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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질바질 Apr 17. 2024

언제이든 설렌다. 처음, 봄.

용용이와 함께 하여 아름다운 계절, 봄.

아무리 둘러봐도 꽃향기가 어디에서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두리번두리번, 두리번. ‘설마’하는 마음으로 작은 꽃송이에 코를 대어보았다. 은은하지만, 내가 찾던 향기다. 이 작은 꽃송이들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기 속을 비집고 향기를 퍼뜨리고 있었다니. 이렇게 매년 반복되어 특별하지 않을 법한 것들이 나에겐 처음 이어서 특별했고, 처음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들로 가득하여 아름다웠던 올봄.      


그러나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입덧으로 (주부인지라 알아서 챙겨야 하는) 식사 시간 전이면 괴로웠다. 먹는 것을 좋아하던 나는 임신에 대한 행복과 실망감을 동시에 갖게 되었다.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왔지만, 집밥에 대한 흥미도가 떨어진 데다가 봄 제철 식재료를 모르다 보니 봄기운이 살랑이는 집 밖과 달리 우리 집 식탁은 차갑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로 계절별 식재료 책자를 소개받았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봄에는 어떤 것들을 먹어야 할까? 몇 장 넘기니 바지락이 적혀있었다. 겨울 소울푸드 같았던 바지락 칼국수의 ‘바지락’이 지금 제철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덕분에 집에서 조개 칼국수를 해보았는데, 뱃속에서 홍수가 나 아이가 떠내려가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로 국물을 무척 많이 마셨다. 식당과 달리 국물 맛이 짜지 않고 끝까지 좋았다.     

 

조개를 사 오던 날 때마침 참두릅이 매장에 들어온다는 문자를 받아 운 좋게 샀는데, 이건 친구 덕분이었다. 두릅 구매를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웃기겠지만, 도시에서는 생각보다 (아니면 나의 쇼핑 반경이 좁아서인지) 구하기 힘들었다. 친구가 두릅을 맛있게 먹었다는 말과 봄을 붙잡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샀던 두릅은 무척 썼다. 인삼만큼이나 썼는데 몸에 좋은 만큼 독성이 있어 무조건 데쳐 먹어야 한다고 한다. 혹시나 살짝 데쳐서 아이가 독성으로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하며 조심스럽게 먹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하다는데 주부도 임신도 초보인지라 뭐든 조심스럽기만 하다.      


봄 제철 식재료를 처음으로 챙기다 보니 마음이 급했던 올봄. 그래도 이름 모를 풀들 사이에서 핀 민들레와 갖가지 풀꽃들은 나의 서툴고 급한 마음을 잠시 내려두게 해 주었고, 봄의 싱그러움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양손에 장바구니를 이고 집에 가는데 생각지 못한 꽃비를 맞게 되었다. 함박웃음을 지으며 주부라서 행복하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한 생명을 품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따뜻한 봄바람과 햇볕 아래 이상한 벅참으로 마음이 몽실몽실해지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용용이가 우리 부부와 같은 음식을 먹기엔 한참 이겠지만, 한 식탁에 둘러앉아 함께 할 생각에 기쁘다. 봄이 주는 이 기쁨을 용용이에게  조금 덜 서툴게 나눠주기 위한 예행연습을 한 것 같은 행복한 올봄. 용용이에겐 지금이 첫 번째 봄일까, 아니면 태어나고 맞는 봄이 첫 봄일까. 언제이든 설렌다. 처음, 봄. 살기 팍팍한 이 세상을 용용이가 얼마만큼 좋아할까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도 내가 줄 수 있는 행복과 사랑을 가능한 한 많이 주어야겠다 생각이 드는 봄이다.


뱃속 홍수를 걱정하게 한 우리 집 첫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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