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식 연구자의 미술관 산책
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좋다. 서울관은 주제가 확실하고 실험적이다. 덕수궁관은 전통과 현대가 한 공간에서 만난다. 과천관은 미술과 자연을 동시에 품고 있고, 청주관은 수장고를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는 묘미가 있다. 마음이 힘들 때 국현미에 가면 힐링이 된다. 작품 앞에 서서 아무 생각 없이 색과 형태를 바라보고 있으면, 실험실에서 쌓인 것들이 조금씩 풀린다.
이번에는 독서 토론회 멤버들과 서울관에 갔다. 먼저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를 봤다. 김환기, 이우환,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전시였다. 명불허전. 한 작품 한 작품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한국 미술의 힘에 다시 빠져들었다.
관람을 마치고 옆에 있는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전시로 향했다. 큰 기대 없이 들어갔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흙 냄새가 밀려왔다. 전시관 바닥이 온통 흙이었다. 진짜 흙. 옆에서는 작업복을 입은 분이 레이크로 흙을 고르고 계셨다.
나는 매일 물질이 삭는 과정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금속을 염수에 담그고 전기 화학적으로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변화하는지 관찰하고, 그 변화의 속도와 경로를 기록하고 분석하는 것이 내 일이다. "소멸의 시학"이라는 전시 제목은 내 연구실 문에 붙여도 될 말이었다.
아사드 라자의 〈흡수〉. 서울대 토양생지화학 연구실과 함께 닭 뼈, 커피 찌꺼기, 솔잎, 은행 껍질, 택배 상자, 튀김 부스러기 같은 서울의 폐기물로 만든 '네오소일'이 192제곱미터의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흙 위를 걷고 있었고, 누군가는 쪼그려 앉아 흙을 만지고 있었다. 한쪽에 삽이 놓여 있었다.
온습도를 정밀하게 유지하고 미세먼지와 세균을 차단하는 데 막대한 비용을 쓰는 미술관에, 온갖 미생물의 집합체인 쿰쿰한 흙이 들어왔다는 사실부터가 도발적이었다. 전시가 진행되는 동안 이 흙은 마르고, 갈라지고, 밟히고, 뒤섞인다. 전시 첫날의 흙과 마지막 날의 흙은 같은 물질이되 같은 상태가 아닐 것이다. 관람객의 발자국은 소성 변형이고, 수분이 증발하며 표면이 갈라지는 것은 건조 수축 균열이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은 원래 물질의 변화를 막는 곳이다. 항온항습, 자외선 차단, 진동 방지. 불후와 같이 썩지 않게 하는 것이 미술관의 존재 이유였다. 그런 곳에 썩어가는 물질을 들여놓았다. 정말 신선한 자극이었다.
계단을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향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여다함의 〈향연〉이었다. 마 실과 황동선, 모래 위에서 향이 타오르고, 그 연기가 천천히 피어오르는 것을 보라고 제안하는 작품이다. 연기는 올라가다가 흩어지고, 향은 타서 재가 되고, 재는 모래 위에 쌓인다. 물질이 연소하면서 기체로 바뀌는 가장 원초적인 상변화가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고체에서 기체로, 비가역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변환을 아름답게 보는 것이 가능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 그 옆에 있었고, 거기서 나는 멈춰 섰다.
〈부럼, 코끼리, 생강 일지〉. 어두운 공간에 검은 배너들이 걸려 있었다. 흰 선으로 바람의 궤적이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기온, 습도, 풍속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실의 두께, 재질, 뜨개 도구, 작업 기간, 실이 지나간 거리가 적혀 있었다. 날씨가 뜨개질이라는 행위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한 것이다. 2023년 겨울. 기온 영하 1.8도, 습도 86%.
심장이 빨라졌다. 이건 내가 아는 형식이었다. 실험 조건을 기록하는 방식. 온도, 습도, 유속과 같이 부식 속도를 결정하는 핵심 환경 인자가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부식 연구자는 이 세 숫자를 논문의 Table 1에 넣는다. 이 조건에서 알루미늄 합금의 부식 속도는 몇 mm/year인가. 이 습도에서 응력부식균열은 진행되는가. 나에게 이 숫자들은 그런 의미다. 환경이 물질의 거동을 바꾼다. 부식 연구의 대전제다.
여다함도 같은 전제 위에 서 있었다. 습도가 높으면 실이 수분을 머금어 장력이 바뀌고, 기온이 낮으면 손이 굳어 뜨개질의 밀도가 달라진다. 바람이 불면 실의 궤적 자체가 흔들린다. 환경이 행위를 바꾸고, 행위가 물질의 형태를 바꾼다. 나는 금속에서 그 과정을 추적하고, 이 작가는 실에서 그 과정을 추적한다.
첫 번째 배너 한 장에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여름 4월에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발생하여 사람들은 7일 동안이나 빛을 분별하지 못하였다." 기원전 34년, 동명성왕 4년. 삼국사기 본기의 기록이었다. 2천 년 전의 기상 관측 데이터가, 뜨개질 일지 옆에 놓여 있었다.
같은 데이터가 논문에 들어가면 Table 1이고, 삼국사기에 들어가면 역사가 되고, 미술관에 걸리면 시가 된다. 과학자는 숫자에서 법칙을 읽고, 사관은 숫자에서 징조를 읽고, 예술가는 숫자에서 풍경을 읽는다. 그 경계가 어디인지, 나는 그 어두운 방에서 한참 생각했다.
유코 모리의 〈분해〉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받침대 위에 제철 과일들이 놓여 있었다. 전통적인 정물화의 구도. 하지만 이 과일들은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고, 그 주변에서 빛이 깜빡이고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과일에 전극이 꽂혀 있었다. 과일 속의 유기산은 전해질 역할을 하고, 서로 다른 금속 전극 사이에서 전위차가 발생한다. 여기까지는 갈바닉 전지, 부식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와 같다. 하지만 과일 전지가 만들어내는 기전력은 미미하다. LED 하나를 제대로 켜기도 어려운 수준. 이 작품의 핵심은 과일이 전원이 아니라 센서라는 데 있었다.
과일이 썩어가면서 내부의 수분 함량, 산도, 전기 저항이 계속 변한다. 그 변화하는 전기적 특성을 신호로 읽어내 빛과 소리로 변환하는 것이다. 과일은 발전기가 아니라 분해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는 물성 센서인 셈이다. 과일이 더 건조해질수록 저항이 올라가고, 신호가 바뀌고, 음조가 높아진다.
부식 연구에서도 우리는 비슷한 일을 한다. 전기화학 임피던스 분광법이라는 기법으로 금속 표면의 저항 변화를 실시간 측정하면, 부식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다. 부식이 진행될수록 임피던스가 변하는 것. 유코 모리가 과일의 저항 변화를 소리로 바꿨다면, 나는 금속의 저항 변화를 나이퀴스트 플롯이라는 그래프로 바꾼다. 방법이 다를 뿐, 둘 다 물질의 분해를 '읽는' 행위다.
시간이 작곡가인 셈이다. 분해가 곧 창조가 되는 순간. 부식 연구자인 내가 "열화"라고 부르는 현상을 이 작가는 "분해"라는 음악 용어로 바꿔 놓았다.
마지막 방은 어두웠다. 완전히, 절대적으로 어두웠다. 델시 모렐로스의 〈엘 오스쿠로 데 아바호〉. 검은 흙이 쌓인 공간에 들어서면 시각이 사라지고 후각과 촉각만 남는다. 흙 냄새, 발밑의 감촉, 그리고 암흑.
처음 들어갔을 때 나는 무서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 시각이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서, 나는 물질을 볼 수 없었고 오직 느낄 수만 있었다. 흙의 냄새는 시작 전시실에서 맡았던 네오소일의 냄새와 달랐다. 더 깊고, 더 오래된 냄새. 이 흙은 콜롬비아 출신 작가의 고향 땅의 기억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부식도 결국은 이런 것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금속 내부의 결정립계를 따라, 산화피막 아래에서, 볼트와 너트의 틈새에서. 부식이 눈에 보일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이 암흑의 방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전시를 다 보고 나오는 길에 이은재의 작품 앞에서 다시 멈췄다. 사실 초입에 있던 작품이었는데 아사드 라자의 〈흡수〉가 너무 강렬해서 지나쳤던 것 이다. 나무 패널 위에 달걀 노른자로 그린 회화. 템페라. 무광의 매트한 노란색이 산뜻했다.
달걀 노른자로 그림을 그린다. 단백질과 지방의 혼합물, 상온에서 며칠이면 썩기 시작하는 물질. 냉장고에 넣어둬도 유통기한이 고작 몇 주인 것이 계란이다. 이걸로 그림을 그렸다면, 이 작품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였다. 템페라는 유화보다 오래 간다. 계란 노른자는 건조되면 변질되지 않고, 갈라지거나 떨어지지도 않으며, 온도와 습도에도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노른자의 부착력은 500년 이상 견딘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1486년에 템페라로 그려져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유화는 시간이 지나면 기름이 산화되어 색이 누렇게 변하지만, 템페라는 오히려 마르면서 색이 더 밝아진다.
가장 잘 썩을 것 같은 재료가 가장 오래 버틴다. 부식 연구자에게 이건 익숙한 역설이다. 알루미늄이 그렇다. 알루미늄은 산소와 만나면 순식간에 산화한다. 반응성만 놓고 보면 철보다 훨씬 부식에 취약한 금속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철이 녹슬어 무너지는 동안 알루미늄은 멀쩡하다. 표면에 생긴 얇은 산화피막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빠르게 산화하는 바로 그 성질이 역설적으로 내부를 지켜준다.
달걀 노른자도 마찬가지 아닌가. 건조되면서 형성되는 단백질 네트워크가 안료를 단단히 잡아주고, 수백 년을 버티는 피막이 된다. 썩기 쉬운 것이 가장 오래가는 보호막을 만드는 것.
'삭는 미술'을 다루는 전시의 첫 작품이, 사실은 가장 오래 버티는 기법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 역설이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았다. 삭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형태로 남는 것이다.
미술관을 나왔다. 3월의 바람이 불었고, 나는 그 바람의 온도와 습도를 몸으로 느꼈다. 논문에 쓸 숫자로 느낀 것이 아니라, 그냥 차갑고 습하다고 느꼈다.
전시는 흙에서 시작해서 흙으로 끝났다. 처음의 흙은 밝은 조명 아래에서 관람객이 밟고 다니는 활기 있는 흙이었고, 마지막의 흙은 암흑 속에서 혼자 존재하는 고요한 흙이었다. 삭는 것의 양면이 거기 있었다. 분해는 소멸이기도 하고 변환이기도 하다.
나는 내일 다시 연구실에 가서 금속이 부식되지 않도록 막을 것이다. 합금 조성을 바꾸고, 열처리를 하고, 표면에 코팅을 입히고. 자연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힘에 맞서, 인간의 시간을 벌어내는 것이 내 일이다. 철이 산화되어 산화철이 되는 건, 에너지가 높은 불안정한 상태에서 에너지가 낮은 안정한 상태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자연의 관점에서 보면, 광석에서 철을 뽑아내 합금을 만드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부식은 자연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다.
과학자는 물질이 왜 삭는지를 묻고, 예술가는 삭으면서 무엇이 드러나는지를 묻는다. 같은 현상 앞에서 다른 질문을 던지는 것. 어쩌면 그것이 두 세계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일 것이다. 설명이 멈추는 곳에서 눈이 먼저 반응하고, 눈이 흐려지는 곳에서 설명이 손을 내민다.
오늘만큼은, 삭는 쪽에 잠시 마음을 두고 왔다.
《소멸의 시학: 삭는 미술에 대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2026.1.30 – 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