도 콩쥐팥쥐뿐만 아니라 신데렐라형 민담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어 보편적 사고에 의해 똑같은 이야기를 전 세계에서 만들어냈다고 하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김헌선과 최장운은 ‘신데렐라와 콩쥐팥쥐의 비교 연구‘에서 특정 시기의 산물인 신화적 사고의 파편이 여러 지역에 잔존하며 이야기 및 이야기를 창작하는 사람의 사고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적 사고가 전 세계에 퍼진 것은 구석기와 신석기시대의 간기인 중석기 시대를 지목하기도 하였다. BC 8000년부터 BC 2700년 사이에 대이동이 있었고, 그 때 인류가 공유하던 신화적인 요소들이 전세계에 퍼졌다는 것이다.


신데렐라와 콩쥐팥쥐가 공유하는 신화적 요소가 있나? 두 작품을 표면적으로 보면 신성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두 이야기는 신화적이고 고대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것도 꽤 많다. 그러면 신데렐라와 콩쥐팥쥐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신화적 요소는 무엇인가?


1. 신화시대의 요건: 사제의 존재

헨리 D. 노스럽, 단에 분향하는 대제사장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하겠지만 신화시대의 상징인 사제의 요건을 두 이야기의 주인공이 갖추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신화 시대의 사제는 하늘과 소통하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존재였다. 이러한 요소가 두 인물에게 발견된다.


두 여성 모두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이러한 선인의 불행에 하늘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자연물(동물)을 통해 주인공을 조력한다.


신데렐라는 하얀 새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고, 콩쥐는 두꺼비와 소 그리고 새의 도움을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부분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을 자연이 개입해서 중재하고 있으므로 신데렐라와 콩쥐는 자연과의 소통을 통해 인간의 갈등을 중재하는 사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석기 시대 널리 퍼져나간 신화적 전통이 두 이야기에서 태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2. 고대 가부장적 요소의 공유: 두 여인이 부엌데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벽화, 부엌일 하는 모습

신데렐라와 콩쥐는 모두 계모와 의붓형제의 괴롭힘을 받으며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는 부분이 일치한다. 이 부분도 그냥 넘길 수 없는 요소다. 그저 귀찮고 힘든 집안일을 천덕꾸러기인 신데렐라나 콩쥐에게 시킨 것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이는 너무나도 현대적인 관점이다.


전통적인 사회에서 남성은 바깥에서 경제 활동을 하고 여성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그리고 이러한 집안 살림을 이끄는 여성을 높여 안주인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즉 전통 사회에서 집안일은 그저 귀찮은 일이 아니라 집안의 주인이 담당해야 하는 실권과 관련된 일이었다.


이러한 실권이 계모와 의붓형제에게 인계되지 않고 죽은 어머니에서 친딸로 인계된다는 것은 안주인 권력이 남성 가장의 친딸에게 넘어가는 모습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는 부권 사회인 가부장 사회의 전통으로서 고대부터 존재한 사고가 두 이야기에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3. 고대적 사고로서 배필 찾기: 신발 분실과 찾기 모티프

에드워드 프레더릭 브루트널, 신데렐라

남성 유력자가 배필을 찾기 위해 신발과 맞는 발을 찾는 행위에도 사실 고대적 사고가 드러나 있다. 발은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이와 맞추어 신발은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발을 신발과 맞추는 행위는 여성과 남성이 육체적으로 적절한 상대자를 찾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즉 버려진 신발에 딱 맞는 발을 찾는 두 이야기의 공통된 모티프도 사실은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 아니라 두 이야기가 그렇게 구성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자기와 몇 시간을 노닐던 사람의 얼굴도 기억 못 하고 굳이 신발을 신겨보는 행위가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이러한 아이러니는 위에서 설명한 고대적 사고로 모두 해소할 수가 있다.


본문에서는 신데렐라와 콩쥐팥쥐를 통해 기원 전 인류가 공유했던 사고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듣던 동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아보았다.


놀랍지 않은가?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하게 들어왔던 동화가 사실 기원 전부터 유래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많은 요소들 간에 훨씬 더 복잡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을지 모른다.


문학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한 명으로서 앞으로도 즐겁게 문학에 대한 담론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만 총총 줄이도록 하겠다.

이 글을 읽은 뒤에 이런 생각을 더 해봐도 좋겠다.


1. 신데렐라와 콩쥐팥쥐처럼,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야기 구조나 사고방식을 하나 찾아보자.

(예: 권선징악, 노력 후 보상, 희생과 구원, 운명과 선택 등)

- 왜 이런 사고가 특정 문화가 아니라 인류 전반에 걸쳐 반복해서 나타나는지 설명해보자.


2. 이 이야기를 계모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면 어떨까?

- 계모는 단순한 악인인가?

- 당시 사회 구조 속에서 계모는 어떤 존재였을까?

- 이야기에서 계모를 악인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1. 하마모토 다카시, 『신데렐라 네러티브』, 효형출판, 2022.

2. 김헌선·최장운, 「신데렐라와 콩쥐팥쥐의 비교문학 연구」, 『시민인문학』 12, 경기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4, 259–275쪽.

3. 『조선왕조실록』, 고종 19년 11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