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하며 떠나는 시간여행
몇 년 전 넷플릭스를 통해 ‘정리의 힘’의 저자인 곤도 마리에가 출현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다.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소유한 의뢰인들에게 곤도 마리에가 직접 정리 솔루션을 제공하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잘 정돈된 라이프 스타일을 꿈꾸는 사람이라 무척 흥미롭게 지켜본 기억이 있다. 특히 오랫동안 쌓여 있던 책들을 정리할 때, ‘책을 깨운다’라는 표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정확하진 않지만, 그런 뉘앙스였다.) 그 장면을 보고 나서, 내 책장에 꽂힌 책들에 미안해졌다. 나는 책에 대한 소유욕은 높지만, 그 욕심이 모든 책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어떤 책이 아직 내 수중에 있다는 것은 그 책이 높은 확률로 나에게 특별하고 의미가 깊은 책이라는 뜻이다. 그런 소중한 책들을 먼지를 뒤집어씌운 채 계속 잠들게 했다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했다. 그래서 몇 년의 한 번쯤은 가진 책들을 다 꺼내서 새로이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
책을 정리하는 방식은 그때그때 다르다. 도서명에 따라 가나다순으로 배치할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그러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더 직관적이고 간단한 방식을 택하고 있다. 먼저 책의 크기별로 정리하기. 책을 꽂았을 때 책등 윗부분이 고르게 맞아떨어지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또 하나는 주제별로 정리하기. 소설, 여행, 철학 등 주제의 결이 맞는 책끼리 배치하면 필요할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최근에는 표지 색깔로 도서들을 분류해 보았다. 주제와 장르를 막론하고 비슷한 색감이면 나란히 꽂아두는 식이다. 원하는 책을 찾을 때 조금 불편해도 더 정돈되어 보이고, 심지어 예쁘기까지 하다.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만 따로 모아서 컬렉션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좋아하는 만큼 책도 많이 구입했을 테니까. 나의 책장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존이 있다. 고등학교 때 '노르웨이 숲'을 읽으면서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 입문했다. 신선한 문체와 발상에 마음이 이끌려서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까지 섭렵하며 30년 가까이 열혈 독자로 남아 있다. (참, 최근에 신간 소식을 들었는데 하루키 존에 꽂아둘 책 하나가 더 생긴다는 사실에 신이 난다.)
책장에 꽂힌 책들의 제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책을 구매할 당시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책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생생하게 떠오르곤 한다. 20대에는 40대가 먼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내가 꿈꿨던 삶이 이미 어느 정도 완성된 나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는 자기 계발서나 성공한 멘토들의 노하우가 담긴 책들을 주로 찾아 읽었다. 가진 꿈이 컸지만 그걸 다 담아내기에 나는 너무 작았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30대로 접어들면서 조바심을 느꼈다. 망쳐버린 그림을 그럴듯하게 고치려고 애쓰는 것 같아 답답했다. 그때는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책을 읽었다. 방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 드디어 40대. 하지만 2~30대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게 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노화가 진행된 몸과 희미해진 열정 정도랄까? 40대에 이르러서는 자신을 통찰하기 위한 책들을 주로 읽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삶의 지향점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조용히 그리고 묵묵히 고민하는 과정 중에 있다.
책장의 책들을 다 꺼내서 한 번씩 손으로 어루만지고,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는 미래를 그려본다. 어떤 책들은 너무 자주 읽어서 너덜너덜해졌지만, 새 책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그 안에 깃든 책과 나의 역사가 지워지는 것 같아서다. 나도, 책도 세월의 파고를 겪으며 함께 낡아가겠지만 책장에 꽂힌 책들이 내가 바른 방향으로 잘 걸어왔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될 것이다. 책을 스승 삼아 부지런히 읽고,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스산한 내 마음을 달래 가며, 조금 더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었던 자의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책장 정리하는 데 이렇게 거창한 생각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지만은.
마녀의 서랍_열세 번째 칸
책 수선가가 의뢰받은 품목에 대한 사연과 수선 과정을 기록한 이 책에는 '누군가의 소중한 물건에 담긴 정서'를 대하는 저자의 자세가 잘 드러나 있다. '수리'라는 단어보다는 '수선'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그 마음의 출발 자체가 그렇다. 물리적인 수선을 통해 보이지 않게 빛바랜 기억들을 새롭게 소환하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의 마음도 괜스레 따뜻해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릴 때의 나는 책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 어느 정도였냐면, 남의 책장에 꽂혀 있어서 늘 부러운 눈으로 구경하기만 했던 동화 전집 중 하나가 비 오는 날에 진흙 속에서 나뒹굴고 있는 걸 보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책장을 넘겨볼 정도? 덕분에 엄마 손을 놓고 미아가 될 뻔했지만, 나는 누군가가 잃어버린 그 책을 너무 갖고 싶었다. 이미 물에 젖고 흙투성이가 된 망가진 그 책을 내가 데려가서 아끼고 사랑해 주고 싶었다.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 어린 마음을 다정하게 바라보며 완전히 새 책을 바꿔주었을 그 마음을 상상했다. 하지만 내가 책 수선가에게 맡기고 싶은 책은 따로 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무리해서 장만하신 세계창작동화 전집 중 유일하게 몇 번씩 읽었던 책이 있었는데, 바로 '여보세요, 니콜라'라는 작품이었다.
깊은 밤, 부모님이 일터로 떠난 후 두려움에 떨던 리즈가 우연히 니콜라라는 소년과 통화를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하지만, 몇 번 이사를 하면서 그 책을 잃어버렸다. 이제는 중고시장에서도 찾기 어려운 책이 되었지만, 만약 내가 여전히 그 책을 갖고 있다면 아마도 수선을 의뢰했을 것이다. 그리고 슬프고 어둡고 외로운 생각이 들 때마다 펼쳐보며 어린 날의 나처럼 따뜻한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작고 소중한 추억을 어루만져 주는 책 수선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무척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