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이야기의 첫 시작
벌써 5년 전이다. 프랑스 땅으로 떨어진 지가,
2019년, 뮤지컬 전공으로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하나 고민할 때쯤 부산에서 엄마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늘 그랬듯 일상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나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혹시 해외로 유학 갈 생각 없나?" 하고 말이다. 해외에서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에 관심도 없던 내가 당시 뭐에 씌었는지 잠시 망설이다가 "알겠다"라고 대답했다.
그땐 상상도 못 했지, 내 삶이 180도 바뀌게 될 줄은.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단순한 면이 있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한 게 긴 고민도 없었고, 그냥 뭐.. 가보자! 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선포해 버렸다. 말을 뱉어버렸으니 정말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고, 챗GPT도 없던 시절 얄팍한 정보들만을 의지한 채 '어느 나라로 가야 될까?', '어느 학교를 어떻게 알아봐야 하나' 하며 유학원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고 혼자 알아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가 우연인지 운명적인 건지 고등학교 시절 나를 유독 특별하게 챙겨주셨던 뮤지컬 레슨 교수님과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 생겼다. 내 이야기를 우연히 친동생이 다니던 배우 학원에서 만나서 듣게 되었고, 연락이 닿아 서둘러 엄마와 함께 교수님과 이야기하기 위해 식사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식사를 하면서 교수님은 나에게 더 강력하게 제안하셨다. 당시 교수님이 뮤지컬과 학과장으로 계신 대학교와 프랑스 남부 아비뇽(Avignon)이라는 도시에 있는 국립예술학교가 자매결연을 맺게 되었고, 그 학교에 새롭게 뮤지컬과 가 생길 예정인데 도전해보지 않겠냐고. 고등학교 때부터 나의 재능을 알아봐 준 교수님께서 특별히 나에게 따로 제안하셨던 것이었고 왜 가야 하는지와 가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등등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프랑스와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지고 있었다. 2019년 11월 겨울, 답사 차원으로 교수님과 프랑스에 다녀오기로 해서 자매결연식 때 축가로 부를 뮤지컬 곡을 연습했고, 자기소개를 하기 위해 당시 프랑스어를 한마디도 못할 때라 죽어라 외우고 연습해서 갔다.
대략 11일 정도의 일정을 가지고 설렘만 걱정반으로 프랑스에 도착했고, 행사를 위해 아비뇽으로 넘어갔다. 그 자리에는 아비뇽국립학교 학과장, 디렉터 등등 중요한 분들이 계셨고, 방송을 찍기 위해 카메라맨과 몇몇 관객들 그리고 기자도 왔다. 듣기로는 큰 행사가 아니라서 인원수가 적은데 이 정도면 많이 온 것이라고 했다. 그 얘기가 더 긴장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프랑스 역사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Lesmisérables의 On my own ( 프랑스어로 Mon histoire )를 프랑스어로 프랑스인들 앞에서 불렀다. 당시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목이 타들어갔지만 꿋꿋이 잘 끝냈다. 축가가 끝나고 한시름 놓여 디저트도 먹고 기자와 인터뷰도 짧게 하고, 그냥 그게 끝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잠든 다음날, 아직도 생각하면 믿기 힘든 서프라이즈가 나를 찾아오게 된 것이 아닌가!
마르세유(Marseille)로 가기 위해 이른 아침 역에서 교수님과 다른 일행분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누가 큰 소리로 "유나야!! 대박이다 대박!!!" 하면서 웬 종이들을 들고 오는 게 아닌가.. 나는 저게 뭐지? 하고 그쪽으로 향했고, 교수님이 이건 우연이 아니라며 잔뜩 흥분한 상태로 나에게 무언가를 보여주시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프랑스 남부 대표 신문사인 프로방스 신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자세히 보니 그 신문 앞면에 내가 대문짝 만하게 나온 것이었다. 심지어 찾아보니 사이트 기사에도 실렸었다. 정말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 축하행사는 몇 명의 소수만 참석하고 나는 노래만 불러주고 빨리 끝나는 자리라고 들었었기 때문에. 그런데 막상 가보니 사람들도 꽤 있었고 내가 노래 부르니 밖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인터뷰도 하고 사진도 찍어가고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게 신문에 나올 줄이야... 마치 프랑스가 나에게 환영한다는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았고, 두고두고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신문을 여러 장 샀다.
그렇게 한 치 앞도 모를 나의 유학의 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