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라고 요한복음 첫 장에서부터 말씀해주고 있다. 신약의 사복음 중에 요한복음은 매우 객관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로 시작되고, 마가복음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누가복음에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를……. 시작되지만, 요한복음은 하나님의 입장에서 말씀의 존재를 강조하면서 시작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창세기와 요한복음은 같은 맥락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존재를 구현 설명하지 않고, 만물이 말씀에 의해 지은 바 된 것임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도 하시고 하나님이시라 하시며, 말씀 속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 하셨다. 상당히 심오한 말씀인 것이다. <생략>
오늘의 말씀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에 대한 것이 아니다. 만물이 하나님에 의해 존재케 된 것과 인간세상은 어둠에 있다는 것과 이 인간들을 하나님은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시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자녀로 말이다. 그래서 세상에 오신 하나님, 즉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생명으로 세상에 빛의 존재로 오셔서 은혜와 진리를 주시려 한다는 것이다.
<진리를 알라. 너희가 자유케 된다/최희원저/정문사>
동방박사가 하늘에 별을 보고 찾아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다는 것은 인간세계에 증거가 되게 하심에 있는 것이다. 한편 성경에서는 처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의 탄생을 기록함에는 유대사회에 핑계치 못하게 하려 함인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신 하나님이 친히 피조세계에 생명으로 인간이 되어 왔다는 것이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시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이사야 57:15)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대로,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 어찌 피조세계에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시기에 자신을 낮추시고 천한 인간의 존재로 오셨을까? 그것도 생명으로, 영생으로 인도하시려고,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셨을까? 그것도 인간의 고통을 친히 감당하셨음을, 완전히 피조물로써 희생을 하셨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셨음을 깨닫도록 진리를 알게 하셨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진리를 깨닫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