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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원 Jul 26. 2024

28페이지에 담긴 뜨거운 것,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때때로 사랑은 우리도 모른 새에 찾아온다. 내가 누군가를 지켜보는 시선에서, 혹은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시선에서 어딘가 알 수 없는 작은 불꽃 같은 것이 타오르는 것을 느낄 때. 혹은 생에 처음 후회를 하게 되는 순간에서부터 내 몸이 타오르는 것 같은 뜨거운 감정이 느껴지는 것. 그것의 이름은 분명 사랑이다. 마리안느가엘로이즈의 그림 속 심장에 불을 붙이고 엘로이즈가 자신의 옷에 불이 붙어도 마리안느만을 바라본 것처럼. 이 영화는 두 여자의 뜨겁고도 차가운 사랑을 이야기한다.


영화의 첫 시작은 마리안느의 그림 강의 장면으로부터 시작한다. 수 많은 여자들이 마리안느를 바라보는 시선들을 카메라는 천천히 잡는데 이는 이 영화가 말하는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시선’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보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것이 화가의 숙명이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하나, 이 영화는 사랑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 특별해진다. 마리안느는 그림을 가르쳐주는 선생임과 동시에 모델이기도 하다. 즉 시선을 주는 자였다가 시선을 받는 자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 시선은 사랑의 의미로도 해석되는데 후에 엘로이즈를 일방적으로 훔쳐보았던 마리안느가 후에 엘로이즈 또한 자신을 보고 있었다는 것으로 이어진다. 마리안느는 한 그림을 보고 그것을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이라고 말하며 회상 장면으로 이어진다. 마리안느는 배를 타고 어딘가로 가던 중 무언가를 바다에 떨어뜨리자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바다에 몸을 던져 그것을 구해낸다. 영화에서 물과 불의 대비는 확실하게 이어지는데 이는 의상이나 배경 등 미장센의 영역에서도 노골적이게 드러낸다. 물, 그러니까 파란색은 현실이고 이별이며 작별임과 동시에 마리안느가 원하는 화가라는 꿈(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는)이고 사랑과 정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와 반대로 불, 빨간색은 사랑을 뜻하며 엘로이즈를 원하는 마리안느의 욕망이다. 그러나 물과 불이 공존할 수 없듯, 결말은 예정된 것일지도 모른다. 마리안느가 주저하지 않고 바다에 뛰어들었던 것에 비해 엘로이즈는 바다에 뛰어드는 것을 망설인다. 마리안느가 엘로이즈를 말리기도 한다. 마치 현실은 차갑고 괴로우니 너는 뛰어들지 말라고 하는 것처럼. 처음 마리안느는 엘로이즈가 결혼을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엘로이즈를 달랜다. 바다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고,그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밀라노의 음악을 들으러 가라고. 그러나 점점 마리안느가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난 뒤부터는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말리지 않는다. 그림이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바다에 뛰어든 엘로이즈는 자신이 여전히 수영을 잘 하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이는 바다라는 공간에서 잘 헤엄칠 자신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하고 자신과 정 반대인 마리안느와 대비되는 말이기도 하다. 엘로이즈의 초상을 몰래 그리기로 한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몰래 훔쳐본다. 그런 마리안느를 엘로이즈도 이상한 듯이 쳐다본다. 이때 둘의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그저 마리안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를 훔쳐볼 뿐, 아무런 사랑의 불씨도 시작되지 않았으니.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세상을 잘 모르고 음악이라고는 수녀원에서 들은 음악이 다였던 엘로이즈에게 마리안느는 사계라는 곡을 연주해준다.


  마리안느는 엘로이즈에게 음악의 도시인 밀라노에 가서 노래를 많이 들으라고 하지만 엘로이즈는 그것을 원치 않는 듯 보인다. 엘로이즈의 언니 또한 결혼을 하고싶지 않아 자살을 택했고 엘로이즈 또한 결혼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로이즈의 어머니 또한 그런 방식으로 결혼을 했고 엘로이즈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혼만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들 탓에 엘로이즈는 자신이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결혼을 하러 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에 반해 마리안느는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을 선택권이 있으며 사랑을 해 보았고 여러음악을 들으며 자유로운 삶을 즐겨온 인물이다. 엘로이즈는 마리안느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줄 알았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서 시선은 중요한 키워드이다. 영화의 중반부 쯤에, 엘로이즈가 마리안느에게 같이 밖으로 나가자는 이야기를 하는 순간엔 엘로이즈에게 포커스가 맞춰진다. 그리고 마리안느의 고민하는 얼굴을 보여주면 마리안느에게 포커스가 맞춰지고 엘로이즈는 포커스가 나간다. 그리고 다시 엘로이즈에게 포커스. 카메라의 시선으로 둘의 관계가 여전이 맞지 않고 어긋난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마리안느가처음 엘로이즈의 초상을 그리고 엘로이즈에게 보여주자 엘로이즈는 이 초상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초상엔 생명감과 존재감이 없다고. 마리안느는 그것은 남성의 영역이라 여긴다.


  결국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벽에 가로막히지만 그것을 부수지 않는다. 항의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벽 앞에 서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를 잊지 않는다. '잊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이 사랑하는 방식이며 작별을 맞이하는 방법이다. 육체적으로는 헤어졌지만, 비발디의 사계와 그들이 함께한 추억, 그리고 28페이지에 보고싶은 이의 얼굴이 그려져 있기에 그들은 영원히 함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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