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에 대하여 5.
10.
메모 – 생각을 잡아두는 습관. 중학교 국어 시간 우리는 교과서에 실린, 이하윤의 수필 [메모광]을 배웠다. 개인적으로 메모 습관은 쓰기를 위한 필수적인 사전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불현듯, 아무 때나, 장소와 관계없이 떠오르는 생각이나 이미지를, 그 찰나의 순간을 잡아들이는 것이 메모하는 습관이다.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샘에서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생각의 낚시꾼인 것이다. 이런 낚시는 후에 글로써 정리될 때 커다란 힘을 갖는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나의 경우엔 어떤 생각, 글에 대한 구상을 머리에 담고, 한동안 숙성시키는 과정을 일상에서 거치는데, 그때 일상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와 생각들은 쓰기의 중요한 재료와 관점이 되고, 숙성 과정은 글을 뽑아내기 전, 머릿속에 담긴 생각의 유치함, 대중성에 기반한 평가 등을 다시 한번 재고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스마트 폰은 이미지든, 생각이든, 순간을 잡아내는 최고의 낚시 도구가 된다.
11.
쓰기의 사전 과정으로서 생각의 숙성. 생각을 익힌다. - 기획 업무의 특성상, 아이디어 발상이 필요하고, 또 뽑아낸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문서 작업은 나의 업무에 필수적인 부분이다. 자주 이런 기획 업무(아이디어 발상과 문서작업)를 나의 일상에 데리고 다녔다. 의식적으로 머릿속에 담아 다녔다. 지하철을 타면서, 길을 걷는 중에도, 차를 마시면서도 아이디어를 머릿속에 두고 익힌다. 수시로 아이디어를 꺼내 어금니로 씹어보고, 냄새 맡아보고, 손톱으로 눌러도 보면서 일정 시간을 익히면 아이디어의 설익음과 미숙함이 드러나고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되고, 또 다른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것은 생각의 숙성과정이다.
그럼 두 개의 다른 범주를 동시에 머릿속에 넣고 익히는 것은 어떤가? 의식적으로 생각의 시간을 나누더라도 일정 부분에서 섞임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시간을 나누더라도, 생각의 솟아 오름은 주체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생각은 스스로 기어오르고, 폭발하고, 연쇄 작용한다. 한통에서 같이 익어가던 다른 생각들은 가끔 서로 섞여 아주 색다른 관점과 생각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보통은 생각하는 이를 매우 혼란스럽게 할 뿐이다. 과거엔 주로 회사 업무를 넣고 다녔는데, 요즘 회사에서는 회사 업무를, 퇴근 이후에는 브런치와 글에 대한 생각들을 넣어 익히고 있지만, 만만치 않음을 느낀다. 이런 생각의 섞임 때문에 소설가는 어느 시점(경제적 보장)이 되면 전업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12.
어릴 때, 밤새 쓴 연애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어보고 찢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밤은 글쓰기 적합한 시간이 아닌듯하다. 밤에는 시야가 좁아지고, 글 속으로 자꾸 빠져 들어가기 때문이다. 밤은 묘한 매력이 있어서, 감정의 과잉을 이끌고, 글의 논조를 자꾸 감상적으로 몰고 가는 힘이 있는 듯하다. 여기서 쓰기는 감정의 퍼 부음만이 아니라 관조의 필터가 개입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이 관조를 통해서 통제될 때, 쓰기는 읽을 만한 것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관조는 독자를 염두에 두는 것이고, 글의 숙성과정이고, 쓰기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관조 속에 혹시 자기 검열과 통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쓰기를 뾰족하게 만들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평범하게, 균일화 시켜버리는 것은 아닐까? 아닌듯하다. 관조는 제삼자의 시각에서 바라봄이 아니라, 나 자신이 ‘조감도’처럼 위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전체적인 구성을 보는 것이고, 연결을 보는 것이고, 과잉과 부족함을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 그래서 검열이나 통제와 같은 제삼자의 영향과 같은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즉 관조는 나의 합리성이고, 검열은 제삼자의 개입이다. 쓰기에서 감정은 매우 중요하지만, 다른 한편 합리적인 관조에 의해 통제될 때, 쓰기의 유치함은 극복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