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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Mar 13. 2022

알라의 제국

평생 1등만 했다는 그 아줌마의 말을 들을 걸 .... 같은 첫사랑의 추억을 가진 인생 선배의 조언을 좀 따를 걸 ....  뉴욕을 떠나 온 나는 인도 아줌마의 예언처럼 그리움 반, 후회반으로 살았다. 하루살이처럼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시한부 인생과 뼛골을 찌르는 듯한 추위에 진절머리가 나서 한국으로 돌아 왔지만 한국이라고 내가 비집고 들어갈 곳은 별로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은 직접 보지는 못하셨어도 타향살이의 설움을 아시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다. 그저 ‘고생했다’며 나를 반기셨다. 철 없이 꿈과 성공, 도전을 가르치듯 연설하던 나에게 어떤 비난도 힐난도 하지 않으셨다.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고 미안한데 아무 내색도 안하시는 두분이 너무 고맙고 더 미안했다. 


번듯한 졸업장이 없어서 아무리 입사 지원을 내도 연락 오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힘든 집안 사정 때문에 신세 한탄을 하며 마냥 앉아서 놀 수도 없었다. 영어 과외나 가이드 알바등 그나마 배운 영어를 써 먹을 수 있는 곳에서 일하며 기회를 노렸지만 한국에서 나를 반기는 사람은 우리 부모님 외엔 아무도 없었다. 영어 과외의 수입이 쏠쏠하긴 했지만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안정된 직장도 아니었다. 녹녹치 않은 현실에 기가 죽었지만 편입을 할 상황도 아니라 마음만 동동 굴렸다.  


힘들어도 무사히 졸업을 마친 친구들은 간혹 미국 현지나 가까운 싱가포르로 취업이 되기도 했다. 몇몇 남은 친구들이 해외 구직 사이트를 알려 주었지만 자격 미달과 전문직 미경험자인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다. 그렇게 세월만 보내다 한국에도 ‘아랍 열풍’이 불었다. 매체마다 두바이의 건설붐을 소개하며 사막의 기적을 이야기 했다. 갑작스런 문화 개방과 개발 열풍으로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한국과 달리 오히려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문은 친구들을 통해 종종 들었었다. 친구들은 억대 연봉과 고급 아파트까지 주는 파격적인 조건이 두바이에는 기본 구인광고 조건이라고도 했다. 물론 그런 아름다운 조건은 금융이나 정유쪽 전문 분야만 해당 된다는 것을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공상과학 만화 같은 환상적인 팜 아일랜드의 조감도와 버즈 알 아랍 호텔의 호화로운 황금 장식을 보니 나의 망상이 재발하기 시작했다. 


‘그래 내 인생이 여태까지 별볼일 없는 건 바로 저 모래 위에 지어진 저 황금도시에 오라는 신의 뜻이야.’ 


‘알라가 누군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억대 연봉을 준다면야 누군들 못 믿겠어?’ 


뉴욕의 환상에선 빠져 나왔지만 귀가 종잇장처럼 얇은 나는 이젠 사막의 환상에 빠졌다. 현실 부적응자의 또 다른 도피처를 찾은 것이다. 나이를 먹으며  제법 뻔뻔해진 나는 머나먼 친구나 지인에게도 전화를 걸며 아랍 진출의 비결을 물었다. 나와는 달리 아이비리그나 MBA 졸업장을 가진 그들에겐 너무나 쉬운 기회였지만 잉여 인간인 나에게는 신기루 같은 기회였다. 그렇게 실망의 나날을 보내던 중 먼 지인을 통해 카타르의 한 무역회사에서 제안을 받았다. 한국 건설 자재를 주로 수입하기에 한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직원을 구한다고 했다. 혹하기는 했지만 무역이나 건설에 대한 지식이 하나도 없어서 망설여졌다. 게다가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아부다비였지 카타르는 들어 본 적도 없는 생뚱맞은 곳이었다. 사장님은 카타르는 아주 작은 도시국가이지만 두바이랑 경쟁하는 미래가 밝은 개혁적인 국가라고 했다. 또한 경험이 없어 보수는 많지 않지만 3개월 수습 기간을 거친 후 다시 논의 하자는 부담 없는 제안을 했다. 경험 삼아 시도해 볼만한 기회였다. 한번도 가지 못한 중동 여행도 할 겸 나는 제안을 받아 들였다. ‘아라비안 나이트의 나라’, ‘알라딘과 마술램프의 나라’, ‘어린 왕자의 사막’이 있는 나라는 일생에 한 번 쯤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나니’ 


‘이젠 하다하다 알라신의 은혜를 입을 차례인가보다.’ 


‘자격은 없지만 열심히 일해서 실력으로 인정 받으면 되지. 그래도 내가 일은 열성으로 하잖아.’  


‘낯선 중동 문화에 적응하면서 아부다비는 바로 옆 도시니까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다시 내 특유의 착각 회로가 쉼 없이 돌아갔다. 나는 신나서 이민 가방을 다시 꺼내 들었다. 평균 기온 40,50도가 넘는 열사의 땅이니 여름옷만 챙겨서 가방은 그리 무겁지 않았다. 부모님께 중동 진출의 결심을 알리자 환영이 아닌 한숨을 쉬셨다. 


”그냥 시집이나 가. 이것아.“ 


”엄마, 이제 시대가 바뀌었어. 여자가 집에서 눈치 안보며 살 수 있는 전업 주부의 시대는 딱 엄마때까지야. 여자도 번듯한 커리어 하나 없으면 폐기물 취급 당하고 평생 남편 구박 받고 살아야 해. 난 그렇게는 못 살아. 하루를 살아도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 꺼라고.“ 

엄마는 더 긴 한 숨을 내뱉었다. 


”왜 남들처럼 평범하게 못 사니? 외국물 좀 먹었다고 지만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하고 드세기만 하고......“

”응 그래 그거야 엄마. 그래서 남자들도 날 싫어해. 서로 불행한 삶이면 따로 살아야지. 난 혼자서도 잘 살수 있어. 도착해서 전화할게.“ 

엄마가 늘어 놓는 백만가지의 우려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인생은 원래 개척하면서 사는 거니까, 나는 잘 할 수 있으니까.‘      

나는 십여년전에 그랬던 것처럼 호기심과 기대에 들떠 인천공항 출국장으로 자신있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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