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이야기 9
파리에서 아티스트들을 만나면서도 나는 현실적으로 내가 해야 되는 것들을 해나가야 했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서 배워야 했고, 알아야 했고, 경험을 해야 했다.
사실 당시 나의 능력으로는 더없이 부족하고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아비뇽에서 프랑스어 공부를 해도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프랑스어도 못쓰는 상태였고, 언어가 늘 수가 없었다. 정말 쥐똥만큼 늘어있는 언어실력과 비자연장을 위해 등록한 어학원에서 배우고 쓰는 정도가 다였다.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 말고는 프랑스에서 부딪힌 것이 없었다.
그런 내가, 여태껏 음악만 해오고 음악만 바라보고 왔던 내가 아무런 지식도 아는 것도 없는 분야를 프랑스에서 새로 시작하려 하니 눈앞이 캄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못할 것 없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 하나로 그냥 부딪혔다.
파리에서 제일 괜찮은 그래픽 디자인 학교를 서치 하던 중에 제일 위에 눈에 들어온 학교가 있었다. 국립학교는 바라지도 않았고, 사립이더라도 내가 들어가서 미친 듯이 배워야 되는 게 더 중요했기에 상관없었다. 그러나 낮은 기대와는 다르게 알아본 학교는 생각보다 괜찮았고, 잘 갖춰져 있는 커리큘럼과 졸업하고 바로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부분들에 맞춰져 있는 시스템에다가 졸업 디플롬(자격증)도 괜찮은 디플롬이었다. 사실 그 학교를 보자마자 직감적으로 왠지 여기가 내 학교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었다.
그때부터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준비하고 동기서를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에 대해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알아보았다. 하지만 나 같은 케이스가 드물었기에 대부분 이미 꿈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갖춰져 있는 포트폴리오가 많아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될지 막막하기도 했다.
그냥 죽도밥도 아닌 상태니 고민하다가 결심했다.
화려한 포트폴리오와 실력이 아니지만 내 이야기를 담고 내 이야기를 전하자.
참 신기하게도 아비뇽에서 코로나 때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잘 그리지도 않았던 그림을 수시로 그려댔는데 그게 포트폴리오게 들어가게 될지 상상이나 했을까, 스케치며 뭐며 포트폴리오에 그럴싸하게 다 넣어서 내 이야기를 풀었다.
한국에서부터 시작해 프랑스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이어졌는지, 그리고 여기서 느낀 나의 감정들과 생각들, 다듬어진 나의 철학들을 다 넣어서 작품들이 모두 이어지도록 만들었고 코로나 시간 동안 해소하듯 그려나간 것들을 추가적으로 붙여서 하나의 포트폴리오를 완성시켰다.
정말 이쁘지 않은 포트폴리오였지만 나에게는 늘 여전히 귀한 첫 포폴이었다.
기대를 내려놓고 지원을 했고, 이전 글에 썼듯 잊고 있던 중에 면접 날짜가 잡혔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다.
이것만 통과하면 정말 길이 열리겠구나. 정말 열리면 하라는 뜻이 맞겠다고 생각하고 면접을 준비했다.
사실 면접을 어떻게 진행하는지에 대한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 그냥 준비한 자기소개와 포트폴리오 소개를 준비해서 달달 외우고 설명해야 되는 것까지만 알고 며칠을 고민하고 써 내려가면서 외웠다.
면접 당일 날 오전에 메일이 한통 더 날아왔다. 학교에 가지 않고 zoom으로 화상 면접을 본다는 것과, 교수 여러 명과 면접이 아닌 1:1 면접이라는 것이었다.
오히려 좋잖아?
얼른 면접 준비한 것을 책상에 두고 면접 시간이 가까워졌을 때 미리 앉아서 계속 외우며 대기했다.
면접 시간이 됐을 때 건네받은 줌 링크를 타고 들어갔다. 나이가 조금 있는 여자 교수였다.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었고, 자기소개 없이 바로 나의 포트폴리오를 열어서 같이 보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작품은 어떻게 그린건지, 어떤 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지, 이것저것 가능한지 등등 물어보았다.
그리고 내 작품을 너무 좋아해 주며 생각보다 편하게 면접이 이어졌다. 그런데 어눌한 내 프랑스 실력으로 교수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교수가 답답해하기 시작한 순간이 있었다. 면접 시간은 꼴랑 15분이었다.
잘 가다가 엇갈리기 시작해서 잃을 게 없던 나는 교수에게 혹시 내가 준비한 얘기가 있는데 괜찮으면 너한테 해도 될까? 물어보고 남은 시간 동안 내가 준비해서 외운 것들을 다 설명했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후회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교수는 차분히 듣고 이해를 했는지 잘 들었다며 칭찬을 해주고는 2주 안으로 결과가 나올 테니 메일을 잘 확인하라고 하고 그렇게 면접이 끝이 났다.
폭풍 같은 시간들이 끝나고, 나는 마치 모래 속에 갇혀있다가 뚫고 나온 것처럼 해방된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1차가 끝났구나. 나는 최선을 다했고, 안되면 한국으로 돌아가자. 기대하지 말자. 남은 시간 이제 마음을 내려놓고 푹 쉬어야겠다.
하지만 그런 생각 뒤로 안되면 어떡하지에 대한 걱정과 불안함은 계속 머무르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을까,
알 수 없는 메일이 한통 날아와서 열어보니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가능해짐을 느끼고, 그동안의 힘든 시간들이 씻겨져 내려가는 듯 벅차올랐다.
가족들에게 증명해 보였고, 다들 왜 도전하냐고 다시 와서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고 반대하던 모든 주변인들에게 보여줬다.
한국에 계속 있었다면 내가 이런 값진 경험들을 할 수나 있었을까?
별거 아닌 것 같은 이 합격통지서가 나에게 더 큰 도전정신과 자부심을, 그리고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