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방금 배심원이었다,〈추락의 해부〉

부재의 연출 — 보여주지 않음으로 관객을 배심원석에 앉히기

by 이원하다


감독이 제목에 심어 둔 것


<추락의 해부〉는 '추락'보다는 '해부'를 집중적으로 풀어나가는 영화다. 제목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추락에 집중한다. 누가 떨어졌는가, 왜 떨어졌는가. 그런데 영화는 시작부터 그 질문을 비껴간다. 사무엘이 어떻게 죽었는지보다, 그가 죽고 난 뒤 남겨진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열어젖히는지에 집중한다. 추락은 이미 일어났다. 이 영화가 시작되는 지점은 그 이후다.

한줄정리 - 사무엘의 사망으로 인해 주인공과 다니엘이 겪게 되는, 겪었던 모든 것을 해부하는 이야기.



컷 뒤에 숨은 것


영화에서 집중적으로 해부하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이다. 그 감정들은 상대방을 미친듯이 헐뜯는 것일 수도, 사랑하는 감정일 수도, 연민, 공포와 같은 세밀한 감정들이다. 그것들은 재판이라는 이름 하에 낱낱히 공개되어 곡해당하고 검사와 변호사에 의해 새로운 이야기(가설)로써 변모한다.


산드라, 검사, 변호사, 다니엘이 말하는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들은 명확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다. 다만 '그럴 수도 있다'는 추측 뿐이다. 산드라가 사무엘을 죽이지 않았다는 가정 하에, 이 사건을 명확하게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심지어 이 영화에서도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 관객조차도 이 재판에 끌어들인다.


산드라가 사무엘에 안 좋은 이야기를 말하는 것을 꺼려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자살시도부터 사무엘의 내면 깊은 곳의 열등감까지 거침없이 얘기하는 것은 영화가 '진실의 해부'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그것을 모두 지켜보는 아들 다니엘의 클로즈업샷을 계속해서 비춘다. 감독은 재판 장면을 통해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만이 정답인지 묻는다.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사무엘의 죽음에 연관되었던 사무엘, 산드라, 다니엘의 죄와 감정이다. 이 세 가족은 서로가 서로에게 죄의식과 분노, 슬픔을 갖고 있는 기묘한 관계였다. 사실 사무엘의 죽음은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시한폭탄과 다름없는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 진실은 기실 의미없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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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 어디서 봤다


이러한 영화적 장치는 〈괴물〉에서 보여진 연출과도 유사하다. 이 추락을 해부하는 작업에는 관객들도 함께하는 셈이다. 〈괴물〉에서 관객들이 영화가 진행되며 드러나는 진실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만들었다면 〈추락의 해부〉에서는 범인을 알 수 없어 혼란스러운 이 이야기의 범인을 찾는 데에 혈안을 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점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진실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법정에서 공방을 벌이는 장면은 〈결혼 이야기〉의 법정 씬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사랑했던 사람을 헐뜯어야만 하는 상황은 과연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물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 밖의 이야기


이 영화에서는 살인죄라는 죄로써 재판을 하는 것이기에 진실을 찾는 것이 옳다. 그런데 때론 삶을 살아가다 보면, 재판도 아닌 일상의 관계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진실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헐뜯는 것. 화가 나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내뱉는 말들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만, 사실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의미도 없다. 해결을 위한 말이 아니라 해소를 위한 말이니까. 그 사실을 깨닫는다면, 나와 상대 모두 서로를 '해부'하는 대신 '해결'을 향해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다시, 첫 장면으로


'진실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이유다. 왜? 라고 되물어 보면 모든 것은 정답이 된다. 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사무엘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게 답답하지 않다. 영화를 보는 내내 범인을 찾으려 했던 관객들은, 어느 순간 그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진실을 몰라도 이 가족이 왜 그렇게 됐는지는 알 것 같은 느낌, 그것이 이 영화가 남기는 것이다. 정확히 알 수 없는 타인의 삶과 생각은, 조심스러운 추측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첫 걸음이 될 테니까.


당신의 마지막 싸움은 해부였나요, 해소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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