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진리는 거짓을 배척한다

[知言]

by trustwons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


122. 진리는 거짓을 배척한다


이 세상에 진리는 오직 하나 뿐이다. 만약에 진리가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리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일 진리가 둘 이상 있다면, 그 진리는 서로 충돌을 하게 된다.

그러면 진리는 무엇일까? 아마도 진화론을 믿는 인간들은 진리를 부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자연발생설은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우연성이나 확률론에도 진리는 계속 흔들기 때문이다. 어찌 아주 작은 생물에서 거대한 동물과 인간에 이르기까지 진화해 왔다고 생각하고, 마치 진리처럼 받아들이는 것일까? ‘우연성(偶然性)’이나 ‘확률론(確率論)’이란 용어 자체가 이미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의 ‘양자론(量子論)’에 대해서도 그 근본적인 사고틀은 ‘불확실성(不確實性)’이라는 이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즉 핵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나 양자의 위치나 운동량에 대해서 정확히 알 수가 없음으로 확률적으로만 예측이 가능하다는 ‘양자화 현상’의 이념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불가지론(不可知論)적인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쉽게 말하면 명확성이나 정확성하고는 거리가 먼 무지(無知)함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자물리학은 진화론적 이념을 바탕으로 발상된 학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또한 이념적 학문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 의한 문명사회는 수많은 이념들로 거미줄처럼 인간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문명인은 스스로 생각하거나 분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하지 못한다. 반드시 문명적 사고, 즉 이념들로 구성된 사고틀 안에서 생각하고 분별하고 판단하고 이해하려고 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문명인이라 하는 인간들은 원시적인, 또는 원시에 가까운 환경에서 사는 인간을 미개인(未開人)이라 말한다. 다시 말하면, 문명의 이념들로 사고하지 못하는, 또는 덜 이념화 된 인간을 미개인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도시인보다 지방이나 시골에 사는 인간이 도시에 오면, 문명의 지식들, 이념들에 이해를 하지 못해 당황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들이 좋은 예인 것이다. 즉 문명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문명이 낳은 수많은, 다양한 지식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그 시대를 살아가는 수단이나 도구로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인간의 지식들로 현자(종교가, 철학인등)나 지식인(전문가) 등이 진리와 같은 소리를 내며, 인간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런 지식들을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거나 진리적 가치인양 하여 인류역사에 획을 그린다. 그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gito, ergo sum](코기토 에르고 숨)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가 명제로 철학의 시작하는데, 큰 의미를 주어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마치 진리인양 철학을 하는 학생들은 떠들었다. 역시 나도 그랬으니 말이다.

이처럼 이성을 이용하여 인간들을 지배해 왔던 현자들, 소크라테스, 공자, 맹자, 등등이 세월이 엄청 흘러갔는데도 여전히 지식인들에게는 들먹이며, 도깨비 방망이처럼 어리석은 자들에게 휘둘리며, 마치 진주를 발견한 듯이 현혹시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인간이 바로 돌 선생인 것이다. 그의 강의를 많은 인파를 불러오고, 그래서 유명해지고, 그리고 현자(賢者)처럼 행세를 하나, 그 강의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스쳐가는 찰나적인 언어현상에 황홀해 할 뿐이다. 그런 지식들은 듣는 것으로 만족할 뿐, 깨달음이나 얻는 것이 없다.

그럼, 진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겠는가? 시대적으로 변화하거나 변형되거나 하는 것을 진리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 지표가 되어주거나 생존의 힘이 되어주는 지식들은 온고지신(溫故知新), 즉 옛 것을 익혀 새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로 인간문명에 큰 획을 그려내게 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철학책을 읽어옴으로써, 인간의 역사와 문명에 대해 이해를 했으며, 인간적인 의미도 깨닫게 되었었다. 하지만 성경에 있는 솔로몬의 지식인, 전도서와 잠언을 깨닫게 되면서, 다양한 철학적 지식들이 다 헛됨을 알게 되었다.

특히 솔로몬 시대에는 세계가 매우 평화로웠다고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 방방곳곳에 왕들이 귀한 보물을 싸들고 와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했다는 것이었다. 그 시대가 전쟁 중이였다면, 그런 여유로운 행동을 하였겠는가? 그러므로 그들, 각 나라의 왕들이, 하물며 인도에서도, 찾아와 솔로몬의 지혜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 왕들이 무슨 지혜를 듣고자 했을까? 아마도 왕들은 나라를,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를 구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불경에 나오는 지혜가 솔로몬의 전도서에 지혜와 유사한 것이 많음을 발견하고 놀란 적이 있었다.

이처럼 지혜로운 지식인, 현자들은 무엇을 말했겠는가?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유익한 지식들이 아니겠는가? 특히 석가는 평민들의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왕궁을 떠나 평민들 속에서 살면서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했었다. 그래서 그는 그 해답을 깨닫고, 설파하기 시작을 했다. 그래서 인도의 많은 무리들은 석가의 가르침을 듣고자 했다는 것이다. 즉 석가의 깨달음을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석가를 ‘부처’, 즉 붓다(Buddha)-깨달은 자, 눈을 뜬 자-의 호칭을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럼 석가의 깨달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에게 오는 고통은 외부에 어떤, 누구에 의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형식적으로 보면, 타인에 의해, 또는 사회제도에 의해 힘들고 고통스러움이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직 원인은 자신 안에 있으며, 그 해법도 역시 자신 안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석가의 가르침을 이해하기에는 쉽지 않는 이유는, 가인이 동생 아벨에 대해 증오했던 것처럼, 보통 사람들은 환경적 원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동물이나 벌레 등은 인간처럼 이성을 갖고 있지 않지만, 자연의 섭리에 순종함으로써, 그런 고민이나 번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겠는가?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또는 새와 동물과 벌레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작은 어항 속에서 노니는 구피를 바라볼 때에 참으로 부러울 때가 있다. 그들은 번민하거나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인간은 그렇게 말하지, 그것들은 이성이 없으니 뭘 알겠는가? 그렇다고 인간은 자신의 이성을 제대로 활용하는가?

자연 속에 생물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놀라움을 발견한다. 그들이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아님을 말이다. 이름 모를 들풀에서 아주 작은 꽃을 피우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말이다. 나비가 꽃을 찾아다니는 모습을 잘 살펴보면, 그냥 아무렇게나 이 꽃 저 꽃을 찾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특히 어항 속에 구피는 사람이 다가오면, 사람 쪽으로 몰려온다. 그처럼 모든 생물들은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미국에서 숲을 지인과 함께 거닐 때에, 나무들의 뿌리가 옆으로 멀리 뻗어있는 것을 보고, 생존하기 위해서 뿌리는 물을 찾아 뻗어간다는 것을, 그리고 햇빛을 찾아 나뭇잎들이 방향을 찾는다는 것을 말이다.

이러한 모든 이야기에서 어떤 깨달음이 오지 않는지, 이 세상에, 자연에, 땅과 바다 그리고 하늘, 더 멀리 우주에 별들이 그냥 그대로, 저절로 생겨나고, 자연스럽게 있다고 생각하는가?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사과 하나가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무지한 인간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하게 된 데에는 오랜 생각을 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이렇게 고백을 했다. 바다가 모래사장에서 조개 하나를 발견한 것뿐이라고 말이다. 즉 만유인력 보다 더 많은 놀라운 이치(理致)와 원리(原理)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와서, 진리는 무엇이겠는가? 이 세상이 있기 전에, 이 세상이 있게 한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진리인 것이다. 또는 이 세상을 있도록 한 이유를 알게 하는 것이 진리인 것이다. 또는 진화론자들이 말하는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진리인 것이다. 또는 그 창조자가 천지를 창조하신 목적을 알게 해주는 것이 진리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리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의 뜻을 알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 진리를 알게 해주는 책이 바로 성경(Bible)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요한 사도는 이렇게 기록했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요한 3:21)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8: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한14:6)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요한16:13)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야고보3:14)

이처럼 천지를 창조하신 그분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인간을 창조, 낳으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만들 때에 혼자 하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하늘 아버지가 계시는 것이다. 그것을 알게 하는 것이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즉 진리라 함은 창조자 하늘의 아버지가 인간을 낳은 이유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오직 하나인 것이다. 그 진리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인간을 깨우치려고 세상에 온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인생의 길이요. 인간에 진리이며, 인간의 생명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참되다. 그러므로 거짓을 배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떠한 지식도 하나님에서 온 것이 아니면, 다 거짓된 것이라는 말이다.

성경은 삼국지 같은 유명한 소설,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성경은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성령이 진리를 알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방언이나 병 고침이나 예언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깨닫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제자들에게나 무리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진리를 알라!” 말했던 것이다. 즉 쉽게 말하면, 예수를 알라는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알라는 것이다. 그 답으로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다.”

이것이 진리의 목적이며, 진리인 것이다. 이 진리를 위해 성경에 기록된 것이다.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무엇이 참이며, 무엇이 거짓인지를 분별하는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이 믿음은 매우 위대하여서, 겨자씨만한 믿음일지라도 산을 옮기는 능력이 있다고 예수는 말했다.

그러나 진리를 모르면, 무엇인 참인지 거짓인지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눈먼 자들은 거짓된 어둠속에서 허덕일 뿐이라는 것이다.

제발! 진리를 알게 되기를 바란다. 진리를 알려면 먼저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 즉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한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하나님을 볼 것이다.”(마태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되다.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여기서 복되다함은 인간이 스스로 그런 마음이 되도록 힘쓰게 되면 하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되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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