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자, 한문 공부를 다시 하게 되었던 때 1

by 메이쩐

20대에는 전혀 다른 일을 했지만 나의 30대 이후는 당연히 중국어 관련 일을 하며 그걸로 먹고 살 줄 알았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중국 시안(西安)에서 정말 열심히 공부도 하고 왔기 때문에 서른 후의 내 인생의 그림은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다. 더 이상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한국 들어와서 잠시 무역회사에서 일하다가 어쩌다 결혼을 생각보다 빨리 했고, 아이들을 줄줄이 넷이나 낳다 보니, 매일 공부해도 현상유지가 안 될 내 중국어 실력은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욕심에 첫째를 임신했을 때에는 결혼 전부터 준비하던 번역사 자격증 시험공부를 계속했고, 아이를 낳기 2개월 전쯤 중한번역사 2급 자격증도 취득했지만, 첫째를 출산하고 난 뒤에는 EBS 라디오 중급 중국어책 이상 들여다 보기도 버거웠다.


아이는 너무나 예쁘고 내 아이를 잘 키우 것도 중요했지만, 나를 키우는 것도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그때는 뭘 할 수 있을지, 뭘 할 건지도 잘 몰랐다. 그냥 아이를 재우고 나면 책을 폈다. 이것저것 읽기도 하고 중국어를 꾸준히 소리 내 읽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게 17개월 무렵이었다. 당시에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첫째도 입덧을 했지만, 둘째는 정말 너무 힘들 정도로 입덧을 했고, 잠도 너무 와서 집에서 첫째를 위해 엄마인 내가 뭘 해줄 수가 없었다. 정말 어떤 날은 그렇게 안 보여주려고 했던 티브이를 종일 보여주고 난 드러누워 있기도 했다. 물론 둘 다 뭘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했다. 남편은 늦게 퇴근하니 남편이 오면 겨우 추스르고 일어나 '사람'같이 움직였다. 그걸 알고 당시 남양주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둘째 언니가 말했다.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 생각보다 애들은 어린이집 오면 정말 잘 놀아. 엄마한테 받는 자극 말고 더 다양한 경험도 하고 여러 가지 배우기도 하고 친구 하고도 놀 수 있고. 그러고 넌 집에서 몇 시간이라도 편하게 좀 쉬어."

어린이집은 좀 더 있다 보내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나니 후딱 보내고 싶어졌다.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여기저기 물어보고 해서 한 군데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첫째는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고, 걱정했던 것과 달리 너무너무 잘 다녔다. 말을 빨리해서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되던 첫째는 그날 무슨 놀이를 했는지도 조곤조곤 얘기해 줬고 친구들도 좋고 선생님도 좋다고 말해줬다. 그거면 되지머!


덕분에 둘째까지 가져 힘들었던 나는 하루 중 몇 시간이라도 편하게 쉬며 정신을 좀 차렸고, 입덧도 점점 덜해지며 활기가 다시 생겼다. 그때는 용인시에 살고 있었는데, 우연히 용인시 청소년수련관이라는 곳에 다양한 수업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이것저것 살펴보았다. 그러다 눈에 딱!! 띄었던!! 당시 과목명은 생각이 안 나는데, 아무튼 한자/한문 공부를 하는 수업이었다. 유레카!!!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수업에 바로 등록하고 그때부터 주 1회 있는 그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래, 나는 한자/한문 공부하는 것도 참 좋아했지! 선생님 수업은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집에 와서도 한 번씩 들여다보고 복습도 했다. 첫째를 재우고 나와서 식탁에 앉아 또 관련 책도 찾아보며 공부했다. 둘째 태교라 생각하니 더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다, 선생님이 급수시험 쳐볼 사람~ 하며 신청을 받았다. 대한검정회 2급 시험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열심히 공부했고, 예상외로 성적이 잘 나와서(거의 만점) 성적우수상 상장도 하나 받았다. 그리고 바로 1급 도전!!! 당시에 수업 듣던 분들 중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중문학과 다니던 분들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1급 급수 자격증이 중문학과 졸업 논문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었다. 1급 급수 과정은 우리 선생님 학원에서 따로 수업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당시에 얼마를 내고 학원 등록을 하고 우리 집에서 용인 신갈에 있는 선생님 학원까지 버스 타고 다니며 공부했다. 그때가 한창 더울 때였다. 당시 나는 운전을 안 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임신한 몸으로 점점 불러오는 배를 잡고 버스를 타고 다니기가 쉽지는 않았다. 기억에 8월이 시험이었는데, 나는 9월 출산 예정이었으니 그야말로 만삭까지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시험을 쳤고 결과가 나왔다. 합격!!!! 점수는 턱걸이였으나, 그래도 합격!!! 정말 기뻤다. 당시에 같이 시험 준비했던 그분들은 다 떨어지고 나만 붙었다. 미안할 것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였지만 속으로는 정말 기뻤다.


어쨌든 자격증을 받고 한 주 정도 수업을 더 들을 수 있었고 이내 9월 중순 출산을 준비하기 위해 공부를 또다시 잠시 접어야 했다. 그래도 엄마가 이렇게 열심히 공부했으니, 우리 딸 태교에는 좀 도움이 되었으려나 하는 생각에 내심 뿌듯했다. 지금 우리 둘째를 보면, 그때 했던 공부 태교가 도움이 되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엄마는 너희들 뱃속에 있을 때 공부로 태교 했다 하면 모두 "그래서 내가 이렇게 똑똑한 거야." 하며 괜히 으스댄다.


아이를 낳을 때 마다는 젖먹이고 거의 혼자 키워야 해서 한동안 공부를 못하러 갔고, 돌 지나 젖떼고 어린이집 에 보내면 나는 또 한자 공부를 하러 갔다. 줄줄이 셋째, 넷째가 뱃속에 있을 때에도 아이들을 어린이집 보내고 나면 계속 공부하러 갔다. 꾸준히는 못 나오고, 2년에 한 번씩 배불러 나타나서 잠깐 공부하다 또 출산하러 가고, 또 출산하러 가는 나를 보고 나처럼 고향이 경상도인 우리 선생님은 "김샘~! 아는 고만 낳고 이제 공부만 좀 하이소!" 하셨다. 그러게요.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하하하....


그렇게 나는 내가 정말 좋아했던 한자 공부를 일단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