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형 애착 부모

고통받는 자녀들

by 행복한 북극여우

불안형 애착 부모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식이 잘되길 바라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잘되길 바란다. 그들은 본인이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밖의 도전을 하려 하면 자식에게 말한다.

“넌 그거 왜 하려고 그러니? 해봤자 다 쓸모없다. 잘하지도 못하면서 왜 꼭 그거를 하려고 하는 거야? “

혹시라도 부모에게서 독립하려는 자식에게는 이렇게 말한다.

“넌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그렇게 혼자서 잘 먹고 잘 사니까 좋지? 넌 어쩔 때 보면 우리랑 떨어지면 엄청 좋아하는 거 같더라. 행복해? 평생 그렇게 안 보고 살면 되겠다. 그렇지? “

이런 말들을 하는 부모들은 보통 본인이 분리불안이 있다. 그들은 애인을 만나지 않는 자식에게 결혼해라, 주말에 데이트 좀 나가라, 잔소리를 하다가도 막상 자식이 데이트를 하고 애인을 만나러 나가면 이제는 애인을 만난다고 통제하고 구박을 하기 시작한다. 일찍 일찍 들어와야지, 그럴 거면 아예 나가 살아라, 걔가 뭐가 좋아서 만나니, 별로다 만나지 말아라, 엄마아빠는 집에 있는데 혼자 놀러 다니니까 좋냐 등등..

모두 다 불안형 애착 부모와 자식 사이에 빈번하게 일어나는 대화들이다. 이중적인 메시지가 많아 자식들은 혼란이 오고 스스로 정말 내가 문제가 있는 건지 의심하고 자책하기도 한다.


이런 부모들은 그들의 손 아래에 자식들이 머물러있길 바란다. 자식의 나이가 몇이든 그들 입장에서는 내 자식은 언제나 내가 케어해줘야 하는 존재이고, 그러므로 내 자식이 조금 부족해야 한다는 무의식 속 생각이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라고 의문이 들 수 있다. 부모라면 당연히 내 자식이 발전하고 성공하는 데에 기뻐하지 않나? 하지만 이들은 자식과 분리되고 싶어 하지 않으며, 본인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주로 인식하지 못한다.


예를 들자면, 자식이 발전을 위해 해외로 가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거나,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간다고 했을 때, 부모는 거리가 너무 머네, 그런데로 갈 거면 니 돈으로 다 해라 우린 지원 못해준다며 반대한다. 사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자식이 그렇게 성장하고 독립하게 되어버리면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부모의 분리불안이 나타나는 모습 중 하나다.


보통 부모의 분리불안은 자식이 유아기 때부터 볼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자식에게도 불안형 애착이 옮겨간다고 한다. 유아기 때 엄마와 떨어지면 계속 울고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의 분리불안은 아이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아이랑 떨어져 있는 것을 불안해하는 엄마가 과도하게 붙어서 케어를 해주다가 생긴다.

즉, 부모가 느끼는 불안이 키우는 과정에서 아이에게 전이되어 아이도 결국 불안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때 형성된 애착유형은 성인이 되어서도 나타난다.

부모가 하는 말과 행동들은 자식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이고 인격체로서 존중하지 않는 태도로 느껴져 자존감을 깎아먹고 발전가능성을 저해시킨다.


하지만 그들은 너무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포장”한다.


이걸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절대 사랑이 아니다. 사랑의 가면을 쓴 집착일 뿐이다. 상대를 괴롭게 하는 건 사랑의 영역이 아니다. 그건 그냥 의도가 어찌 되었건 내가 가장 가깝고 편한 사람을 상처 주는 폭력일 뿐이다. 정말 사랑한다면,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인정해 주고, 자식이 나와 안정적이게 분리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맞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안형 애착유형인 부모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안타깝게도 부모가 인사이트가 잘 되어서 자식의 독립을 인정하고 분리를 잘 받아들이는 경우는 드물다. 방법은 자식이 스스로 분리를 먼저 하는 수밖에 없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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