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쯤이었지. 고등학교 1학년 우리는 운동장에서 응원 연습을 하고 있었다. 곧 있을 시민체전에 우리 학교도 응원단으로 동원되었나 보다.
응원가로 동요 ‘꼬부랑 할머니’를 부르며 율동을 연습하는데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다. 그놈의 꼬부랑꼬부랑...... 반복을 못 견디는 나는 버럭 볼멘소리를 했다.
“그 할매 죽을라꼬 환장했나? 열두 고개를 왜 넘는데?”
뙤약볕에 지쳐가던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고, 우리는 조금 더 기운을 내 연습을 마쳤다.
그러고 잊고 있다가 근래에 꼬부랑 할머니가 궁금해졌다.
연로한 어르신이 열두 고개를 넘어야 하는 이유는 뭐며, 엿가락 얻어먹겠다는 강아지는 뭐지?
인생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문학의 반어적 표현일까?
그렇다면 열두 고개는 인생의 고비 또는 숙제일까?
과연 살아보니, 인생은 숱한 꼬부랑 고갯길을 넘는 일이고 숙제투성이였다.
지금 안방에는 밥 달라 놀아달라 자꾸 부르시는 97세의 노모가 계신다.
점점 꼬부랑 지는 엄마의 허리.
어릴 적 시골집 기둥에다 엄마가 그어주던 내 키의 눈금은 점점 올라갔건만,
나를 기둥 삼아 기댄 엄마의 키는 내 이마를 지나 턱을 지나 가슴께로 내려갔다.
인생의 숙제를 다 해 놓은 엄마는 ‘꼬부랑 아기’가 되어 내게로 와서 나의 숙제가 된 것이었다.
‘결혼과 육아’라는 숙제를 회피한 나는 엄마가 내어준 숙제를 하느라 낑낑대고 있다.
친구네 아이들은 쑥쑥 자라서 제 갈 길 가던데, 우리 집 늙으신 아기는 점점 어려지고 있으니,
나의 아홉 번째 고개는 언제 넘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