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레이어 — 과거와 현재를 포개는 편집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다. 화가 난 것인지, 슬픈 것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당연히 타인에게도 그 감정을 제대로 전하지 못한다. 특히 가족의 경우, 가장 가까운 관계임에도 그동안의 관습에 의해 진실되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다. 그처럼 영화의 제목인 '센티멘탈 밸류'는말하려는 것을 정확하게 담고 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러나 우리를 평생 짓누르는 감정의 무게.
한줄정리 : 무책임하게 사라졌던 아버지 구스타브가 딸 노라에게 사과 대신 시나리오를 건네며 시작되는, 회피와 직면에 관한 이야기.
주인공 노라는 첫 등장부터 공황을 앓고, 동료에게 뺨을 때려달라고 사정하는 등 공연을 앞두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노라는 영화가 진행되는 내내 극도의 우울감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자신을 '망가진 사람'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갉아먹는 관계를 맺고, 과거에는 자살 시도까지 했을 정도로 정신적 고통에 빠져 있는 인물이다.
그런 노라에게 연극은 '다른 사람'이 되어 감정을 느끼는 유일한 매개체다. 그러나 아버지 구스타브는 연극을 인정하지 않는다. 연극 배우인 노라의 앞에서 연극에 대해 부정적인 말만 늘어놓다가 자신의 영화에 주연 자리를 제안하기만 할 뿐이다. 구스타브는 딸에게 사과 대신 시나리오를 건넸다.
영화에서는 회피하는 사람과 직면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노라와 구스타브는 상처를 회피하는 사람이며 레이첼과 아르네스는 직면하는 사람이다. 레이첼은 원하는 배역임에도 구스타브의 회피를 알아채고 자신의 불안감을 털어놓은 뒤 배역을 포기한다. 아르네스는 아버지인 구스타브를 회피하지 않고 직접 마주한다. 노라와 구스타브는 각자 예술이라는 매개를 통해 에두르려 했지만, 결국 예술도 직면할 때 치유가 된다.
노라가 회피했던 것은 아버지와의 관계다. 그것은 구스타브의 시나리오로 은유되며, 노라는 영화의 후반부까지 그 시나리오를 읽지 않다가 아르네스의 권유 끝에 읽게 된다. 그 시나리오에 담긴 진실은 노라에게 향한 미안함이었다. 말로는 딸의 연극을 불평하기만 하고, 할리우드 유명 배우에게만 다정한 듯 보이는 아버지였으나 그의 시나리오에서만큼은 드러낸 것이다.
예술이 직접 말하지 못한 감정의 그릇이 되는 방식은 〈8과 1/2〉을 떠올리게 한다. 펠리니의 그 영화에서도 감독은 자신이 직면하지 못한 것들을 영화 속에 쏟아낸다. 그러나 〈센티멘탈 밸류〉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영화의 예술은 타인을 향한 사과다.
가족에 의해 상처받고, 어른이 되어서도 상처를 받은 어린아이로 사는 사람들. 노라를 보면서 낯설지 않은 이유가 거기 있다. 우리는 대부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솔직하지 못하다. 말하지 못한 감정은 곪는다. 그리고 곪은 상처는 언젠가 터진다. 다만 그것이 시나리오의 형태일지, 뺨을 때려달라는 부탁의 형태일지는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영화의 마지막이 되었을 때 온전히 모든 것을 마주하고 자신의 자리를 찾은 노라와 구스타브는 그제서야 서로를 보며 웃는다. 어울리지 않는 배우, 어울리지 않는 거짓 대신 진실된 것을 선택하고 나서야 그 둘의 관계는 풀어질 실마리를 얻은 셈이다. 모든 일은 직면했을 때 시작된다. 그것이 심지어 곪은 상처일지라도.
당신이 아직 읽지 못한 시나리오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