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言]
진리를 알자
『The true light that gives light to everyone was coming into the world.』(John1: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들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 돼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不義)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야고보 3:5,6)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야고보 3:9)
---------- Bible ---------
‘내 형제들아’로 말을 여는 야고보는 유대민족에게 말씀을 전하려는 의지가 깊다는 것을 의식할 수 있다. 이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인을 부르는 것 같다. 선민의식이 강한 유대인의 입장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개혁정신에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자부심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한편 이들 중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도 상당히 있었다고 보겠다.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도 상당히 성서적인 지식을 가졌으며, 그들 나름대로 말씀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구도자적인 신앙인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유대인들도 역시 성서적인 지식도 갖추었을 것이며, 말씀에 충실한 삶을 추구하는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자들일 것이다. 그런 그들이 예수의 진리를 접하고 더욱 믿음에 충실할 뿐 아니라 복음에 대한 기쁨도 상당히 느낀 신앙인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방인 못지않게 복음에 대한 열정도 매우 컸을 것이다. 예수를 따라다니던 무리(대부분이 가난한 유대인들)도 복음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오늘의 말씀에서는 야고보가 그들의 동족인 유대인이며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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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서는 야고보가 누구인가 보다는 그의 말에 초점을 두고 이해하려고 하는 방향으로 묵상을 해 보고자 한다. 오늘의 말씀을 상당히 깊은 뜻이 담겨 있으며, 오늘의 기독교인들에게도 깊은 의미를 줄 것이라고 생각된다.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라는 야고보의 말에는 추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신성시되기 쉽다는 것을 엿볼 수 있고, 그들도 역시 실수를 많이 하는 온전하지 못한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이 들은 바를 서로 전하고 하다 보니, 전하는 일에서 얼마나 자신을 드러내려는 욕심이 있었는가를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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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을 성자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읽다 보면, 그렇지 못한 부분들을 보게 된다. 성서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제자들의 성스러운 면이 아니다. 그들로 예수님을 증거 하는 일인 것이다.
초대교회의 제자들은 성자로 불러지지 않았다. 그런데 중세의 기독교가 국교가 되고 세력이 확장되어 로마 기독교, 구교(가톨릭)로 성장하면서 성서의 제자들을 성자로 추앙하게 되었다고 생각된다.
왜? 성자로 추앙하였을까? 세력을 잡은 종교인들이 자신의 세력을 튼튼히 유지하기 위해서는 성서의 인물들을 성자로 추앙시켜야 만이 자신들도 그 반열에 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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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가 더욱 염려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한 입에서 찬양과 저주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찬양하는 것은 쉽게 볼 수 있다. 너무나 교과서적인 방식(형식과 제도)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저주는 무엇일까?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은밀하게 저주를 행한다는 것이다. 그 예를 들면, 십일조를 강조하면서 교인들에게 겁과 공갈을 퍼붓는 것이다. 또 교회 성장을 위해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고 섬기라고 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며 철저히 출석체크를 하는 행위인 것이다. 본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 반드시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러니 여행을 가더라도 주일을 지켜라 하면서 본교회로 나오라는 것이다.......... 야고보는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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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야고보는 그러한 것을 쫓는 선생이 되지 말라 하셨다. 그리고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를 찾으라 했다. 위로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3장 17,18절)고 했다. 혀로 믿는 것이 아니요. 마음과 성품과 영적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믿음은 스스로 자숙하고 성결하도록 마음을 다스리며, 이웃과 화평을 나누며 관용을 베풀고 양순한 성품을 지니도록 노력하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서 선한 열매를 맺도록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야고보서 말씀큐티/ 한솜 미디어>
야고보서를 읽다 보면 야고보 선생은 매우 비판적인 분이시라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 마태 선생도,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태 7:1) 고 하셨고, 잠언에서도, “훈계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잠언 15:32) 하였다. 그러나 진실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달던 쓰던, 지나가는 사람의 말이든 아이의 말이든, 그 말을 흘려듣지 아니한다. 즉 진실한 마음을 가진 자는 자신을 돌아볼 줄을 알고 깨우침을 받을 줄을 안다.
야고보 선생이 하신 말, “혀도 작은 지체로 돼 큰 것을 자랑한다.”의 말씀의 뜻은 심오하다. 심오하다는 것은 지혜로운 자는 그 뜻을 깨닫지만, 어리석은 자는 분노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엔 작은 혀를 대신하는 웹(Web)이 그 위력을 나타내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이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의 뇌를 자극하여 작은 불씨가 산을 태우듯이 불의의 세계를 흔들고 있다.
그러나,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믿는, 진리를 믿는, 예수 복음을 믿는 세계에서도 불의의 세계를 이룬다면 어찌 되겠는가? 그 목적은 무엇이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를 불구덩이로 떨어지게, 지옥으로 떨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자주 말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깨어 있어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태 25:13)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마가 13:33)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누가 21:36) 그리고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로새서 4:2)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의 말씀에서도 같은 말씀을 하였다. 여기서 깨어 있으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라는 것이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깨달으라는 것이다. 온전한 믿음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라고 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를 말하였다. 인간이 스스로 성경을 읽으며 지혜를 얻으려고 할지라도 얻지 못함은 성령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이 스스로 성경의 지혜를 풀어 알아낸다면, 성령은 무시를 당하거나 무의미하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고 일반 신들 중에 하나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리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