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출산을 할 수나 있을까

by 고스라히


한순간 쉽게 끝난 일이 아니었고

남편은 계속 높은 용량의 정신과약을 먹고 있었고

그 와중에 작가나부랭이 한다고 작품을 쓰고 있었고

세 식구 건사한다고 직장도 나가고 있었고

그 여자애가 사라지니 한동안 나를 그렇게 괴롭혔다.

(말로.)


내가 늘 하는 말 중에

“어디 싸가지학교에서 배우고 왔냐고 “

싸가지 없게 얘기해서 상대방 얼어 붓게 만드는 데는 아주 능력이 탁월한 사람이다.

이게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한 적이 있는데

나중에 어머니를 보고 깨달았다. 아 저쪽에서 받아왔구나.


그렇게 한동안 술에 쩔어, 약에 쩔어

너랑은 못살겠다는 둥, 너한텐 가슴이 안 뛴다는 둥, 별… 개소리를 많이 해댔다.

이래놓고 아침에 되면 다른 사람처럼 다시 돌아와 있었다.

애초에도 편안하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큰 변화 없다고 느껴졌다.

밤마다 첫째 재우고, 남편 이야기를 들어주며

뱃속 아이에게는 점점 멀리하게 됐다.


아기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사실 제일 피해자였지만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하필 왜 지금 몸이 이렇게 무거워서… 당장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맘 같아선 이 자식 버려두고 첫째만 데리고 나가고 싶은데.

애 하나면 어떻게든 건사하고 살겠다만 둘은 다른데.. “

이런 생각까지 드니 태교는 고사하고 아기생각을 아예 안 했다.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제 막달인데 아기 몸무게가 너무 적어요…

더 잘 드시고 쉬셔야 합니다. 이러다간 출산하기 힘들어요. “

병원에서 8개월까지 잘 불어나던 몸무게가 막달까지 움직이지 않고

딱 멈춰있으니 걱정을 많이 했다.

내 시간도 그날 이후로 멈춰있으니 당연할 수밖에…


어머닌 그 말을 듣고 당장에 짐을 싸서 내려오셨다.

친정부모가 없어 보살핌을 받기 힘든 나를 걱정해 뒷바라지하러 내려오신 거였다.

출산까지, 그리고 출산하고 몸조리할 때까지 3개월. 어머니와 매일 함께 있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야말로

아들죗값 치르러 오신 분이었다.

골칫덩어리 아들놈 때문에 둘째 손녀를 잃을뻔했고

똑 부러지는 며느리 눈치 보느라 참 고생하셨다.

불같은 성격인데도 3개월을 꾹 참고 내성질 다 받아주셨다.


아침점심저녁 고봉밥을 매일 지어주시고

아들놈 작업실에서 아주 들어오지 말라면서

내신경 거슬리지 않게 차단하시고

첫째 손주 봐주시고 (근데 애들 안 좋아하시고, 애들 진짜 못 보신다;)

집안일을 해주셨다.


이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사하다.

지금도 말하기를, “여자 셋이서 해냈다고 “ 말한다.

나를 지키려는 어머니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버텼던 나와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뱃속에 딸아이까지.


여자 셋이서 한마음으로 이루어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덕에 아이가 세상빛을 보게 되었다.

두 번째라 출산은 매끄러웠고 아기가 처음 세상에 나왔던 날을 , 아이를 처음 안아봤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


“산모님이시죠?”

병원아래층으로 내려가 출산 이후 처음 아기를 혼자 안아보는데 아기 눈이 이상했다.

첫째 때랑은 달랐다. 아들과 딸의 차이일지 몰라도..

아기눈이 꼭 우주 같았다. 푸른빛이 살짝 돌면서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조용히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는데 낯설었다. 나를 보고 있는데 초점이 없는..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돼..

외계인 눈동자 같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신비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기가 이렇게 말하는 거 같았다.

“엄마, 나 다 알아요. 고생 많았어요.”



둘째는 지금도 내겐 신비로운 영역이다.

생이 꼭 두 번째인 것처럼 행동한다.

얼마 전엔 이런 이야기를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 기억나?”

“응”

“그때 뭐 하고 있었어?”

아직 말을 잘은 못 하는 네 살짜리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안아주고 있었어. “


무심코 툭 뱉고 오빠와 경주를 하는 딸내미 뒷모습을 보며

잠깐 멈춰서 바라보았다.

진짜… 뭘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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