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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연 Aug 24. 2022

프롤로그

그녀는 행복했을까?

소녀가 자라서 여자가 되면 누구는 어머니가 된다. 연약한 한 마디의 단어가 세월을 타면 갑자기 강인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 간단한 지칭어 한 마디는 희생과 헌신의 대명사이기도 하면서 누구에게나 아릿한 추억 한두 개를 불러일으키는 가장 감성적 명사일 것이다.  


국경과 시대, 언어를 막론하고 어머니의 존재와 단어는 누구에게나 향수를 일으키는 만유 인류의 제1 법칙이 아닐까 싶다. 집안과 국적, 문화가 아무리 달라도 “우리 엄마는 말이야~”가 시작되면 그날의 술자리는 대체로 쉽게 끝나지 않는다. 각자 제 어머니의 신화적 영웅담과 드라마틱한 무용담은 어떤 술안주보다 짜고 매워서 어떤 술병도 쉽게 비워 낸다. 해외 생활을 하며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면 이태리 엄마가 더 열정적인지 유태인 엄마가 더 교육적인지 중국 엄마가 더 억척스러운지 막장 토론에 참석하게 된다. 한국 엄마는 그 모든 것을 갖춘 특이한 케이스로 국제적 정평이 나 있기도 하지만 그날 토론의 영예는 주로 목소리 큰 사람에게 돌아간다.  

유독 보수적인 한국 유교 사회문화는 다른 어느 나라 어머니들보다 더 끈끈한 애착을 나타내지만 삐뚜루 보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그 희생 예찬이 어머니의 희생을 더 경쟁적으로 부추긴다는 의혹도 든다.


자신의 인생 없이 모든 것을 자식과 남편에게만 받친 것은 숭고한 희생임에 틀림없지만

당신은 정말 행복했을까?      


나의 어머니는 늘 그렇다.

아이고 아이고, 허리가 아파서 죽겠다면서 하루 종일 부엌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고

눈에만 보이면 밥 먹었니? 배고프니?라고 묻는다.

분명 내 어릴 적엔 분 냄새도 가끔 났던 거 같은데

지금은 사시사철 같은 옷이고 우리 엄마만큼은 제발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유기농 오토바이 헬멧도 아니고 꼬불꼬불 촌스런 파마머리를 하고 앉아 있다.      


보잘것없는 여느 집 며느리인 나의 어머니는 닳고 닳은 세월 속에서 얻은 거라곤 그야말로 영광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마음속 상처뿐이다. 한 때는 곱고 가느다랬을 소녀의 열 손가락은  갖은 설거지와 걸레질로 마디마디 굵은 주름과 억센 굳은 살만 가득하다.

그리고 또 바보 같이 하루에도 몇 번을 묻는다.

밥은 먹었니? 배고프니?      


나는 어머니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별로 없다.

화목한 가족의 저녁식사 모습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판타지 스토리 일뿐

늘 무뚝뚝하고 거친 아버지라는 인간의 폭언과 무관심에 나의 어머니는 인내하느라 더 무뚝뚝해졌고 살아 내느라 더 모질게 변했다.

그러다 지쳐 설움이 복받치는 날이면 가끔 숨 죽여 혼자 몰래 소리 없이 우시곤 한다.


큰 딸이기에 볼 수밖에 없었고

보아도 못 본 척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해도 내 어머니의 슬픔을 덜어 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그녀의 눈물이 쌓일수록 더 또렷하게 알아 버렸다.      


머리가 크자 내 어머니의 슬픔에 대한 나의 공감능력은 오히려 더 무감각해졌다.

인간으로서의 동정심도

장녀로서의 연민도

어머니 손가락의 굵은 마디처럼 굳어져 버렸다.      

나의 능력이 내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엔 턱 없이 부족하기에  

나의 이기심은 내 어머니의 희생을 보답하기엔 염치없이 넘치기에.      


지척에 있어도.... 여러 해가 지나도...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라는 그 쉽고 흔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속이 좁고 고집 센 나는 유달리 어머니와 부딪히는 일도 많았다.

다이어트한다고 끼니를 거르는 게 그녀의 걱정을 샀고

친구들 만난다고 밤늦게까지 쏘다니는 게 그녀의 잔소리를 샀다.

마음이 맞지 않아 말다툼을 할 때마다 여느 집 어머니처럼 는 늘 그랬다.      


<너 같은 딸 낳아 봐야 니가 내 고생을 알지>     

그런데 무심코 버릇처럼 내뱉은 어머니의 푸념이 언제부턴가 멈추었다.

마흔을 훌쩍 지나 버렸지만 아직도 미혼인 딸이기에 아마도 평생 그녀의 고생을 모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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