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다면 하게 된다.

프랑스 이야기 10

by 홍유나

그래픽 디자인 학교에 들어가게 될줄이야.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기 전, 한국에서 잠깐 쉬기로 하고 들어갔다. 가족들,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기도가 나왔다. 학교에서든 다시 돌아가서 좋은 연들만 붙여달라는 기도를 많이 했다. 뭐 프랑스에서는 언제나 상상치도 예상치도 못한 드라마 같은 상황들이 자주 발생하지만 마주하게 된다면 극도로 당황스럽지만 않은 상황만 만나게 해달라고도 희미하게 기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고 이틀 뒤 바로 첫 수업 하러 학교에 갔다. 나는 일러스트레이션 반으로 들어갔고 반 학생 수는 19명 정도 되었다.


교실 문을 여는데 모두 프랑스 학생들이었고, 웬 동양 여자 한명이 들어가니 다들 신기했는지 자기들끼리 수근덕 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 시선이 따갑지는 않았다. 나는 아무랑도 못 어울리면 뭐 알아서 되겠지 하고 들어갔는데 내가 한국인인 것을 알았는지 꽤나 흥미롭게 나를 보고 눈 마주치려고 쳐다보고 했던 반 아이들의 첫인상이 기억난다. 나는 먼저 인사하고 먼저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간식도 나눠주고 했고 친구들이 우루루 나에게 다가와 말도 걸고 인스타 맞팔도 그 날 다 해버렸다. 내가 예상했던 상황과는 정 반대였다. 감사하게도 괜찮은 친구들을 사귄 것 같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내 별명이 늙은이가 되어버렸지만 ... 프랑스에서는 나이는 크게 상관이 없으니까 뭐.

서두가 길었다.


위의 내용과는 다르게 학교 수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내가 미쳤지, 이걸 선택하고 그냥 한국에서 뮤지컬 계속 했어야했는데', '도대체 내가 왜 이걸 선택해서 여기서 이러고 있는거지,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큰일났다.' 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 생각으로 한학기의 반이 흘려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도 적응을 해나가는 과정이 아니었나싶다. 수업 진행 방식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과제를 어떻게 해야되는지, 어떻게 이해해야되는지, 그리고 수업에 필요한 도구와 프로그램 익히는 것, 그리고 당시 내 프랑스어 실력으로는 특히 그 분야에 있어서 아는 단어가 하나도 없었고, 전혀 다른 것을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0부터 하나하나 알아가야했다. 정말 전쟁 같았다.


초반 수업 과제 제출 할 때는 친해진 친구들이 내가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한번 더 짚어서 얘기해주었지만 그때 이해한 줄 알고 만들어간 과제를 혼자만 다르게 하고 있는가 하면 교수의 피드백도 이해못해서 점수도 낮게 받고 스트레스 속에 과제는 얼마나 많은지 매일 새벽 4-5시 사이에 자곤 했다.

다른 학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프랑스 예술학교는 각 과목마다 정말 창의적이고 다양한 작업을 탄생 시키는 실험적이면서도 전문성을 갖출 수 있는 수업을 한다. 창의력과 개성을 발휘하여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도 있고, 자신이 가진 그림 실력과 포토샵 등등 여러 프로그램을 다루는 실력을 발휘해서 만들어가는 과제들도 있다. 하나하나 따라가는게 정말 쉽지 않았고 여러번 멘탈이 흔들리며 많은 것들을 느꼈다. 예술은 끊임없는 머릿속의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 계속해서 움직이고 영감을 받아야하고 내 안에서, 내 밖에서 무언가를 꺼내야한다는 것, 거기에 소모되는 에너지는 말도 못한다. 그래서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녹초가 되어서 30분동안 멍 때리며 가만히 있곤 했다. 밥을 챙겨 먹을 힘 조차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폭풍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느낀 점은 내가 점점 발전하고 성장하고 있는 것이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건 도무지 내 길이 아니겠구나' 생각과 동시에 '그래도 해내고 만다. 내 선택에 후회 없도록 잘 해봐야지. 버티자!' 하는 두 생각이 같이 공존하며 보내오면서 나도 모르게 성장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학교라는 곳에 소속이 되니 학교 위주로만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 혼자서 주도하며 나아갔을 땐 더 대범하고 내 인생에 포커스를 두고 생각하고 나아갔는데 좁은 곳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각도 행동도 그 곳 안에서만 놀게 되는 부분도 생겼다. 그러니 학교 생활, 시험, 인간관계 모두 거기에 더 신경 쓰이게 된 것 같다.


정말 어디에 말도 못하고 희망과 절망이 왔다갔다 하는 그 시점에서 내가 이 길을 잘 선택한 것이 맞는지에 대한 수많은 고민과 좌절이 수도 없이 나를 쳤지만,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하더라도 결과가 내가 바라는대로 나오지 않게 되는 것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향으로 개척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니 부담 갖지말자. 최선을 다 하되, 안된다고 끝난 것 처럼 생각하지 말고 더 넓게 바라보고 더 크게 생각하고 생각의 유연성을 키워야한다는 생각이 많이든다. 학교에서의 나는 제2의 홍유나, 부케일 뿐이다. 장기전이다. 부담과 압박을 내려놓고 즐겨야한다. 라는 생각으로 매일매일을 다짐하며 버텨갔다.


그러나 ‘이젠 끝났겠지’ 바라던 그다음 폭풍이 다가오고 있는 줄도 모른 채,

나는 또 한 해를 정신없이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