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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낭아 May 30. 2022

최종병기 '나' 사용설명서

우리 인간은 사용설명서 없이 배달된 '최첨단 무기'였다.

처음에는 자연환경에 치여 빌빌거리다가 불과 쇠를 발견하고부터 힘을 가지기 시작했다. 사용법을 터득하여 자연을 이겨먹더니 이웃 마을과 싸우기 시작했다. 인간은 서로에게 무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깨달은 이들이 '인간 사용설명서'를 내놓았다. 부처가 있었고, 공자가 있었다. 심지어 신께서 몸소 다녀가시기까지 하여 일깨우려 했다.

인간은 그들의 가르침을 배우고 써먹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그것을 거룩한 시렁에 올려두고 절만 할 뿐이었다.

인간 사용설명서는 의무 투성이었고, 인간관계 법칙은 내가 경험하기 전까지는 수박 껍데기 일 뿐이었다.


근세에 와서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물음표가 콩나물처럼 싹트기 시작하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두꺼운 책 속에 박제될 뿐이었다.


결국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기 시작해서 많은 오은영 박사님들이 사람들을 구해주기 시작했다.


이런 사용설명서가 있는데도 우리는 왜 여전히 불안정할까?

불안정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되고, 부모는 아이가 자기 설명서를 숙지하고 태어난 줄 안다.

몰라서 실수하는 아이에게 자꾸 책임 추궁한다.

"왜 그래? 왜 이랬어? 왜 안 했어?"

그러면 아이는 핑계 대고 거짓말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 부모는 나쁜 아이라며 혼낸다.

세상에는 '무면허 부모'와 '미운 남의 새끼' 투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고민했다.

'부모 면허'를  취득하려면 '아이 사용설명서'가 있어야 하는구나.

그러려면 테스형 말대로 '나 사용설명서'가 있어야 하는데,  설명서는커녕 나는 '답지 없이 배달된 문제집'이었다. 아무도 풀 수 없는 문제들로 가득한 나를 들고 50년을 낑낑댄 후에야 실마리 하나를 찾아냈다.

그랬더니 '미운 남의 새끼'도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부모의 눈에 내 모든 몸짓이  사랑스러운 줄 착각하는 한 마리 애벌레였다. 허불허의 행동이 있는 것도 모르고 행동하다가 붙들려서 질문을 받는다.

 "왜 이랬어?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

너무 어려운 질문이다.

 '이쁨 받으려고 그랬어'라고 대답하기도 애매하다.

부모는 '잘못을 인정하면 용서해 준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는다.

나는 미움받을까 두려워 핑계를 대고 거짓말을 한다.

부모는 '네가 실수해도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고 화를 낸다.

그래서 버림받은 줄 아는 애벌레는 이제 굶어 죽겠구나 싶어 꺼이꺼이 운다.

'엄마 나라의 언어'로 대화하는데도 뜻이 통하지 않는다.

부모에게는 '훈육'의 상황이지만, 애벌레에게는 생존의 문제였다.

이렇게 우리의 불안정한 부모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먼저 가르쳐주지 않고 혼냄으로써 눈치로 터득하게 했다.  그래서 애벌레는 부모의 감정 읽는 것부터 배웠는지 모른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학교라는 세상으로 나아가서 부딪쳐 깎이며 배워야 했다.

사회생활이 깊어질수록 인간관계가 힘이 들어 자꾸 내빼기만 했다.

고민하고 공부했다.

"이 많은 재능을 가지고도 왜 성공하지 못할까?"

어려서 듣지 못 한 말 한마디가 있어 내 디딤발 자리는 늘 연약지대였던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된 내가 내 안의 애벌레에게 말해 준다.

"실수하고 실패해도 너는 사랑받는 존재란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가슴이 뜨끈해 온다.  

이제 세상에 나가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쉰이 되어 있었다.

지천명의 나이에 입신을 시작해야 한다니.......

'나' 사용설명서 서문을 겨우 완성했는데 갱년기가 되었다니.......

에혀~ 부모 면허증도 너무 늦게 따서 유효기한을 넘겨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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