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꿈결인지, 잠결인지

[ 단편소설 연재 ] < 인생 역전 > 유정 이숙한

by 유정 이숙한

배에서 천둥이 치는 것을 보니 큰 거가 나오려는 모양이다. 영재는 죽을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기어갔다. 대장을 장악한 많은 가스와 찌꺼기들이 밖으로 나오겠다고 아우성이다. 몸에 미진하게 남아있는 힘을 모아 한 곳에 모으기가 무섭게 '펑' 소리와 함께 대장에 든 것들이 우르르 장마에 떠내려온 부유물처럼 몰려나 온다. 모처럼 장을 비우고 나니 살 거 같다. 공용냉장고를 열어 비상식량으로 준비해 둔 팥죽을 꺼냈다. 누군가 물을 끓인 것인지 냄비에 뜨거운 물이 남아있었다. 그 안에 팥죽 용기를 집어넣고 따뜻해지길 기다렸다. 이삼 분 동안 서 있는데 다리에 남아있던 힘이 빠지며 접히려고 하며 주저앉을 것 같았다. 서 있을 힘이 남아있지 않다. 팥죽을 꺼내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팥죽은 냉기가 겨우 가셨다. 따뜻하면 좋겠지만 그것도 배부른 투정이다. 차고 더운 것을 따져 무엇하리! 팥죽을 정신없이 퍼먹었다. 허기를 달래고 나니 기운이 생긴다.


온몸이 무거운 돌을 올려놓은 것처럼 천근만근이다.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아프다. 뒤로 벌렁 드러누워 시체처럼 쭉 펴고 누웠다. 잠을 잔 것인지 눈을 뜬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창문이 밝다. 낮인지 밤인지 어느 때인지 모르겠으나 배에서 뭔가 넣어달라고 난리가 났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몸이 방전이 된 것인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다. 컵라면이라도 먹어야 하는데 도저히 일어날 힘이 없다. 아파도 생리현상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방광이 빵빵해지며 타이머를 맞춘 폭탄처럼 터질 것 같다. 윗목에 나동그라진 페트병을 손을 뻗어 겨우 잡아 폭발물이 터지듯 가득 찬 방광을 시원하게 비웠다.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처럼 입안이 바짝바짝 탄다. 콜라를 마셔야 하는데 사러 나갈 힘이 없다. 생수병에 몇 모금 남은 물로 바짝 마른 입을 적셨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시체가 방안에 축 처진채 덩그러니 놓여있다.

영재의 혼은 몸을 떠나 시체가 된 육신을 바라본다. 비몽사몽 뿌연 안갯속 눈에 익은 보리밭이 보인다. 그 옆에 무덤이 있고 어머니가 김을 매고 있다. 한 소년이 삶은 감자를 먹고 있다. 두 돌도 되지 않은 계집아이가 기어 다닌다. 계집아이 옆으로 뱀이 혀를 날름거리며 기어간다. 시커먼 구름이 해를 가리고 어두컴컴하다. 사내아이가 계집아이에게 뱀에 물린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허공에 맴돌고 있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움직일 수 없다. 창문이 밝아지는 거 같더니 다시 어두워졌다. 패널 지붕에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가 요란하다. 그는 꿈결인지 잠결인지 모르는 영혼이 시체 위를 맴돌고 있다. 그의 배에 사는 허깨비가 배속을 헤집고 다니며 전쟁을 일으켰다. 빗소리인지 꼬르륵 소리인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인지 분간할 수 없다. 투박한 발걸음 소리가 쩌벅쩌벅 들린다. 그의 방문에 오더니 멈춰 섰다. 저승사자가 그를 데리러 온 것일까? 허깨비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



'똑똑똑' 누군가 현관문을 두드린다. 누굴까? 비몽사몽 아련하게 들리는 저 소리는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다.

게임을 하기 위해 여러 곳을 사채회사를 전전했다. 짧은 시간 그의 인생이 재각거리며 타이머에 귀를 기울인다. 살아있는 걸까, 아니면 이곳이 저승인가, 이쪽으로 가도 막힌 길이고 저쪽으로 가도 막혀 있다. 그는 미로의 세계에 갇혀 있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 들린다. 누굴까, 저승사자가 그를 데리러 온 모양이다.

패널지붕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더욱 세차게 때린다. 빗줄기가 지붕을 뚫을 거 같다, 누구인가 물으려고 해도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득히 먼 나라에 어둠 속에 갇혀버린 그는 몸을 움직이려해도 움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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