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내며

[ 요리에세이 ] < 행복을 연출하다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막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2012년 우리 집에 온 냉장고 19년 가까이 정들었던 투 도어 냉장고를

시간이 되니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십 대 중후반부터 나와 오랜 지기였다. 시절이 수상하여

경영하던 사업장과 정든 집을 경매로 타인에게 비워주게 되었을 때, 나와 함께 운명을 함께 했다.


그 후 3년 8개월을 남의 건물 60평 창고에서 추위에 떨며 나와 함께 보냈다.

즐거울 때나 기쁠 때 함께 했던 벗! 내 인생의 굴곡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지켜본 오랜 지기다.


지기는 생긴 그대로 떠나보내지 못하고 문짝과 분리되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떠났다. 뒷모습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보이는 얼굴이라도 깨끗하게 닦고 보내줄 것을 그냥 보내려니 지기에게 미안했다.


오랜 지기가 품고 있던 잡동사니들 그렇게 많은 것들을 품에 지니고 있느라 많이 힘들었을 터인데

투덜대지 않고 말없이 품어 준 고마운 친구다!



너를 보내고 새 식구를 맞았다. 열두 살 초등학생이던 막내가 삼십 대가 되어 새 가정을 이뤘다.

막내며느리가 효도선물로 준 김치냉장고는 나이 든 엄마에게 최고의 선물이었다!

맨 아래칸은 냉동실로 사용하고 중간칸은 김치냉장고로 쓰고 위칸은 냉장실로 사용하고 있다.


2022년 당근에서 5만 원 주고 수원까지 가서 데려 온 구형 김치냉장고

한 칸은 냉동으로 한 칸은 잡동사니 보관창고로 사용하기 위해 속 안을 닦아내고 정리했다.




너를 보내며

----------------------시 / 이숙한


그 많은 잡동사니들을 말없이 품어준 너는

나의 귀중한 지기였다.


너를 보내며

깨끗하게 관리해주지 못해

미안함을 감출 수 없구나.


멀리 보내지더라도

깨끗이 닦아서 보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너는 자연으로 돌아가겠지.

나와의 이별이 아프겠지만 한 세월 우린 동지였다.


2년 여 시간은 냉장실이 작동되지 않아

야채나 음식들이 금방 상해 버려질 때가 있었지.

너의 고마움을 잊고 투덜거려서 미안해!


넌 5년 전 네가 태어난 고향으로 떠나려고 했다.

널 잉태한 모체가 살릴 수 없다고 하기에

널 살리기 위해 인터넷을 한참을 뒤졌어.

서울 황학동에서 고장 난 장기를 찾아내 수술을 해주었지.


넌 덤으로 5년을 나와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고맙다! 친구야,

가는 널 배웅은 못해주지만. 잘 가거라.

너와의 진한 우정을 오래도록 기억해 줄게.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11화잡곡김밥과 퀴즈 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