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진통은 바로 알아차렸다.
밤 9시쯤. 부엌에 서있는데 갑자기 오는 찌릿한 통증이 예사롭지 않음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첫 번째 출산을 몸이 기억하고 있으리라.
‘아, 이건 준비를 해야겠다.’
부를 가족들이 주변에 없어 가까운 지인에게 부탁전화를 넣어놓고 얼른 첫째를 재웠다.
놀라지 말아야 할 텐데.. 일어나면 엄마가 없다고..
3살. 삼 개월이 가까운 시간 동안 아이가 피부로 느꼈을 아빠의 이상함. 엄마의 슬픔. 불러오는 배를 보며 느끼는 존재.
이 조그만 아이가 마음이 어땠을까…
참 마음이 무겁다.
‘얼른… 엄마가 얼른.. 동생 낳아 돌아올게. 불안해하지 말고 기다려’
자는 아이 귀에다 속삭이고 가방을 쌌다.
지인에게 혹여 새벽에 아이가 일어나면 많이 불안해 할테니 안아주며 이야기해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남편과 함께 둘째를 낳으러 병원을 갔다.
잘.. 낳고 싶었다.
그간에 모든 시간들을 고스란히 보고 듣고 나와 함께 느꼈을 이름도 아직 못 지어준 이 아이를..
잘 낳아서.. 그동안의 고통을 끝내고 싶었다.
빨리 몸이 가벼워지고 싶었다. 하루라도 빨리 낳고 싶었다.
아침 7시에 아이가 나왔다.
배 위에 올려놓은 아기를 기력이 없어 잠깐 고개 들어 바라보고는 눈을 감았다.
그 찰나를 바라보았는데도 아이는 토마토같이 빨갛던 첫째와 달리 너무.. 작고 하얗고 예뻤다.
너구나….
니가 내 안에서… 다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구나.
너를 외면했는데.. 나는.
너까지 품을 여력도 없었는데.. 나는.
근데 너는 왜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우리에게 온 거니..
아이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평생 가져갈 죄책감 한 조각이 마음에 박혔다고.
단 한순간이라도 너를 포기하려 했다는 사실이 잊히지 않을 거라고..
이런 내 속을 알리가 없는 남편은
아이가 천사같이 예쁘다며 너무 하얗고 예쁘다며 밤새 기다리느라 졸린 눈을 꿈뻑이며 말한다.
그 아이를 처음 안으면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그간 꾸역꾸역 참았던 모든 감정이 다 한꺼번에 나올 줄 알았는데
아이의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눈빛에 신비함만 가득 느꼈다.
아이를 신생아실로 보내고,
첫째가 걱정되어 남편을 집으로 보내놓고,
잠깐 집에 올라가신 시어머니가 부랴부랴 다시 내려오고,
혼자 병실에 누워있는데 태동이 느껴지지 않는 배가 시원하기도,
이제 모든 큰일들은 다 지나갔다는 생각에 안도가 되기도..
홀로 있는 시간이 너무 오랜만이라 홀가분하기도 했다.
‘너무… 고생 많았다. 너 진짜.. 고생 많았다.’
쓰다듬어줄 친정엄마도 없지만..
내가 참 대견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천장을 바라보고 반듯이 누워도 무게에 짓눌리지 않음에 편안한 호흡을 하며 천장을 바라봤다.
정말 친정엄마 생각이 났다.
다들 아이를 낳으면 엄마가 생각이 난다는데, 첫째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 말이 약이 올라 나는 엄마 생각을 하지 않을 건데? 강하게 부정했는데
이런 일들을 겪고, 딸이 나오자 엄마 생각이 났다.
참으로 신기하게..
아이가 우리 엄마를 닮았다.
너무 하얗게, 너무 하얗게..
두부처럼 하얀 우리 엄마를 똑같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