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에 만들어진 근력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나를 단단히 지탱해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끝났을 때의 나는 재수생이었다. 재수가 그렇다. 1년이 지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래서 내신 성적으로 집 근처의 적당한 학교에 적당한 학과에 들어갔다. 적당히 들어간 것에 반해, 푸릇한 캠퍼스 생활에 흠뻑 젖은 채 1학년을 보냈다. 놀 만큼 놀고 난 후 2학년을 맞을 때 즈음, 당장 이 학과를 벗어날 결심을 해버린다.
당시 난 조그마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내게 떨어지는 한 달에 60만원이란 돈은 내 생활을 꾸려주었다. 그 때 느꼈다. 돈을 벌 수 있는 나이가 된 지금, 이제 나는 내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이 내용이 궁금하다면 이전 편을 참고해주세요 ㅎ..ㅎ) 그렇게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새벽에 출근해 영화관을 열고 오전 11시 즈음에 퇴근해서 학교 수업을 들으러 갔다. 5-6시 즈음엔 등록한 화실에 가서 전과 준비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기초 소묘부터 아크릴 유화 등등 나름 회화의 기초를 화실에서 야금 야금 준비해갔다. 그때의 나이가 스물 두살이었구나.
구차하게 들릴 수 있으나,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선 원하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고민하고 쓰기를 거듭하였고, 그 결과 나는 ‘나만의 창작물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감정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론을 만들었다. 그게 무엇인진 명확히 알 순 없으나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가고 싶었던 미대로 전과한 것이고, 미대에 가면 내가 원하는 사람과 가까워질 것이라 생각했다.
누가 보면 헛된 노력을 했다고 할 수 있으나, 나는 스스로가 아주 기특하다. 그때의 선택으로 시작된 시간부터가 진짜였기 때문이다.
오롯이 내가 만든 기회는 너무나도 값졌다. 방황했던 시간이 있었고, 기회를 만들기 위해 몰입했고, 기회를 책임지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난 누군가 힘들다고 그만둬 버릴 때, 그럼에도 ‘더’ 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만들어낸 기회였기에 너무나 소중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전과한지 1년 만에 학과에서 1등을 했다. 그저 내 선택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1등을 해버렸다. 당시엔 몰랐지만 돌이켜보니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법을 배운 것이다.
생각보다 당시의 노력으로 길러진 힘은 꽤 오래간다. 나는 아직도 20대 초반에 만든 근력으로 살아간다. 내가 스스로 만든 오롯한 기회 그 안에서 성공하는 것, 그것은 나를 단단히 지탱해 준다.
2024.07.24. 이 더운날 카페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먹는 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