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시장에서의 재귀성

영란은행의 입장과 대중의 인식 사이 어딘가

by 김민성

1. 영국 국채 시장: 매도, 매도, 그리고 매도


현재 영국 국채 시장은 매우 어려운 시기를 지니고 있다. 장기 국채 뿐만 아니라 단기 국채에 대한 매도세가 매우 강력하기 때문이다. 1년물 금리는 지난 한 달 간 3.539%에서 4.647% 사이를 움직이며, 현재는 오버 슈팅 구간을 지나 4.262%를 나타내고 있다. 10년물 금리 또한 4.233%에서 5.118% 사이를 움직이며 현재는 4.828%라는 높은 금리에 안착해 있다. 영국의 주택 시장은 단기 금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한 달 간의 70bp의 금리 변동은 영국 모기지 시장에서 시작해 인플레이션, 소비자 심리, 경제 전망 등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image.png 지난 한 달 간 영국 국채 1년물 금리의 추이. 강력한 매도세를 나타낸다.

이러한 매도세는 전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영란은행이 금리를 공격적으로 올릴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은 지난 금리 결정에서 상당히 매파적인 모습을 보이며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비쳤는데, 투자자들은 이러한 매파적 기조가 이어져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영란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팅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영국의 기준금리가 4% 이상이 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



2. 베일리 총재의 발언 - 정말로 금리 인상을 할 것인가?


어제 영란은행의 베일리 총재는 영란은행이 더 이상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베일리가 바라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시장이다. 다르게 얘기해서 영란은행이 보기에 현재 시장의 인플레이션은 꽤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


여기부턴 현재 시장을 바라보는 나의 의견을 담은 내용이다. 우리는 일단 2월 말 이란-미국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 시장 상황을 보아야한다. 2월 말 이전까지 원자재 가격은 꽤 저렴했다. 유가도 202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고 금속 시장도 강세를 보이긴 했지만, 인플레이션을 고려했을 때 고평가된 가격이라고 얘기하긴 어려웠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었을까? 그 원인은 보호무역으로 인한 비용 효율성 감소와 임금 상승으로 인한 비용 전가였다.


인플레이션은 크게 호황형 인플레이션과 불황형 인플레이션으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물가가 오른다고 다 금리 인상으로 때려잡을 인플레이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경기가 과열되어 인플레이션이 찾아온다면, 이는 과도한 신용 팽창으로 구매력이 과도하게 상승해서 발생한 인플레이션이기 때문에 방치한다면 구매력 파괴와 자산 시장의 버블로 이어져 침체를 야기한다. 그러나 현재처럼 불황이 찾아왔을 때의 인플레이션은, 신용이 구매력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구조적인 원인에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보호무역이라는 비교우위론에 전혀 반대되는 기조가 찾아온 것은 역설적으로 경제 성장률이 꺾였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률이 둔화됐으니 더더욱 무역이 활성화되어야 이런 기조를 돌파할 수 있는 것이 이성적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미국이 시작한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의 종료는 미국의 유권자들의 삶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미국 뿐만 아니라 현재 대부분의 국가들은 과거 부채 비중이 낮은 시대와 달리 빠듯한 삶을 살고 있기에 유권자들은 근본적으로 당장의 어떤 해결책을 원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기적으론 보호무역을 통한 수입 억제가 내수를 증진시킨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은 언 발에 오줌누기에 불과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무역 장벽을 없애고 비교우위론에 입각한 예전 모델로 회귀하며, 중앙은행들이 투자 시장과 자산 시장에 만연한 레버리지를 줄이는 것이다. 전통적으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리를 올릴 수 있었지만, 베일리 총재가 지적하듯 현재 영란은행이 금리를 올린다면 경기가 침체로 들어서게 된다. 부채 문제로 인해(유럽과 영국의 소비자와 미국의 소비자들을 비교했을 때, 전자의 순자산 중 주택 비중이 훨씬 높으며 이는 기준 금리와 구매력 간 상관관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리 상승은 고용과 소비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영란은행과 ECB가 금리를 올린다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 제조업과 서비스업 PMI가 나쁘지 않게 유지되는 것은 고용이 활발해서가 아니라 부가가치의 낙수효과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생산과 소비의 괴리가 발생한다면 인플레이션과 실제 구매력 간의 괴리가 커지면서 각 집단의 재귀성은 강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재귀성은 필연적으로 그 괴리가 지속 가능하지 않는 수준까지 끌고가며 이 끝에는 경기 침체나 신용 경색이라는 중앙은행이 가장 싫어하는 정책 실패가 존재한다.



3. 시장과 대중의 오류

image.png 중앙은행을 굴복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2003년부터의 일은포 사건은 중앙은행을 공격하는 시도가 오만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현재 영국 채권 시장에 대한 매도세는 상당히 과장됐으며 다르게 말하자면 시장 참여자들의 금리 인상에 대한 재귀성이 극도로 강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채권 시장에 대한 매도세를 줄이는 방법은 금리 인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화폐 가치를 떨어뜨리겠지만, 달러의 패권에 도전할 의사도 없으며 현재와 같이 불황의 초입에 서 있는 영국 입장에서 채권을 매입하며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은, 주택 시장에 대한 공격적인 투기는 단기 금리가 높은 상황 속에서 어렵기 때문에 적절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이 가장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사견이긴 하지만 자신들이 채권 시장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매도세가 매도세를 강화하는 재귀적 루프에 빠져있는데 ERM 탈퇴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한다면 중앙은행을 굴복시키기는 쉽지 않다. 일은포 사건과 위안화에 대한 헤지펀드들의 매도가 실패한 것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중앙은행의 권한이 통화량 조절인데, 이를 이길 수 있다면 적어도 엄청난 오류나 중앙은행을 굴복시킬 수 있을 정도의 현금 동원력이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현재와 같은 고금리 기조 속에서 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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