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편마다 얘기하지만, 나는 영상광고제작을 업으로 삼고있는 업자다. 뭔 차이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한 지 3년 정도가 되었고, 나름 주식회사인지라 사회에 갓 진출한 초년생에서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원들이 이 사업장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하는 일이 영상을 만드는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너튜브를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직종인데, 나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스타일의 영상이 쏟아져 나오니 구닥다리가 되지 않도록 매일 너튜브를 열어서 기웃거리는 일이 많다. 그중 내가 신경써서 자주 챙겨보는 것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만든 광고'다. 심지어 일부러 광고를 보기 위해 너튜브 프리미엄도 구독하지 않을 정도. 물론 여기서 보게되는 광고라는게 별 언급할 가치가 없는 중국산 게임광고들이 다수지만, 그래도 가끔가다 정말 잘만들었다는 광고 또한 접하게 되기 때문에 돈도 절역할 겸 프리미엄을 구독하지 않는것에 나름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너튜브 얘기가 나왔으니 우리 장미구락부 너튜브 채널도 한번 공개해주고 넘어가도록 하자.
https://www.youtube.com/@user-cg6uu6sg5q
너튜브에서 광고를 보다보면 소위 말하는 '태국의 약빨고 만든 광고'를 접하게 되는데, 진짜 우리가 봐도 약빨고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창의적이다.
https://youtube.com/shorts/mpSMCwzdQEg?feature=share
약간 옛날에 만든법한 영상이지만, 얘네들의 똘끼는 제법 역사가 있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다른 태국의 광고는 너튜브에 많이 올라와 있으니 찾아보면 될 것 같고, 암튼 하고싶은 얘기는 이렇다.
얘네들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고 광고를 만들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런 독특한 태국 광고시장의 특징은, 의뢰인이 업체한테 왈가왈부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태국은 의뢰인이 창작자의 머릿속 생각에 대해서 존중하고, 의외로 이를 잘 수용하여 광고를 제작하고자 하는 성향이 있다. 이건 대단히 용감한 일이다.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이 저 위 선풍기회사 사장이라고 가정해보자. 광고업체가 저런 기획안을 들고 나왔다면 당신은 이걸 순순히 용인해 줄 자신이 있는가? 대한민국 광고시장에서 저런 영상을 용인하는 의뢰인은 (분명 있긴 하겠다만) 잘 없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다.
아무튼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태국 광고계의 똘끼는 무럭무럭 성장해 왔고, 이제는 "누가 더 약을 빨았는가" 라는 경쟁이 붙을 정도로 광고만 모아봐도 재미있어지는 나라가 된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각종 광고제에서 상을 휩쓸고 다니는 것은 덤.
지난 편에서는 의뢰인이 제작에 너무 관심이 없어서 실패하는 광고에 대해서 썰을 풀어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실패하는 광고의 요인 3탄, 의뢰인이 너무나 관심이 많아서 실패하는 부분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요즘은 그야말로 정보가 넘치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잘 알기 힘들었던 분야도 너튜브 몇편을 보면 누구나 전문가 행세 정도는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대체적으로 이야기를 경청하던 의뢰인도 어느순간부터 제작에 있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게 눈에 띄는 요즘이다. 자유민주주주의 시대에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상당히 옳은 현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가 되는건, 목소리를 내는 것 까지는 좋은데 '어설프게 공부하고 나서 전문가로 빙의되어 큰 목소리를 내는것' 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눈뜨고 코베어간다는 세상이라 영상제작을 하는 업체들이 뭔가 일을 대충할까 싶은 염려도 이해는 한다. 그래. 실제로 그런 업자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는가 지켜보고 감독하는 것이 아닌, 제작 자체에 있어서 잘 모른체 깊숙히 관여하려는 자세가 문제라는 거다. 기껏 열심히 영상을 이쁘게 찍고 있는데, "구도나 심도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정신이 멍해진다는 거다.
3년 전쯤인가, 인터넷 만물상을 하는 업체가 우리에게 영상제작을 의뢰해 왔다. 계약하고 기획안을 작성하여 의뢰인에게 컨펌을 받고 촬영을 시작할 때였다. 그런데 이 업체가 씬 하나하나에 "맘에 안든다", "여기서는 이런 구도로 찍어야 할것 같다". "제품이 돋보이지 않는다" 등등의 사소한 핑계로 사전에 작성된 기획안을 모두 뒤집어서 이상한 방향으로 촬영을 몰아세워갔다. 슬슬 열이 받기 시작하는 스텝들을 달래며 내가 몇마디 말을 던졌다.
"선생님, 이제부터는 요청하시는 그대로 만들어드릴게요.
하지만, 영상 결과물에 대해서는 책임지기 어렵습니다"
이후 모든 촬영에 대해서 의뢰인이 요청하는 그대로 진행이 되었고, 나는 억한 심정으로 촬영된 씬 하나하나를 모니터를 통해 의뢰인의 확인을 받아가면서 촬영을 마쳤다. 구도나 편집점 따위는 이미 안드로메다로 날아가 버린 상태였다. 이후 편집단계에서도 마찬가지. 의뢰인이 하자는 그대로 했다. 심미안 따윈 없었다. 어느 부분에서 어떤식으로 자막을 넣을 지 등 의뢰인이 하자는 대로만 작업을 진행했다. 사실 이러는게 우리 뿐만은 아니다. 대부분의 업자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곧장 나의 의지와 아이디어를 통해 내 기술로 영상을 만드는 것을 포기해버리고는 한다. 왜냐면
우리끼리 얘기로는, 잘 만든 광고는 '광고주'가 만족하는 광고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단계로 넘어오게 되면 대부분의 업자들은 정신을 반쯤 내려놓고 진짜 의뢰인이 하자는 대로 그대로 수행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업자들이 보는 효과가 하나 있긴 한데, 그것은 '최소한 완성된 결과물에 대해서 책임소재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사실 업자들은 줄곧 영상만 만들어왔으므로, 목적에 따라 이 영상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의뢰인이 이를 무시하고 제작에 있어 자꾸 산으로 가는 의견을 내세우게 되면 업자는 결국 이에 따라갈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영상이 나왔을때, 영상이 맘에 들지 않거나 광고로서 효율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니가 그렇게 만들래매" 한마디면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의뢰인도 데꿀멍한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위의 인터넷 만물상 영상은 너무나 처참하여 우리 포트폴리오에도 올리지 못했다. 의뢰인은 완성된 결과물을 보고 당황스러워 하였지만, 모든것이 본인이 결정하여 제작된 것이므로 우리에겐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영상 전반에 걸쳐 흔히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다. 영상이라는 것이 명확하게 수치나, 계산을 통해서 완성되는 공산품이 아닌, 오롯이 사람의 감각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같은 내용을 들어도 그것을 머리에 그려보는 그림은 다 다르게 마련인데, 이때 다소의 의견 차이가 발생하더라도 최소한 심미안적인 영역, 혹은 촬영과 조명을 설치하는 등의 경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영역은 제작자에게 맡기면 좋으련만, 이런 상황에서 꼭 개입을 하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들이 존재하는 것이 문제다.
기획사 대표의 입김이 너무 많이들어가서 뭔가 요상해진 아이돌 그룹의 새 뮤직비디오, 투자자의 입김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내용이 산으로 가버린 영화, 방송국의 정치적 입장으로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다큐멘터리 등, 기획 단계에서는 충분한 대화와 서로의 의견교환이 중요하겠지만 실 제작 단계에서 너무 많은 요구가 들어가게 되면 해당 영상은 필패할 따름이다. 물론, 제작사를 믿고 냅둬도 필패하는 경우가 있기는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계산할때, 너무 많은 요구를 해서 필패할 가능성이 좀 더 높은것은 사실이다.
판단이 애매할때는 업자를 믿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요새의 광고영상은 그 수명주기가 짧다. 신규 캠페인 한번 벌여봤자 두어달을 가지 못한다. 그만큼 세상이 빠르게 변하기 때문이다. 예전엔 1억 들여서 광고 한편 만들었다면, 3천만원 정도로 쪼개서 3편을 만드는 추세다. 그렇기 때문에 업자들도 한몫 땡겨서 모른척하는 전략보다는, 잘 만들어줘서 이후 재계약을 따내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언듭한 적 있지만, 우리도 우리가 만드는 영상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잘 되야 우리에게 또 맡길거거든. 그뿐이다.
지금까지 의뢰인이 이상해서 광고가 이상해진 사례들을 들어보았다. 생각해보니 너무 남탓만 하는 느낌이 들어 다음에는 이상한 업체를 골라내는 법에 대해 한번 글을 써볼까 한다. 굿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