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203
한 번 사는 생.
아무리 우주가 넓고 지구가 둥글다 한들
내 시야에서 보이는 지평선이 세상의 끝이다.
적은 확률로 운이 좋게도 태어나보니 언어를 배우고, 교육을 받고. 적지만, 매우 적지만 돈을 모으고 어쨌든 인간으로 성장하여 수십년을 살게 된 한 번의 생. 어쩌면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고, 이 세상의 신일지도 모르며, 이 세상의 전부란 건 확실한 상태이기에 조금 더 특별하길 바랐다.
부자가 되고, 사랑을 듬뿍받고, 진정한 사랑을 만나며 유명한 배우가 되어 인터뷰도 하고, 상도 받고, 감명깊은 수상소감을 하고, 여러 곳도 돌아다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호탕하게 웃을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랐다. 음침하다, 잉여다 라는 한 두 단어로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길 바랐지만, 이불을 동굴 삼아 몸을 숨기고 나이 앞자리가 변하도록 나는 모든 감정과 상황을 흡수하기만 했다. 버티기만 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특별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았다. 직업을 얻어본 적이 없다. 특별하게 도드라진 적도 없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한다.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뇌는 망가져 매일 약을 먹는다. 결핍과 과잉과 오만함이 뒤섞인 이 몸뚱아리는 앞으로 어떻게 될 지 모른다.
하류라고 하기에는 너무 평안한 삶이었고 유복하고 행복했다기에는 슬픔과 분노로 점철된 삶이었다. 단 한 번의 생임에도 평균보다 이하. 그것도 조금 이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이 생각이 목에 맨 쇠사슬처럼 매일을 옭아맨다. 가만히 있는데 과부하. 매우 예민한 성질에 내향적이고 그걸 받아줄만큼 유복함은 없는 환경에 놓인 상태. 수직적인 대가족에 막내로서 서열 꼴찌가 맡는 은은한 무시와 감정 쓰레기통으로 자라지 못한 독립성.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고 좌절감만 과하게 느끼는 성향. 현대의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살이 과도하게 잘 찌는 몸을 가진 모양새.
성공한 배우들을 보면 부럽고 질투가 나서 유튜브도 sns도 드라마도 보질 못한다. 저 사람들은 엄청 특별하네. 오르내리는 감정들이 창피하고 한심해서 핸드폰도 끄고 아무 것도 바라보지 않는다. 오늘도 가만히 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