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Genesis(창세기)-4장17절~24절

[성경이야기]

by trustwons


31.Genesis(창세기)-14장17절~24절

[Melchizedek blesses Abram]


17. As Abram returned from his victory over Kedorlaomer and his allies, the king of Sodom came out to meet him in the valley of Shaveh (that is, the King's Valley), 18. Then Melchizedek, the king of Salem and a priest of God Most High, brought him bread and wine. 19. Melchizedek blessed Abram with this blessing:

"Blessed be Abram by God Most High, Creator of heaven and earth. 20. And blessed be God Most High, who has helped you conquer your enemies."

Then Abram gave Melchizedek a tenth of all the goods he had recovered.

17. 아브람이 케돌라오머와 그의 동맹국들을 상대로 승리한 후 돌아왔을 때, 소돔의 왕이 사베계곡(사웨골짜기)에서 그를 만나러 나왔다(즉, 왕의 계곡). 18. 그때 살렘의 왕이자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제사장인, 멜키세덱(멜기세덱)이, 그에게 빵과 와인을 가져다주었다. 19. 멜키세덱은 이 축복으로 아브람을 축복했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소서. 20. 그리고 적을 정복하는데 도움을 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소서.”

그러자 아브람은 멜키세덱에게 회수한 모든 물품의 10분의 1을 주었다.

21. The king of Sodom told him, “Give back my people who were captured. But you may keep for yourself all the goods you have recovered." 22. Abram replied, "I have solemnly promised the Lord, God Most High, Creator of heaven and earth, 23. that I will not take so much as a single thread or sandal thong from you. Otherwise you might say, 'I am the one who made Abram rich.' 24. All I'll accept is what these young men of mine, have already eaten. But give a share of the goods to my allies- Aner, Eshcol, and Mamre."

21. 소돔의 왕이 그에게 말했다, “포획된 내 백성들을 돌려주시오. 하지만 당신이 되찾은 모든 물품은 당신 자신을 위해 취하시오.” 22. 아브람이 대답을 했다,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 가장 높으신 하나님, 주님께 엄숙히 약속했소, 23. 나는 당신에게서 단 한 가닥의 실이나 모래알 같은 것도 취하지 않을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어준 사람이다.’라고 당신이 말할 수도 있소. 24. 내가 받을 수 있는 것은 이 젊은 남자들이 이미 먹은 것뿐이오. 하지만 저의 동맹국인 아네르, 에스콜, 그리고 마므레에게 분깃의 일부를 나눠주시오.”

---------------- The Bible Story --------------


[知考知思]

소돔과 고모라에서 연합 전쟁이 일어나, 아브람의 조카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아브람은 자신의 식솔들을 300명을 이끌고 야간을 기다렸다가 기습하여 적들을 물리치고는 그의 조카와 식구들과 빼앗긴 모든 것을 되찾아 왔다.

여기서 놀라움을 깨닫게 된다. 아브람의 믿음을 말이다.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아주 소수의 식솔들만으로, 무기도 아닌 쟁기만을 들고 적의 연합군을 쳐부수려는, 그의 용기와 결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는 적군에 쳐들어가기 전에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았다. 곧바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을 하나님이 아신다는 믿음에서 온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또한 그의 지략이 뛰어남에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겠다. 소수의 인력으로 연합군의 다수의 병력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야간 전략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아브람의 행동과 지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아브람 같은 지혜와 행동을 기대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평상시에나 항상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즉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사는 삶이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반적인 종교의식처럼,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살다가 가끔 찾아가는 종교적 행세나, 신앙에서는 어렵지 않겠는가?

어떻게 해야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살아갈 수가 있을까? 이에 도움을 주는 성경의 인물들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즉 에녹, 노아, 아브라함, 모세, 다윗 등등에서 말이다. 그리고 또한 예수님의 가르치신 말씀을 깨달았을 때에, 행동이, 생활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모든 말씀을 입시공부 하듯이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마태 4:4절)에서 무엇을 깨닫는가? 또한 성경 전체를 통독하여서라도 말씀을 얻겠다는 것도 아니다. 주님은 그렇게 엄중한, 무거운, 숙제를 내주시지 않으신다. 성경의 말씀은 너무 어려워서 반드시 신학전공을 하신 분의 해석을 의지해야 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는 것도 아니다. 만일 그러하다면,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이 지식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진리의 보편성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떤 신학 하신 분에 의하면, 계시에도 특별계시가 있고, 은총도 특별은총이 있다고 진화론적인 사고방식, 즉 분류하고 나누려는 의식에 있는 것은 아닌지? 절대로 하나님은 인간을 나누고, 분류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또한 예수님의 행적들을 보면, 천한 자에게나 병든 자에게나 낮은 자들에게 항상 다가가셨다는 것을 말이다. 성경의 말씀은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며, 누구나 깨닫게 하시는 말씀인 것이다. 특정한 자의 도움이 있어야 만이 성경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도 역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하셨다. 단, 비유로 하신 말씀은 택한 자만이 깨닫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늘 지인들에게 하는 말은, 성경책을 일반 책처럼 자주, 가까이하며 읽으라고 말하였다. 왜 성경이 어렵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은 세뇌된 의식, 함부로 해석하지 말라는, 함부로 풀이하지 말라는 등등에 의해,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 즉 이성을 묶어두는 이유 때문에, 성경에 대한 불편한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면, 졸리고, 재미없고, 지루하고, 등등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중세시대에는 성경이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일반인들이 읽을 수가 없었고, 그러니 신부들이나 종교인들만이 독식하듯이 성경의 말씀을 누리고 있었기에, 성경말씀대신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듯이, 묵주에 의존해 반복하듯이 했으며, 그 외에는 성화를 통해서 예수의 이야기를 이해하도록 해 왔던 시대가 암흑의 중세시대가 아니었던가? 그 여파가 아직도 잠식되어 있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아프게 느껴진다.

아무리 지식이 많고, 라틴어를 잘하여도, 신학적 지식이 풍부하여도,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를 깨닫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이다.」(요한 14:2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있을 때에,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가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있을 때에, 성령이 우리를 도우시며, 깨닫게 하시며, 기억나게 하신다는 것이 아닌가?

또한 예수께서 말세에 이를 때, 진리가 닫히고, 말씀이 닫히고, 성경을 빼앗고, 교회가 닫히고, 할 때가 올 것을 아시기에,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주셨던 것이다.

주의 주기도문을 얼마나 이해할까? 단지 주술 하듯이 외우기만 하는가? 아마도 주기도문보다 사도신경을 더 많이 낭독하지 않는가? 사도신경은 그 당시(그렇게만 말하겠다)에 유대인을 학대하기 위한, 또는 성경을 읽을 수 없는 신도를 위해 종교인들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주기도문은 예수님이 주신 말씀인 것이다. 이 주기도문에는 성경의 모든 것이 담겨 있으며, 예수님이 가르치신 모든 것에 대한 요약된 말씀이신 것이다. 단순한 기도문, 기도할 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닌 것이다. 주기도문의 말씀만 제대로 깨닫게 되어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꼭 주님이 주신 기도문에 대하여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렇게 승리를 안고 돌아온 아브람을 소돔의 왕이 사웨 골짜기에서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그때에 갑자기 살렘 왕인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주를 가져와 아브람에게 주었다. 놀랍지 않은가? 마치 예수님이 다락방에서 식사 전에 빵과 포도주로 제자들을 축복하는 장면이 연상케 된다. 그리고 그는 아브람에게 축복하였다. 이렇게 말하시면서 말이다.


“Blessed be Abram by God Most High, Creator of heaven and earth."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분”의 이름으로 아브람에게 축복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브람에게,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라.”라고 까지 말했다. 그러니깐 아브람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람이 믿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소돔 왕이 인심 쓰듯이, 자기의 백성들은 돌려주고, 획득한 물건들은 아브람에게 가지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자 아브람의 대답이 놀랍지 않은가?

“네 말이 내가 부유케 된 것이 너의 도움이 있었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멜기세덱이 하신 말씀대로, 아브람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거절하지 않는가?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의 축복 이외에 어떤 인간에 의해 축복의 빌미를 만들지 않으려는 아브람의 철저한 자기 관리, 신앙심에 놀랍지 않은가? 오늘날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사탄을 바로 그런 것을 놓치지 않고 이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오늘의 말씀에서 깨달음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세상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일상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살아있는 믿음,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주님을 향한 믿음은 오직 그 믿음(the Faith)이지, 이런 믿음, 저런 믿음 등의 한 믿음(a faith)이 되어서는 안 된다. 즉 진리에 의한 믿음이어야지, 종교적인 믿음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은 믿음을 인격적으로 인식하여서, 좋은 믿음, 높은 믿음, 훌륭한 믿음 등등으로써 하나의 품위를 보거나 인간을 높이는 경우를 보게 된다. 즉 믿음을 등급으로나 품질로나 소유하는 재물처럼 인식하는 분들이 많다. 마치 조선시대의 계급사회처럼 말이다. 믿음의 신분, 계급, 재산 등으로 말이다. 그러니 믿음에 대해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차별하고, 경쟁하는 그런 모습을 엿볼 수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인물들로 올바른 믿음의 길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믿음이 좋다’는 말은 매우 위험한 말이다. 즉 시험이 들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도문 중에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의 뜻을 헤아리기 바란다.

정리하면서,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람에게 갑자기 나타난 멜기세덱, 하나님의 제사장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브람에게 함께 하신 하나님을 깨우치심에 있으며, 또한 그런 아브람에게 축복하게 하심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 이 같은 축복이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축복되시기를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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