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연재] < 인생 역전 > 유정 이숙한
비몽사몽 이승과 저승을 오가던 그는 저승사자 옷을 걸쳐 입은 남자가 서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송가였다.
- 이 사람아 아프면 병원엘 가야지, 누워만 있으면 어떻게 하나?
- 약 먹었으니 나아지겠지. 지하탱크에서 작업했는데 뿌레카 소리 때문에 귀청이 나간 거 같아.
- 쯧쯧. 그럼 병원에 가야지, 밥은 먹었나? 내가 뭐라도 먹을 거 사 올 테니 누워있게나.”
- 불고기 피자나 한 판 사 와. 대병 콜라도?
몸이 아픈 것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이 배고픔이었다. 저승사자에게 영혼을 판다 해도 배만 채워준다면
그까짓 거 영혼쯤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영재다. 배가 고플 때 찾아온 고마운 친구다.
송가가 빅 사이즈의 불고기 피자를 사 왔다. 송가는 배가 부르다며 피자 한 조각만 먹었다. 영재는 기운이 없고 아프다며 시체처럼 누워있더니 먹을 것을 보니 기운이 뻗치는 모양이다. 귀신같은 몰골로 일어나 앉더니 피자 다섯 조각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1.8리터짜리 콜라 반 병을 게걸스럽게 들이켜고 남은 두 조각마저 먹어치웠다. 남은 콜라를 들이켜려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종이컵에 콜라를 따라서 송가에게 건넨다. 그리고 남은 콜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방이 울리도록 큰 소리로 ‘커~억~’ 트림하자 배 안에 가득 찼던 공기가 쏟아져 나왔다. 앓은 소리를 하며 비스듬히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연기를 빨아낸다. 그리고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엉덩이 사이에서 고막을 터지는 폭발음이 났다.
대장 안에 갇힌 가스들을 방출하고 나니 살 것 같은 영재다. 송가는 삭힌 홍어의 암모니아와 퀴퀴한 청국장에 시큼한 레몬을 추가한 것 같은 냄새가 괴로운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방구들이 흔들리며 엄청난 폭발음이 터졌다. ‘커~억’식도 안의 공기를 뽑아내자 콜라와 쿠키가 섞인 역겨운 냄새가 방안에 진동했다. 방으로 들어온 송가는 눈을 곱게 흘기며 언짢은 표정을 짓는다. 그 냄새가 어찌나 지독한지 코가 떨어져 나갈 판이다.
- 주린 배를 채워주었더니 방귀 세례를 주나? 뭘 먹었기에 지독한 건지?
송가의 말에 영재는 할 말이 없다. 주린 배도 채워주고 콜라도 마셨으니 세상에서 부러운 것이 없는 그였다.
그는 달력 뒷면 하얀 공간에 한 달치 수입과 지출을 적어보았다. 2012년이라 대체인력비가 올라서 남자는 8만 원이다. 인력사무실 수수료 10%인 8,000원을 빼면 72,000원이다. 한 달에 26일 일하면 187만 원. 방 사글세 35만 원, 전기료와 공용화장실 및 수도요금 5만 원, 김밥 1,500과 야식 컵라면과 피자, 햄버거, 양념치킨 등 식비 30만 원, 200원 자판기 커피와 과자, 간식비 10만 원, 게임비와 복권 구입비 50만 원, 매일 피우는 담배 27만 원, 교통비 10만 원. 계산상 20만 원이 남는다. 계산과 실제는 오차가 있다. 비 오는 날이나 일이 없어 공치는 날이 있다. 한 달 수입이 대략 160만 원이라고 보면 정확하다. 모두 공제하면 5만 원에서 8만 원 남는다. 게임과 복권을 많이 산 달은 마이너스다. 돈이 없으면 복권을 사거나 게임을 하지 못한다.
모자라는 생활비는 일당이 센 일을 지원해서 메꾼다. 영재는 방구들이 꺼지도록 긴 한숨을 쉰다. 고된 생활을 20년 가까이 하지만 통장 잔고 122,000원이다. 돈이 없으니 배가 고프다. 치킨집 앞을 지나노라면 고소한 냄새 때문에 창자가 뒤틀린다. 돈이 떨어지면 먹고 싶은 것이 왜 그리 많은 건지..
아버지 살아생전에 막내아들인 영재에게 밭을 떼어주면서 부탁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엄마 모시고 살아라!"란 말이 뇌리에 스쳤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형에게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을 맡겼는데 아차 싶었다. 십 년도 지난 일이다. 형은 영재가 빌린 사채를 갚느라 인삼밭을 팔았다는 이야기가 얼핏 기억난다. 영재는 게임과 복권을 사서 인생역전을 꿈꾼다. 매주 복권을 산다. 기다리는 6일 동안 떨리고 행복하다. 그의 인생은 게임과 복권이 전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