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ème, 남은 빛을 위하여

by 윤 한

[Korngold: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35]


저녁 빛이 길게 늘어졌다. 창틀 위로 금빛 먼지가 흩어졌다.
나는 일기장을 반쯤 덮은 채 전축에 바늘을 올렸다.
첫 선율이 흘러나오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얇아졌다.
바이올린은 한 호흡을 길게 당겨내며 등장했고, 오케스트라는 그 뒤에서 고운 장막처럼 펼쳐졌다.
음악은 화려했지만 결코 자랑하지 않았다.
마치 커튼 가장자리에 매달린 마지막 빛이 조용히 흔들릴 때처럼.


코른골트의 협주곡은 늘 영화와 교향곡의 경계에 선다.
그는 할리우드의 영화 음악가였지만, 이 작품에서는 영화적 감각을 교향곡적 구조 속에 녹여낸다.
그래서 음악은 장면처럼 극적이면서도, 동시에 고전적 균형을 잃지 않는다.
바이올린은 부드럽고 긴 선율을 노래하고, 오케스트라는 조용히 무대를 지탱한다.
그것은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숨 가빴던 하루의 장면들이 차례로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화면 위로 이름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시간.
울음도 환호도 어울리지 않는 순간, 다만 이름을 확인하고 마음속 어딘가에 모셔두는 일만이 남는다.


2악장은 더 내밀하다. 바이올린은 단순한 선율로, 그러나 깊은 정서를 담아 노래한다.
오케스트라는 은은한 배경이 되어 그 선율을 감싼다.
음과 음 사이는 멀어졌다 가까워지며, 그 간격마다 감정이 스며든다.

나는 그 사이에 고이는 잔빛을 손바닥으로 받듯이 들었다.
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마음의 잔량이 따뜻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음악은 오래 숨겨둔 장면 하나를 불러내지만, 그것조차 떠날 때는 정중했다.
떠나는 빛이 늘 그렇듯, 끝을 서두르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악장이 시작하자,
전혀 다른 세계로 몰아넣는다. 바이올린은 현란한 기교를 펼치며 줄 위를 달린다.
활이 튕기고, 음들이 쏟아지며 파편처럼 흩어진다. 오케스트라는 리듬을 단단히 지탱하며 그 무대를 확장한다. 그 장면은 황혼의 잔광이 아니라 불꽃놀이 같았다.
눈부시게 흩어지고, 한순간 타올랐다가 곧 사라지는 불꽃.
그러나 사라진 뒤에 남은 그림자는 오히려 더 진실했다.


바람이 커튼 끝을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내가 붙잡으려 했던 것은 사람이 아니라 빛의 방향이었다는 것을.
너의 얼굴을 비추던 각도, 그 각도의 온도, 그 온도가 만들어내던 나의 표정.
우리는 이미 서로 다른 계절을 살고 있지만, 그 빛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남아 있었다.
다만 더 낮고, 더 부드럽게.


마지막 구간에서 바이올린은 투명해졌다.
화려했던 기교는 사라지고, 얇은 선율만 남았다.
오케스트라도 긴 숨을 내쉬듯 마무리했다. 나는 일기장의 모서리를 쓸어내렸다.
낡은 종이 냄새가 방 안의 공기와 섞였다.
나는 그 냄새를, 그 빛을, 그 선율을 함께 보관하기로 했다.
사람을 보관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흔히 그 사람이 지나간 빛을 보관한다.


음악이 멈췄다. 창밖에는 이미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아직 조금의 금빛이 남아 있었다.
아주 얇은 잔광. 나는 불을 켜지 않았다. 불을 켜면 그 빛은 사라질 테니까.
오늘의 나는, 사라지는 것을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낙엽이 가지를 떠나기 전까지 충분히 흔들리는 일이 필요하듯이.


나는 일기장을 덮으며 작은 글자를 새겼다.
남은 빛을 위하여.
이별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빛의 방식으로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