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 연구 2.
심청전 완판본의 후반은 딸의 죽음을 통한 귀한 돈이 어떻게 그 아비에 의해 탕진되는 지가가 윤리적 얼개의 경판본에 비해 주로 추가되었다고 심청전 연구 1. 에서 언급한 바 있다. 판소리 소설 특유의 골계미와 유머를 살리기 위함이기도 했겠지만, 극에 현실성을 불어넣는 아주 좋은 방법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럴 만한 상황에서 심청이 희생을 하는 것은 <재미> 없으니까
이것이 효녀 지은 설화를 바탕으로 극적 구성을 위해서 후기에 추가된 '이야기' 였다면, 예수님의 그 이야기는 어떤가? 참고로 나는 종교인이 아니며 신약에 잘 알려진 내용을 '이야기'로써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심청전이 그 뼈대를 지은설화 속 논픽션에 근거하고 있듯이,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유사한 역사적인 사건과 맥락이 반드시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약 속 예수님의 이야기는 심청전만큼의 개연성이 없다.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다?
어쨌거나 예수님은 그럴 운명이었나 본데, 여기서 심청전에는 없는 미친 현실감이 등장한다. 배신 아이콘의 연속 등장에 수반되는 예수님의 이것이다.
갈등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를 넘겨주겠다고 제안
은 30에 거래됨 (마태복음 26:14–16)
예수가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선언
제자들이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묻는 장면
유다도 묻고, 예수는 암시적으로 인정 (마 26:20–25)
유다가 무리를 이끌고 옴
입맞춤으로 예수를 지목 (“랍비여!”)
예수: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 (마 26:47–50)
겟세마네 동산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혼자 물러가 기도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태 26:36–46 / 마가 14:32–42 / 누가 22:39–46)
특히 누가복음에는 “땀이 핏방울 같이 되었다”라고 묘사됨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겟세마네'라는 넘버에 이러한 갈등이 잘 담겨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KbzRdS9sBE
신약은 주인공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강한 흡입력을 갖는 이야기성을 갖게 된 것이다.
흔들리는 맘
지쳐버린 몸
지나간 시간이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네
끝내야 할 나의 운명
당신 손에 정해진 운명
뜻하신 대로 날 죽게 하소서
당신 주신 이 독잔이 핏물 되어
날 적시고 찢고 쳐서 죽이소서
지금 내 맘 변하기 전
지금 내 맘 변하기 전
하지만 또 다른 시각이 있으니, 우리는 <관객>이라는 점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데 있어 갈등이 없는 주인공이 더 나을까, 갈등하는 게 더 나을까?
표면적으로 볼 때, 심청이는 자신의 포지션에 대해 직접적 갈등 없이 유교적 도그마에 희생되는 것 같지만 이것을 묘사적으로만 지속해서 다룰 때 어떤 극성이 생기는지 한번 직접 보자.
<심청전>의 '따러간다' 대목
https://www.youtube.com/watch?v=64RUB6uyLgQ
마지막 이 한탄은 짧디 짧다.
아이고 아버지 어머니
무슨 년의 팔자로써
부모 복도
이리 없는 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