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9살이었는데... 불안하다. 두렵다. 온통 세상이 까맣다. "엄마는 오겠지? 올 거야? 꼭! 꼭! 올 거야.. "
아침에 학교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엔 없다. 얼굴에 화가 잔뜩 서린 아버지의 모습만 떠오른다. 들어오면 죽여 버릴거라고 계속 고함을 질렀다. 국민학교 3학년인 누나였던 나! 국민학교1학년이었던 큰 동생! 학교에 도착해서 마치는 시간까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어린아이는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귀에 들어왔을까? 9살 겁 많고 눈물 많았던 여자아이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수업 마치고 교문을 나오는 데 멀리서 엄마가 부른다. 달려가서 울었겠지. 기억에 지워지고 없지만, 엄마를 꼭 붙잡고 아무데도 가지말라고 꼭 붙잡았겠지! 그리고 짜장면을 먹으로 갔다. 동생은 없었는지 엄마가 동생들(남동생 2) 잘 챙겨라고 했던 말만 기억난다. 그리고 혼자 집에 온다. 집에 오는 길이 험하고 가파르고 힘겨운 길이었을 9살! 집에까지오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길모퉁이에 앉아서 혼자 울고 있었을까. 집에 들어가면 건장하고 힘센 아버지이 고함소리만 들을 것이니 그 9살은 여린 소녀는 집에 가는 게 무서웠을 것이다.
집 문을 열고 들어왔는데 엄마가 작은 방에서 울면서 누워있다. 옆에는 이모였는지 이웃 아줌마였는지 모를 사람들이 2명이 엄마를 진정시키고 있다. 엄마는 생리 중이었나보다. 피 묻은 옷을 봤을 때 아무것도 모르던 9살 소녀는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을 거로 생각했다. 그렇게 몇십 년을 끝도 모를 걱정과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살아야 했던 나의 인생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