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함이라는 이름의 구멍,〈님포매니악〉

챕터 구조 — 형식이 고백의 방식이 될 때

by 이원하다



<님포매니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이지만, 영화가 가진 무게 때문에 선뜻 다시 보기를 망설이게 되는 작품이었다. (라스 폰 트리에 작품이 죄다 그렇듯이…)

그러다 다시금 <님포매니악>과 라스 폰 트리에 작품들을 볼 마음을 먹게 되었고, 과거에 보았던 감상과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떠올리며 작품을 감상했다.


처음 영화가 나왔을 때는 성에 대한 이미지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점과 영화의 제목, ‘님포매니악’이라는 것 때문에 편견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알게 되듯, 영화는 ‘조’라는 여자의 지독한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볼륨 1과 2로 구성되는 <님포매니악>은 조의 유년시절부터 중년이 된 현재의 조의 삶까지를 보여준다. 긴 러닝타임이지만 막상 영화를 보게 되면 볼륨 2로 자연스럽게 손길이 가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삶의 본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외로움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그 외로움이라는 것은 때론 너무 깊고 큰 구멍 같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히는 그런 것, 그러나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절대적인 무언가다.


주인공 조는 그 구멍을 남들보다 더 크게 느끼고 그것을 채우는 데에만 집중하며 살아왔다. 조에게 구멍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삶과 죽음에 대한 공허함)이고 두 번째는 조의 성기(성적 욕망)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 조는 두 번째 구멍을 채우는 것을 즐겼다. 어린아이였을 때부터 친구와 자위를 하며 놀았으며, 아버지의 의학 서적 속 성기들의 해부도를 읽을 정도로 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 조가 청소년이 되고서 이른 성관계를 하고 싶은 마음을 먹었음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조에게 첫 성관계는 잊을 수 없는 치욕의 사건이 된다.


조는 '제롬'이라는 남자와 첫 성관계를 하게 된다. 후에 제롬은 영화의 중요한 인물로써 다시 등장한다. 제롬은 조에게 첫 성관계를 한 대상이고, 처음 사랑한 남자이고, 자신이 딸처럼 여긴 아이와 함께 자신을 버린 남자다. 셀리그먼이 남성성 속 질서와 분석을 상징한다면 제롬은 더 직접적이고 단순한 남성의 상징이다.

조의 첫 성관계가 일방적이라는 점도 그렇다. 어떠한 애무도 없이 제롬은 그저 3번과 5번의 움직임을 끝으로 성관계를 끝낸다. 거기에서 조는 '아프다'는 것만 느낄 뿐,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일방적인 성관계와, 후에 제롬의 모습을 보면 제롬은 영화 내에서 여성이 이성으로써 느끼는 '남성'이라는 존재를 상징함을 알 수 있다.


제롬과 성관계를 할 때, ‘3+5’라는 숫자가 화면에 크게 등장한다. 이것을 듣던 셀리그먼은 곧바로 3+5가 피보나치 수열을 상징함을 말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셀리그먼이 영화에서 청자이자 화자로 등장하며 동시에 남성, 즉 세상의 남성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셀리그먼은 단순히 남성성을 상징하는 것을 넘어서서 조의 삶을 해석하고 정의하려 하는 인물로써 등장한다. 조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셀리그먼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학문적인 지식으로써 조의 삶을 정의하고 비유한다. (그때마다 조가 셀리그먼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는 것도 영화의 유머 포인트 중 하나이다)


이후 조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넘쳐나는 성욕을 해소한다. 그러나 결국 한계는 찾아왔고, 조는 불감증이라는 형벌을 받게 된다. 아무리 관계를 해도, 자위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병. 결국 조는 피학적인 학대에 가까운 행위까지 서슴치 않는다. 그마저도 제지당한다. 조는 늙어가고, 남들의 숨겨진 성적 취향을 찾아내 그것을 빌미로 협박을 하는 직업을 갖는다.



영화의 마지막, 셀리그먼이 조와 관계를 맺으려 하는 것은 '외로움이라는 구멍은 결코 남이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조는 그것에 동의하듯 셀리그먼에게 총으로 구멍을 만들어주고, 결국 자신이 원하던 '자신만의 나무'를 찾는다. 휘어지고 앙상한, 그렇지만 그 나무는 '조'의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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