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재는 처음부터
음악을 설명하려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작곡가의 연표도, 형식 분석도,
정답처럼 제시되는 해석도
이 글의 중심에 있지 않았습니다.
《사계의 어느 날》은
음악이 들리는 순간,
마음 안에서 어떤 경험으로 발생하는가
그 질문 하나에서 출발한 기록이었습니다.
현상학적 음악학의 언어로 말하자면,
이 글은 작품을 해부하는 글이 아니라
청취 주체가 경험하는
시간성, 기억, 정서의 층위를
조용히 따라간 기록입니다.
소리는 울리는 동시에 사라지고, 우리는 언제나
이미 지나간 음을 들으며
현재에 머뭅니다.
그 미묘한 시간의 겹침 속에서
감정은 발생하고, 기억은 재구성되며,
한 사람의 삶은 음악과 함께 다시 살아납니다.
이 연재에서 다룬 수많은 음악들은
분석의 대상이기보다 경험의 매개였습니다.
그들은 설명되지 않았고, 대신 느껴졌고,
겹쳐졌고, 각자의 계절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겨울의 발아,
봄의 만개,
여름의 잔향,
가을의 낙화는
자연의 순환이기 이전에
의식이 스스로를 인식해 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사랑은 끝났고,
관계는 사라졌으며,
어떤 이름들은 더 이상 불리지 않지만
그때 발생했던 감정만큼은
음악처럼
완전히 소멸되지 않습니다.
현상학이 말하듯,
의식은 언제나
‘무언가에 대한 의식’이며
음악은 그 의식을
가장 정직하게 드러내는 예술입니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에서
음악과 삶이 만나는 방식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글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신이 끝까지
‘읽는 존재’로 머물러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특정 곡을 떠올렸을 수도 있고,
잊었다고 생각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을 수도 있으며,
아무 이유 없이
마음이 조용해졌을지도 모릅니다.
그 어떤 반응도
이 글에 있어서는 정답입니다.
왜냐하면 이 연재의 목적은
공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경험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음악은
Arvo Pärt의 Spiegel im Spiegel 입니다.
이 곡은 끝을 말하지 않고,
감정을 규정하지 않으며,
다만 의식이
자기 자신을 비추도록
가만히 놓아둡니다.
음악은 이미 멈추었지만,
의식은 여전히
그 여운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운은
언젠가 또 다른 계절의 어느 날,
당신의 삶 속에서
다시 울릴 것입니다.
끝까지 함께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당신의 사계 중
단 하나의 날이라도
조용히 밝혔기를 바랍니다.
소리는 사라졌지만,
경험은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