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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Nov 06. 2023

사랑은 줬지만 뼛가루는 못 주겠는걸!

남편아 미안!


일본의 묘는 가족묘가 일반적이다. 신혼 때 나는 얼굴도 모르는 시댁 조상님들의 묘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돌아오는 길 일본인 남편과 언젠가 먼 훗날 우리가 죽으면 우리 유골은 어떻게 할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때 가족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봉안묘들을 보며 처음으로 아, ‘결혼’이라는 것은 훗날 죽어서도 이 사람 곁에 나란히 하겠다는 뜻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은 이름-우리 가족의 성- 밑의 한자리에 묻힌다는 것이 마치 우리의 끈끈한 ‘부부애의 종착점이자 도달점’이며 ‘낭만적인 사랑’처럼 느껴졌었다. (아직 신혼이었다고..)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 18년의 해외생활동안 ‘낭만적인 사랑’과 엿 바꿔 먹은 아이템이 있었으니,

그거슨 바로, 나의 귀소본능이니라.


내가 비록 흐르는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국 사랑이 절절 끓는 애국자도 못 되지만, 아이들에게는 ‘초국적인’과 ‘세계시민’을 부르짖고 있지만,

혹여 누가 묻는다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해야지.

“아니… 뭐… 굳이… 내가 죽어서까지 남의 나라 땅에…쿨럭”


솔직히 고백하자면, 해외에서 살아가는 인생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뿌리의 땅’ 이 갖는 의미는 점점 커져가는 것 같다. 십수 년의 시간 동안 ‘낭만’은 ‘끈끈한 전우애’로 업그레이드 장착되고 이미 만렙을 찍었지만, 남의 나라 땅에 뼈를 묻는다는 생각에는 ‘아니 뭐 굳이..‘하고 망설여지는 것을 보니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지구촌 곳곳의 많은 이산(離散)인들이 그러하지 않을까.

모든 생명체는 회귀성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가 깨닫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뿌리의 땅’을 일생을 두고 그리워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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