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나를 위한 글쓰기
오랜 시간 '쓰는 사람'으로 살아왔다. 직업이 '작가'인지 묻는다면, 확실하게 답할 수가 없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맡은 업무 특성상 글을 많이 써야 했지만, 내가 쓴 글에 내 이름이 달린 적은 없어서 작가와 비슷한 일을 하는 직장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했던 것 같다. 그래도 언젠가는 직장인이라는 수식어를 빼고 작가로서 입지를 다지는 날이 오기를 꿈꿨다. 하지만, 퇴사 후 프리랜서가 된 이후에도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에 대한 궁금증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다.
잘 쓰는 글이 무엇인지 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그저 신이 나서 글을 썼다. 하지만, 내가 존경하는 작가들처럼 글 쓰는 이로 남고 싶다는 마음을 본격적으로 품고부터는 글쓰기가 마냥 즐겁지 않았다. 열정은 충만했지만, 재주는 부족했다. 수학보다는 국어를 잘해서였는지 분수는 몰라도 내 주제는 잘 알았다. 그럼에도 놓을 수 없어서 반려 꿈으로 끼고 산 지도 오래, 나는 여전히 잘 쓰고 싶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들 때마다 '동시를 쓰면 빵을 준다고 해서, 그 빵이 먹고 싶어서 시를 썼다던' 고등학교 때 은사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떠오른다. 글을 쓰는 이유가 ‘인류를 구하겠다는 소명’도 아니고, '문단에 한 획을 그어보겠다는 거창한 포부'가 아니라 그저 자신을 위한 일이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을 건드렸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써보고 싶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인 이소호의 에세이 <쓰는 생각 사는 핑계>를 읽으며, 나는 빵을 먹으려고 시를 썼다던 은사님의 얼굴이 겹쳐 떠올랐다. 이 책의 저자는 쇼핑을 지독히도 사랑해서 갖고 싶은 물건을 사려고 시를 쓴다고 토로한다. 시를 쓰게 하는 원동력은 소유에 대한 갈망이지만, 시를 대하는 작가의 마음은 꽤 묵직하고 진지하다. 좋은 시를 쓰고 책을 많이 팔아서 쇼핑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쇼핑을 향한 애정을 화력 삼아서 좋은 시에 이르고 싶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물이 수증기가 되어 구름을 이루고, 그 구름이 다시 비를 내려 바다를 채우듯이 어떤 거대한 순환 속에서 한 시인의 삶이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의 삶이 남긴 시들이 어떤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다는 희망. 그것이 작가가 쓰면서 사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가 뭐래도 나 좋을 대로 살아도 된다. 인생을 굴러가게 하는 ‘무엇’을 붙들고, 하루하루를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느낀다. 그렇게 쓰면서 살다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단비를 선물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가슴이 조금 뛰었다. 내가 오랫동안 동경해 온 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글쓰기가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완벽이라는 무게에 짓눌릴 필요 없이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라며 가볍게 시작하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나를 위한 일이 언젠가는 타인을 위한 일로 확장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글을 쓴다. 그 마음을 짧은 글로 남긴 적이 있다. 글을 쓰면서 샘이 마른 것처럼 영감이 고갈되고,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고, 길을 잃었다고 느껴질 때마다 들여다보며 스스로 마음을 다지곤 한다.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평범한 단어에서 생각지도 못한 은유의 꽃들이 피어나는 글.
당신의 낮과 밤을 내내 맴도는 낯선 행성 같은 글.
그런 글로 당신을 온통 흔들어 놓고 싶어요.
당신의 조각난 마음이 온전한 형태를 가질 수 있게요.
그런 글이어도 좋겠어요.
먹색이던 하늘에 별안간 드러난 햇살 같은 글,
투명한 수면 아래 아른거리는 말간 조약돌 같은 글.
그런 글로 당신을 잠시 멈춰 세우고 싶어요.
당신이 자기 삶을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요.
나는 숲 속에서 귀한 약초를 구하는 마음으로
숱한 단어들을 캐서 정성껏 달인 문장들을
당신의 두 손에 꼭 쥐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