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오일 만에 칠 남매 막내아들과 결혼했다. 내가 미쳤지, 내가 왜. 왜 결혼을 했을까. 그러게 말이다. 미쳤으니 한 짓이다. 이십오 년을 미혼으로 살아왔고, 결혼 적령기를 지나 불혹의 마흔도 넘겼는데. 죽마고우는 내 나이 마흔다섯에 초혼을 한 게 기적이라 했다.
여중 동창 모임에서 나는 유일한 미혼이었다. 친구들은 스물다섯 전후 취직, 서른 전 결혼, 부모가 되는 수순을 밟았다. 겉으론 아닌 척했지만, 속으로는 내 자유로운 생활을 부러워했다. 명절엔 여행을 떠났고, 사이클, 마라톤, 스피닝 강사에 도전했다.
서른넷까지는 억지춘향으로 선을 봤지만 결혼 환상이 없으니 성사될 리 없었다. 서른다섯이 되자 선 자리는 여동생에게로 넘어갔고, 나는 부모를 모시라는 압박을 받았다. 좋은 부모가 아니었고, 내가 스무 살 때 이혼했다. 내 가족도 싫은데, 남의 가족과 엮이는 게 내키지 않았다. 동창 모임에서 듣게 되는 시월드 험담은 지옥의 쇠사슬이었다. 적어도 내 발로 지옥에 뛰어들지는 말자고 다짐했었다.
마음 가는 대로 살다 보니 월세를 전전했고, 자유로웠으나 외로웠다. 아플 때는 혼자라는 사실이 몹시 서러웠다. 제주에서 공부방 창업 사기로 가진 돈을 잃고, 사이비 종교에 발을 들였다. 인생이 꼬여만 갔다. 육지로 올라갈까 고민할 때,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제주에서 소개팅이 끊이지 않았다. 마흔셋, 적지 않은 나이였지만 전국 노총각들이 제주에 몰려드는 듯했다. 대부분은 지나치게 적극적이라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그중 내가 반한 남자가 있었다. 회안의 동갑 남자, 날씨와 기분에 따라 회색 눈동자의 색이 바뀌었다. 세 번째 만난 날, 함덕 바다를 닮은 비취색 그의 눈동자에 반해버렸다.
우린 연애를 시작했다. 화북과 표선을 오가며 함께 장을 보고 저녁을 먹었다. 그가 만들어 준 수육과 닭볶음탕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고 따뜻했다.
이태째 연애 중이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주차장으로 나왔을 때였다.
“야, 막내!”
앙칼진 목소리에 돌아보니 중년 부부가 꼬리처럼 있었다. 그는 당황했고, 나는 모른 척했다. 하지만 빼도 박도 못하는 발각된 현장이었다. 그는 나를 불러 막내 누나와 매형을 소개했다.
“어머, 반가워요. 우리 막내가 드디어 연애를 하네.”
기뻐하며 웃는 막내 누나가 그 길로 우리를 패밀리레스토랑으로 데려갔고, 넷째 누님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날 저녁에는 넷째 누님네로 초대 당했다.
열흘 뒤 그의 어머니에게 불러갔고, 오십오일 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웨딩마치에 맞춰 식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때는 사랑에 미쳐있었다. 결혼이라는 미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내가 반했던 비취색 눈동자의 그 남자는 지금도 영화관에서 내 옆에 앉아 매번 코를 골며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